[매일일보=황동진 기자] 최근 롯데의 본격적인 라면시장 진출을 두고 업계에서는 말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라면시장의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기업이 바로 롯데의 형제기업인 농심이기 때문.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색다른 시각마저 생겨나고 있다. 롯데의 라면시장 진출 배경에는 또다른 이면이 있을 것이란 의문에서다. 재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신격호 롯데 회장이 동생들과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알려진 게 사실. 바로 밑동생인 신춘호 농심 회장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신춘호 회장이 농심을 세우면서 홀로 독립해 성공하기까지 형인 신격호 회장과 거의 왕래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신격호 회장은 아무리 미운(?) 동생일지로 피를 나눈 형제인 까닭에 동생의 밥그릇까지 넘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이제야 넘보려는 것일까. <매일일보>이 일각의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해봤다.
롯데의 자체브랜드로 라면시장 본격 진출에 시장 1위, 농심 겉으로 ‘태연’ 속으론 ‘부글부글’ 일각, 기업간 사업적 관점 아닌 신격호 회장과 신춘호 회장간의 형제간 반목에서 비롯된 것
최근 롯데가 ‘롯데라면’이라는 이름의 자체브랜드(PB; Private Brand·유통업체 자체상표) 상품을 출시해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사실 롯데는 지난해 3월 라면시장에 진출한 상태였지만, 여태까진 롯데라는 이름을 넣진 않았다. 때문에 ‘롯데라면’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롯데는 지난해 ‘이 맛이 라면’이란 이름의 라면을 출시, 라면시장에 진출한 이후 전국 대단위 유통망을 통해 50만개 이상을 팔아 치우는 기염을 토해냈다. 롯데마트 라면 매출 순위 6위를 기록했을 정도. 롯데로선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이로써 롯데(마트)는 한국야쿠르트와 손잡고 ‘롯데라면’을 개발, 빠르면 이달안으로 출시할 예정으로 있다. 라면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겠다는 것.
롯데의 라면진출 그 이면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롯데의 라면시장 본격 진출에 대해 의문 부호를 찍는 이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라면시장의 부동의 1위 기업이 롯데의 형제기업인 농심이기 때문. 즉, 형제 기업간 밥그릇 쟁탈전이 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농심은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심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롯데란 브랜드가 지닌 파워를 농심도 알고 있기 때문. 라면시장 진출 후 불과 1년도 안돼 50만개를 팔아치운 것만 보더라도 롯데라면의 성장 가능성을 쉽게 읽을 수 있다. 때문에 지금까지 라면시장에서 농심을 대적할 만한 이렇다 할 호적수가 없었던 상황에서 농심으로서는 불안에 떨 수 밖에 상황이 됐다. 물론 단순한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롯데의 본격적인 라면시장 진출은 양질의 제품 제조·생산으로 시장의 질적 향상을 가져 올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이러한 측면을 떠나 일각의 관점은 사뭇 다르다. 롯데와 농심이 형제기업이란 점에 초점을 맞춘 것. 신춘호 농심 회장은 신격호 롯데 회장의 둘째 동생이다. 신격호 회장이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갖은 고생 끝에 ‘일본롯데’(1946)를 설립해 성공한 뒤 우리나라로 돌아와 지금의 서울 갈월동에 ‘롯데제과’(1967)를 세웠다. 이게 ‘롯데그룹’의 시발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동생인 신춘호 회장은 형인 신격호 회장이 롯데제과를 세우기 2년 전에 이미 ‘롯데공업’(1965)을 세웠다. 신춘호 회장은 이후 73년까지 ‘롯데라면’이란 이름으로 출시하다, ‘농심라면’이 공전의 히트를 시키자 78년에 사명을 농심으로 바꿨다.여기서 신춘호 회장이 국내에 라면 사업을 막 시작하려던 때의 일화는 지금까지도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일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신춘호 회장이 국내에 라면 사업을 도입하려고 계획했을 당시, 일본에 있던 형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면박뿐이었다는 것. 신격호 회장은 “한국은 일본과 사정이 다르므로 때려치우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빈정이 상한 신춘호 회장은 이를 악물고 고군분투한 끝에 형의 예상을 뒤엎고 라면 사업을 성공적으로 일궈냈다. 이로 인해 서로간 왕래가 거의 없을 정도로 소원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잠시 롯데란 브랜드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아예 사명에서 ‘롯데’란 이름을 지우기까지하며 형의 롯데를 향한 앙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후문이 나돌 정도였다.
형의 동생에 대한 질책 일환?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금에 와서 롯데가 라면시장에 진출한 것은 자못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란 의문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기업간 사업적인 측면이 아닌 신격호 회장과 신춘호 회장간 반목에서 비롯된 , 형제간 원한(?)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신격호 회장에게는 동생들이 많다. 밑으로 9형제가 있다. 신춘호 농심 회장을 비롯해 신선호 일본 산사스(주) 사장,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 등이 있다. 이들은 지난 1996년 ‘형제의 난’으로 일컬어 질 정도로 적지 않은 갈등을 겪었고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형제간 소원한 관계로 서로 왕래가 거의 없는 것은 이미 재계에 널리 알려진 얘기가 됐다. 최근엔 신준호 회장이 건설업계 진출을 하면서 형인 신격호 회장의 심기를 불편케 만들었다. 또 신준호 회장은 부산 대선주조의 M&A과정에서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시세차익 논란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또다시 형의 심기를 건드렸다. 일각에서는 롯데로까지 불똥이 튀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나타냈기 때문. 물론 이에 대해 신격호 회장이 불편한 심기를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다. 다만 롯데가 두산의 주류부문을 인수해 본격적인 주류업계 진출을 하면서 부산의 대표적인 향토기업인 대선주조를 압박하고 나선 것으로 봐선 불편한 마음의 우회적인 표현이라는 게 일각의 시각이다.
따라서 일각의 관점대로 신격호 회장이 그동안은 동생들이 자신을 향한 불만과 앙심에 대해 무심코 넘겨버렸지만, 갈수록 그 정도가 지나쳐 이젠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비춰질 소지도 다분히 있는 것이다. 즉, 이번 롯데의 본격적인 라면시장 진출 역시 그동안 소원하게 한 동생 신춘호 회장에 대한 암묵적인 질책의 일환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