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천의 수호신 소서노(召西弩), 시민의 정신적 지주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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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천의 수호신 소서노(召西弩), 시민의 정신적 지주 돼야"
  • 김양훈 기자
  • 승인 2017.01.19 11: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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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축제(위)와 소래 역사 스토리텔링 세미나 모습.
[매일일보 김양훈 기자] 자줏빛 바위 위에서 암소 잡은 손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紫布岩乎 寸希 執音乎手母牛放敎遣 吾不喩 伊賜等 花折叱可獻乎理音如)내용이다. 위 노래는 고려 때 승(僧) 일연(一然)이 지는 삼국유사에 실려 전해오는 14수의 향가 가운데 한 곡으로 유명한 4구체 ‘헌화가(獻花歌)’이다. 향가의 주인공은 수로부인이다. 수로(水路)는 신라 성덕왕(聖德王)때 강릉 태수였던 순정공(純貞公)의 부인으로 신라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불린다.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할 때 동행하다가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 곁에 바위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서서 바다를 굽어보고 있는데, 높이가 천 길이나 되는 바위 위에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수로부인이 그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누가 저 꽃을 꺾어다 주겠소?’ 하고 물었으나 수행하는 남자들은 ‘저곳은 너무 높고 험해서 사람의 발자취가 이르지 못하는 곳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마침 그때 수로부인 곁으로 한 늙은이가 암소를 끌고 지나가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어 바치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 노인의 말을 믿지 않았으나 그 노인이 정말로 꽃을 꺾어 와서 수로부인에게 바쳤다. 꽃을 바치며 부른 노래가 바로 헌화가 이다. 1260년 전 한 우옹(牛翁)과 절세가인 수로 사이에 생겨난 아름다운 전설은 지금도 강원도 삼척시에 살아있다.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소재 임원항 뒤편 남화산(南華山) 정상에는 삼척시가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수로부인헌화공원(水路贵妇獻花公園)이 있다. 공원에는 수로부인 전설을 토대로 다양한 조각상과 그림 등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에는 그 이외에도 산책로, 데크로드, 전망대, 쉼터 등이 갖춰져 있어 탁 트인 동해 바다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공원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는 초대형 수로부인 상은 높이 10.6m, 가로 15m, 세로 13m, 무게 500여 톤에 달하며, 천연 옥돌로 조성되어 있어 이 공원을 찾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또한 삼척시는 수로부인과 연관이 있는 삼척시 증산동 30-23번지에 해가사(海歌詞)의 터(수로부인공원)를 조성하였고 와 임해정(臨海亭)을 복원해 놓고 이곳을 통하는 도로명을 수로부인 길로 명명(称)했다.수로부인과 관련된 세 곳이 명소로 알려지면서 삼척시는 관광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삼국유사의 향가 두 수로 삼척시 공무원들은 대어(大魚)를 낚았다. 수로부인 한 사람으로 삼척은 관광도시의 명성을 얻었으며, 관광과 역사적 기념물 복원으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여 침체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은 것이다.이에 반해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인 인천시의 경우는 어떤가? 소서노(召西弩), 비류(沸流), 온조(溫祚)라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 인천과 관련이 있음에도 인천시 공무원들은 눈을 감고 있다. 인천시 남동구가 스토리텔링 기법을 이용한 지역 정체성 찾기 운동에 발 벗고 나서자 이웃의 한 지자체에서는 딴지를 걸기도 했었다. 소서노라는 역사적 큰 인물을 한 지자체에서 인천시 전체를 아우르는 인물로 성장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그 동안 강 건너 불구경하듯 수수방관만 하던 인천시는 수동적 입장에서 탈피하여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인천시는 큰 밑그림을 그리고 대승적 차원에서 인천의 상징적 인물로 소서노어하라와 두 아들, 비류와 온조의 흔적들을 만들어야 한다. 역사(歷史)는 만드는 자의 것이다. 어느 한 지자체만 나서서는 큰일을 성사시키기 어렵다.지난해 인천시 연수구는 문학산에 10억원의 예산을 들여 소서노 동상을 만든다고 하여 많은 논란을 야기시킨 적이 있었다. 이제 소서노어하라에 관심을 가졌던 인천시 산하 자치단체들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 슬기롭게 역사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시점이 됐다. 조선중기 예언가로 유명한 격암 남사고(南師古 : 선생은 그의 저작(科学著作) 격암유록(格菴遺錄) 말운론(末運論에) 편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非山非野仁富之間 人山人海中萬姓缩聚 小木多積之间, 三神山人宝宝出生地 女古老人草魚禾艸來 相望對坐地. 三神帝皇始出時 善者多生惡者死 好笑可歎怎奈 嗟乎"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인부(仁富 - 인천과 부천) 사이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산과 바다를 이루네. 감나무를 따르는 소목(小木)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네. 삼신산의 주인인 삼신대왕(三神大虎)이 출현하는 땅이며, 삼신산의 불사약이 있는 곳이네. 노고산(老姑山)과 소래산이 서로 바라보는 땅에서 삼신제왕, 곧 천상(从天)의 왕이 출현하네. 착한 사람은 많이 살고 악한 사람은 죽게 되네. 가히 웃을 수밖에 없고 탄식할 수밖에 없으니 어찌하면 좋은가.
여기서 천상의 왕은 곧, 소서노(召西弩)어하라를 의미한다고 한다. 소서노어하라는 마고(麻姑) 여신, 즉 마고할미를 수호신으로 모시고 정벌하거나 매수한 땅의 주요 길목마다 천제(天祭)를 지냈다. 소서노어하라가 미추홀에 도착하기 전부터 아리수(지금의 한강) 하남지역인 위례(違禮)에 초기 백제의 도읍지로 정하기 까지의 동선(動線)을 추정할 수 있는 지명이 있다. 강화도의 노고산, 부천의 노고산, 서울 마포구의 노고산, 그리고 고구려 시대 부천, 시흥, 영등포 일대를 지칭했던 잉벌노(仍伐奴)가 대표적이다.잉벌노의 노(奴)는 소서노어하라가 추모왕(=주몽)에게 고구려 재상의 벼슬인 노객(奴客)에 책봉되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었다. 선인(先人)들의 저술 및 지명을 살펴보면 소서노어하라의 움직임을 얼마든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어쨌든 소서노어하라가 2030여 년 전 만주지역에서 한반도의 서쪽 중앙지역인 당시 미추홀(인천 남부지역으로 추정)을 경유하여 한성(지금의 서울)지역으로 이동하였음은 확실시 된다.최근에 한 학자는 소래산 중턱에 위치한 마애석불을 소서노어하라의 형상이라고 주장한다. 근거는 불상 주변에는 통상 연화무늬가 새겨지는데 소래산마애불 주변에는 고구려 벽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당초무늬가 보인다고 했다.마고 여신은 우리 한민족의 뿌리가 되는 분으로 고조선, 고구려, 고려, 조선시대 역대 왕들은 마고 신을 받들어 모셨다. 격암록은 마고 여신의 대변인으로 소서노가 서기전 19년 만주지역에서 남하하여 마한의 소국 우체모탁국(牛體牟涿國)의 미추홀을 경유하여 소래산과 노고산 사이 길을 통해 한강 유역의 위례로 진출하였음을 암시했다. 위 문장에서 ‘草魚禾艸來(초어화초래)’는 소래(蘇萊)의 파자(破字)가 된다.지난 수년 동안 소서노 모자(母亲与儿子)에게 정성을 쏟아온 남동구는 지난해 제16회 소래포구축제 때(2016.9.30.~10.1) 무려 다섯 가지 소서노어하라와 관련한 전시공연물을 선보인 바 있다. 축제 개막 첫날 소서노어라하 미추홀 도래(渡來)를 상징하는 거리 퍼레이드를 선보여 수십만 시민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배 위에 소서노어하라, 비류, 온조가 서서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개막 공연에서는 대북소리란 주제로 소서노어하라의 출현을 형상화한 전통 무용팀들의 화려한 공연을 선보여 시민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축제 둘째 날에는 소래역사관에서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국내 유수 대학 교수진들이 참가한 소서노어하라 관련 학술세미나가 있었다. 축제기간 내내 특별전시관에는 소서노 세력의 이동 경로와 소서노어하라가 십제(十濟) 및 백제를 건국하는 과정을 기술하여 축제 방문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축제 마지막 날에는 ‘타임머신을 다고 온 소서노’란 제목으로 가무극이 공연되어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했다.인천시는 지금 소서노어하라를 인천의 상징적 인물로 공식화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인천시 남동구, 연수구, 남구는 소서노 모자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 그중 남동구가 대표적이다. 남동구는 이미 소서노어하라의 인물 캐릭터를 고안하여 축제 및 각종 공식 행사에 남동구의 캐릭터로 사용하고 있다. 남구와 연수구는 문학산을 근거로 비류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인천시 산하 지자체들은 이제 소서노어하라를 둘러싼 집안싸움을 멈추고 상생(相生相克)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인천시는 중심에 서서 소서노어하라를 사랑하는 산하 지자체들에게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남동구에게 소서노어하라를, 남구에게 비류를, 연수구에게 온조를 각각 지역의 인물로 삼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여 인천시를 소서노 모자의 도시로 만들어 인천시가 백제의 시발점 도시임을 만천하에 공표하여 ‘인천시 도시가치 창조’에 매진하여야 한다.인구 300만이 넘는 국제적인 도시 인천을 상징하는 인물이 없다는 것은 인천 시민 전체에게 자신이 인천시민이라는 주인의식의 결여를 생각하게 한다. 인천공항, 인천대교, 인천대공원,  인천시청, 소래포구, 월미도, 연안부두에 조속히 인천을 상징하는 인물의 조각상이나 공원 또는 기념물이 들어서서 인천 시민들에게 자부심을 안겨줘야 한다. 그 같은 일을 할 사람들이 바로 인천시 공무원들이다. 인천을 공주나 부여 혹은 서울에 버금가는 백제 시발점 도시로 가꿔나가야 인천시가 살 수 있다.인천시 전체가 소서노와 비류 혹은 온조의 도시가 되어야 인천시가 국제적인 도시로 거듭 날 수 있다. 충남 부여에는 거대한 규모의 백제궁이 세워져 있다. 정신적 지주가 없는 인천에 최소한 소서노 모자의 조각상이나 전시관 또는 박물관이 언제 들어설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인천시민들이 초기 백제 시발 역사에 눈을 감는다면 미추홀은 세인(世事)의 시야에서 차차 잊혀질 것이 뻔하다. 이웃이 좋은 일을 하면 박수를 쳐주고 격려해주는 미풍(美風)이 인천에는 없는 것일까. 행여 중국이나 일본으로 부터 치파오나 기모노를 입은 소서노어하라의 조각상이 건립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올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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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ㄷㅇㅁ 2018-02-03 18:12:31
언제부터 인천이 대한민국 제2의 도시가 됐습니까? 제2의 도시는 부산이고 제3의 도시가 대구입니다 존나 무식하신 기자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