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은 이번 호부터 총 3회에 걸쳐 ‘지하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연재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교통의 요지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무가지 줍는 노인들’, ‘노점상인들’, ‘가판대 직원들’의 얘기를 차례로 들어 본다. <편지자주>
희망찬 새해가 밝았지만, 무가지 신문을 줍는 노인들은 오늘도 힘겹게 전동열차에 몸을 싣는다. 얼어붙은 경기에 특별한 돈벌이 수단이 없는 노인들은 예년처럼 폐지 줍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혹자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4백만 부의 무가지가 일자리 없는 노인들에게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 했다. 하지만 고령에 건강도 좋지 못한 노인들이 스스로 생계를 꾸리며 ‘하루 벌어 하루 살아야 하는’ 삶은 생각만큼 녹록찮다. 단돈 1만원을 위해 100kg에 가까운 포대자루를 끌고 ‘러시아워’ 전동차를 누비는 폐지 수거 노인들의 삶을 본지가 밀착 취재했다.
생계 위해, 용돈 위해 지하철에 몸 실어
출근 시간을 살짝 넘긴 오전 8시 35분, 인천행 1호선 전동열차의 한 객실에서는 무가지를 줍던 60대 남성과 20대 여성 사이에 실랑이가 오갔다.
선반위의 신문을 수거하다가 그만 신문 뭉치를 여성의 머리위로 떨어뜨린 것이다. 박모(66)씨가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해 보지만 피해자인 이모(22)양은 좀처럼 화를 풀지 않았다. 보다 못한 한 아주머니가 이양을 달래면서 일단 급한 불은 껐다. 이에 박씨는 서둘러 폐지 자루를 짊어지고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
“내가 이런 일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다음날 7시 30분. 출근길은 여전히 북새통. 승객들이 빼곡히 들어찬 2호선 순환 열차에 오른 최모(61ㆍ남)씨는 남들보다 먼저 버려진 무가지 신문을 확보하기 위해 승객이 가장 많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승객들 틈바구니를 이리 저리 뚫고 다닌다. 그리고 선반위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무가지를 모조리 등에 맨 가방에 담는다.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소매로 훔치며 최씨는 을지로3가에서 봉천역을 오가며 3시간 동안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오전 10시가 넘으면 이 장사도 끝. 다른 노인에게 무가지를 뺏기지 않으려면 한 시도 쉬어서는 안 된다. 다행히 기력과 체구가 좋아 남보다 폐지 수거가 용이하다.
꼬깃꼬깃 접힌 천원 짜리 지폐에 손자 과자 한 봉
철도공사는 이 같은 불우 노인들의 폐지 수집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승객들과 노인들의 안전문제가 발생하고 지하철 이용객의 민원이 많다는 게 그 이유다. 이 때문에 자루를 빼앗으려는 역무원들과 노인들 사이에 몸싸움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서울역사 관계자는 “박씨나 최씨 같은 노인이 1호선 구간에만 수백 명이 넘는 것으로 안다”면서 “다들 사정이 딱해서 심적으로는 이해하지만 복잡한 출근길에 그분들 때문에 피해를 당하는 승객들이 민원을 제기하고 있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하지만 역무원들과 공익요원들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당장 먹고 살아야하는 노인들은 오늘도 지하철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 사회는 IMF이후 고물 수집을 하는 노인들이 급격하게 증가했다고 한다. 단가가 높은 무가지 신문을 줍기 위해 지하철을 생존터로 삼은 가난한 노인들.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노인복지가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돼야 할지 짚어주는 대목이다.
김종국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