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시대, 수수료 체제 고금리 수준에 고착
[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저금리 기조 장기화에도 현행 은행 수수료 체제는 여전히 과거 고금리 수준에 맞춰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통 받는 것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가계 빚을 짊어진 서민일 수밖에 없다.이에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제는 은행 수수료에 대해 전반적으로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은행들은 대출 연체이자율을 2%포인트 가량 순차적으로 인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간 저금리 기조에도 지나치게 높은 금리를 고수했다는 금융당국의 지적에 마지못해 내린 결정이다.신한은행과 우리은행, 하나은행, 외환은행은 기존 17%에 달하는 연체이자율 상한을 15%로 2%포인트 내리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다음달부터 인하된 연체이자율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신한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은 통합 일정 등을 이유로 인하 시점조차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다.연체이자율 상한이 21%로 가장 높았던 SC은행은 18%로, 기존 18%였던 국민은행과 씨티은행의 경우 각각 16%와 16.9%로 이자율 상한선을 조정하기로 했다. 기업은행(11%)과 농협은행(15%)은 상대적으로 낮은 연체이자율은 유지해왔다며 조정에 동참하지 않았다. 다만 농협은행은 3개월을 초과하는 연체에 대해 가산금리를 9%에서 8%로 낮출 예정이다.그러나 이렇게 내린 금리 역시 여전히 예금 금리와 비교해 보면 저금리 상황이 반영됐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3%대 예금 비중은 사상 처음으로 0%를 기록했다. 3%대 금리를 주는 예금상품이 공식적으로 없어졌다는 의미다.여기에 중도상환수수료율 인하 문제의 경우 1년이 넘도록 검토만 하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중도상환수수료란 은행대출을 받은 사람이 중도에 대출금을 상환할 때에 내야 하는 수수료로 오로지 은행이 입는 경제적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수료 체계다.앞서 금융당국은 2013년부터 은행권과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중도상환수수료 합리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었다. 중도상환수수료는 2011년 9월 한 차례 개편됐지만 여전히 가계대출의 상환에 걸림돌로 작용하며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당국은 신용대출과 담보대출,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장기금리와 단기금리 등 종류별로 다른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들은 이렇게 구조가 바뀔 경우 은행이 모든 부담을 지는 구조라며 거부하고 있다.실제 국민·농협·우리·기업·하나·외환은행 등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은 중도상환수수료율 인하에 대해 여전히 검토중이라는 입장이다. SC·씨티은행 등 외국계 은행은 인하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국회에서도 2012년 국정감사 때부터 수수료 문제가 제기됐지만, 주택담보대출의 중도상환 수수료를 규제하는 내용의 법안 3건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은행들은 매년 신뢰회복과 혁신을 통한 수익성 창출, 해외시장 개척 등을 신년 경영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올해도 은행과 금융지주 수장들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그러나 국내 은행들은 현지화 실패로 해외시장에서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말 뿐인 혁신을 되 뇌일 뿐, 실제로는 예대마진과 수수료에서 대부분의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는 상황이다.실제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병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국내은행의 전체수익 중 이자수익(예대마진에 의해 발생되는 수입) 비중은 89.2%에 달한다. 나머지는 주로 수수료 이익에서 충당했다.담보대출이나 예대마진 확보와 같은 위험도가 낮은 사업에만 투자를 거듭하면서 경쟁력도 하락했다.영국 금융전문지 더 뱅커지에 따르면 세계 1000대 은행에 포함된 국내은행 10곳의 2013년도 평균 총자산순이익률(ROA)은 전체 평균인 1.28%에 크게 못 미치는 0.38%였다. 순위는 조사대상 94개국 가운데 83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이런 상황에서 수익성 강화를 외쳐 봤자 현행 수수료 체계를 더 공고히 해 서민을 상대로 고리 장사를 열심히 하겠다는 의미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주택담보대출이 3% 내외인데, 연체 이자가 15%로, 거의 다섯배 이상으로 은행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당장 30만원을 갚을 돈이 없어 연체한 사람에게 종국엔 150만원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이어 “중도상환수수료의 경우에도 시중은행이나 은행연합회 등은 설정비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과거 고객들이 설정비를 부담할 당시에도 은행들은 중도상환수수료를 받아왔다”며 “본질은 은행이 주요 수익원인 수수료 체계를 개편하고 싶지 않아 하고, 금융 당국은 은행 수익 보전을 위해 이 같은 상황을 묵인 내지 방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은행 수수료 체계의 전면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