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형벌은 사형(死刑)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사법제도가 출범한 후, 첫 사형선고는 1895년 3월 25일(음력) 녹두장군 전봉준에게 내려졌다.
법무부에 따르면, 1948년 정부수립 이후 거의 매년 사형이 집행돼 총 99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다가 1997년 12월 30일 이후로 사형 집행은 한 차례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올 한해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국제엠네스티(민간인권운동단체)에서 지정하는 사형제 폐지국가(122개국)가 된다. 왜냐면 국제엠네스티는 10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국가를 사실상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일 사담 후세인의 처형 장면이 담긴 동영상 전세계로 퍼지면서 국내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사형을 확정 받은 사람의 수는 총 63명. 이들은 전국 5곳의 구치소에서 사형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미결수 신분인데 길게는 13년, 짧게는 1년을 구치소 생활 중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들의 삶을 <매일일보>이 짚어 봤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최대한 가혹한 처벌을 해달라.”(피해자 가족)
“범행계획이 치밀한데다 그 수법이 잔혹해 극형을 면할 수 없다.”(대법원)
“사형이 선고되던 그 순간, 하늘이 노랗다는 표현을 실감했다.” (한 사형수 )
이중에는 1996년 ‘막가파’사건의 핵심인물과 부녀자들과 노인, 장애인 등 20명을 연쇄 살해한 유영철씨를 비롯해 영생교를 탈퇴하고 교주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신도 6명을 죽인 영생교 간부도 있다.
미결수 신분으로 기약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수감된 곳은 서울ㆍ 대구ㆍ부산 구치소 등이다.
“죽여 달라” 애원하고 자해하고
대검 공법연구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형수 63명 중 37명은 수용질서 위반으로 입건 또는 금치(징벌실 수감 및 접견 금지) 등의 벌칙을 받았다. 실제 한 사형수는 자신을 비웃는 다른 재소자를 볼펜으로 찌르고 한 달 동안 독방 처분을 받았으며, 또 다른 사형수도 죽여 달라고 자해를 시도해 구급차에 실려 가기도 했다.
그래서 사형수 중 일부는 30분씩 주어지는 운동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 가령 앉았다 일어났다 100회 실시라든가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 까치발들기 등을 매일 50회씩을 빼먹지 않고 하기도 한다.
또 ‘미결수’인 까닭에 수시로 자란 수염을 정성껏 면도하거나 정갈하게 씻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이들도 있다. 법무부 장관의 승인이 언제 어떻게 떨어질지 몰라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법무부의 위촉을 받은 교화위원들은 종교 지도자로 구성돼 있는데 이들은 보수를 전혀 받지 않고 순수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중에는 김수환 추기경 같은 유명한 종교인도 있다.
사형수들은 이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종교에 귀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범죄에 대한 잔인한 기억과 사회에 대한 원망, 교수형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점철된 수감 초기 시절(1~3년)이 지나면서부터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그들에게, ‘종교’는 참회를 통한 안식을 제공하고 잠시나마 죽음에 대한 공포감에서 그들을 해방시키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63명의 사형수 중에서 범행당시 종교를 가진 사람은 6명뿐이었고, 57명은 무교였다. 종교를 가진 6명은 기독교가 2명, 불교가 1명이었으며 무속 등 특수종교가 3명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독실한 종교인으로
이와 관련 구치소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성직자 박선규(48ㆍ가명)씨는 “매일 죽음을 준비하고 살아가는 사형수에게 기쁘게 심판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들이 좀 더 일찍 신앙생활을 했다면 과거와 같은 길을 걷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하지만 종교의 힘도 정권 말 대선을 앞둔 시점이나, 법무부 장관이 교체될 때 그리고 유영철과 같은 흉악한 살인사건이 교도소 담장 밖에서 벌어 질 경우엔 무용지물이다. 사형 집행이 가까워 왔다는 두려움으로 바싹 타들어 가는 그들의 심정을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정은 사형수 김진태씨가 한 성직자에게 보낸 편지 내용에 잘 드러나 있다. 편지는 폭행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를 살해했던 그가 20년 만에 최대 규모의 사형이 집행됐던 지난 97년 12월 30일에 쓰여 졌다. “인간은 영적인 동물이기에 그날 아침 일찍 직감으로 알았습니다. 한 열시 반쯤 되었을까 담당님이 면회 왔다고 호명하더군요.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긴 한숨이 배어나왔습니다. 애써 마음을 담담히 추스르며 옷을 갈아입고 방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다음 천천히 담당님을 따라갔습니다. 집행장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공허하리만큼 침묵이 흘렀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담당님의 발길은 사형장쪽으로 가지 않고 접견장으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그럼 진짜 면회온 것일까.’ 뒤숭숭한 마음을 다잡고 접견장을 따라 가보니 목사님께서 충혈된 눈으로 서 계셨습니다. 그제서야 진짜 면회를 온 것임을 알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사형집행이 모두 끝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구치소 변화에 하루하루 민감한 반응 보이며 좌불안석
사형집행에 참석한 한 성직자에 따르면 사형수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구치소내 상황 변화에 민감하다.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주변 분위기가 차분하거나 방송이 없거나 아침운동이 생략되거나 교도관들이 보이지 않을 때, ‘아, 오늘이구나’하고 몸을 부들부들 떤다고 한다. 사형은 대통령의 비공식적 결재와 법무부장관의 명에 따라 집행되는데 50평 남짓한 사형실에는 교도관, 성직자, 참관인 등이 참석한다. 오전 시간 때에 주로 행해지며 죄수 번호를 호명하고 죄목을 밝힌 뒤 종교의식과 유언절차를 밟는다. 그리고 밧줄이 사형수의 목에 걸리고 용수가 씌워진다. 해당 교도관들이 교수대 바닥의 문을 여는 버튼을 누르면 비명과 함께 그는 운명을 달리한다.살아 있지만, 늘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63인의 사형수다. 이에 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와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인권단체는 사형제도 폐지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명동성당 앞에서 연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캠페인을 통해 “63명의 국내 사형수들이 하루빨리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