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월드컵 열기로 한창 뜨거운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은 원래 네덜란드 식민지였다.일반인들은 인도의 비폭력운동가 간디나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 등 때문에 처음부터 남아공은 영국의 식민지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17세기 중엽, 즉 지금으로부터 350여 년 전, 다수의 네덜란드인들은 신대륙을 찾아다니다 우연히 가코사족과 줄루족이 자리 잡고 있던 풍광 좋은 남아공을 발견하고 그곳에 정착을 했다.세월이 흘러 19세기 영국에 남아공을 빼앗기기 전까지 근 200여년을 네덜란드인들은 남아공을 지배했다.때문에 지금도 남아공 인구의 약 15%를 차지하고 있는 백인 중에는 네덜란드계가 가장 많다. 이들이 사용하는 아프리칸스라는 언어는 네덜란드와 독일어 영어가 뒤범벅된 새로운 언어지만 그 근본은 네덜란드어다.이들은 영국백인들과 힘을 합쳐 남아공의 주인이던 흑인을 노예로 전락 시키고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했다.백인들은 특히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말로 분리, 격리라는 의미. 심한 인종차별정책)’ 법을 제정하고 흑인을 더욱 탄압하기 시작한다. 이 정책의 주요골자는 “백인이 타는 버스나 열차에 흑인은 탈 수 없다. 백인이 가는 공공시설과 식당에 흑인은 출입할 수 없다.선거 때는 흑인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아 흑인은 정치에도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이 시행되다보니 백인은 부를 누리는 반면 흑인은 가난과 각종 탄압에 시달려야했다.이런 어려운 시기에 남아공 흑인지도자 넬슨 만델라가 나타났고, 그는 수많은 죽음의 사선을 넘나드는 위험을 감수하고 열심히 투쟁한 덕분에 잃어버린 흑인주권을 되찾았다. 이후 만델라는 지난 1994년 4월 남아공역사상 첫 흑인대통령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당선 후에도 넬슨 만델라는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는 과거사청산을 실시했다. 즉, 흑인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탄압하거나 화형 등의 잔악한 방법으로 죽인 가해자들 중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는 자를 사면 하기까지 했다.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 했고 남아공은 평온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특히 인권탄압은 완전히 남아공에서 사라졌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남아공에 다시 흑인탄압이 벌어지고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남아공의 새로운 주인이 된 흑인들이 주변 아프리카 국가 이주민 흑인들을 겨냥해 대규모 학대와 약탈을 자행하는 것이다.이들은 야구방망이와 흉기로 무장을 하고 이주민 주거지역을 덮쳐 판잣집에 불을 지르고 소지품을 약탈했으며 몽둥이를 휘둘러 인명살상까지 자행했다.이들 이주민들은 대부분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1994년 이후 짐바브웨·모잠비크·말라위·소말리아 등 주변국에서 일자리와 피난처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이다. 정치·경제적으로 사실상 붕괴 상태인 짐바브웨의 난민이 가장 많은데 그 인구는 어림잡아 3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남아공의 빈민층 중심의 흑인들이 이처럼 이주민들을 괴롭히는 것은 자국의 오랜 경제 침체와 높은 실업률 때문이다. 결국 남아공의 사회적 모순이 외국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폭발된 것으로 풀이된다.낮선 침략자인 백인들에게 수많은 핍박과 고통을 받았던 남아공의 흑인들이 자신과 피부색이 같은 인근 주변국의 흑인 이주민들을 괴롭힌다는 것은 굉장히 아이러니컬한 이야기다.
지금은 자신의 고향근처에서 요양생활을 하고 있는 넬슨 만델라가 본다면 더욱더 어처구니없을 것이다.
문득 그가 했던 유명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프리카에서 단 한 명의 흑인이라도 자유롭지 않은 한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다” 더 이상 남아공에서 인종차별이나 인권유린이 없었으면 하는 커다란 바람이다.
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