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이하 농협)가 대대적인 유통사업 확장에 나선다. 최근 농림부와 농협은 '농협 경제사업부문 활성화 방안'을 확정하고 장기적으로 유통부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오는 2015년까지 총 6조원을 들여 유통부문의 몸집을 키운다는 것. 대형할인점(하나로클럽)을 26개에서 50개로 늘리고, 대형슈퍼마켓(하나로마트)도 현재 125개에서 500개까지 확충하기로 했다. 또 기존 유통업체와 제휴 및 인수를 추진하는 한편, 식품가공사를 설립, 두부, 콩나물, 쌀가공식품 등을 만들어 전국에 유통시키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농협이 이처럼 유통사업에 투자하는 이유와 관련, 신.경분리에 대비해 신용사업(금융)에서 확보된 이익을 바탕으로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경제사업 분야를 안정궤도에 올리기 위한 의지로 보고 있다.
농협 신.경 분리위원회는 8∼10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농협의 신용사업 부문과 경제사업 부문을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부정적 의견 또한 제기되고 있다. 유통업계가 이미 포화상태에 진입해있고, 대대적 출점을 위한 부지 확보 또한 쉽지 않아 농협이 내세우고 있는 계획안이 제대로 실현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농협 내부에서도 사업 추진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말들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협의 유통업 확장 계획안에 따라 벌써부터 관련업계가 들썩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농협의 신.경 분리 관련 자료에는 농협은 유통사업을 '종합농식품유통그룹'으로 발전시켜, 농협 중심의 농산물 유통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농업인에게 실익을 주는 모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농협 홍보실 관계자는 "유통사업 진출에 관한 내용은 당초 신.경분리 계획안에 담겨있었다"며 "다만 독자생존 기반 마련을 위해 경제사업활성화가 우선이라는 판단 하에 유통 분야를 확대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6조원에 달하는 예상비용 또한 현재로서는 농협 자체적으로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라며 "신용사업에서 벌어들인 돈을 유통사업 확장에 투자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농협중앙회는 지난해 1조300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사상 처음으로 1조원대 순익을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05년 7968억원에 비해 29% 가량 늘어난 것인데, 신용부문의 이익이 크게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농협은 이 가운데 약 2000억원(기타 경제사업 지원은 총3201억원) 가량을 유통매장 신설과 물류기지, 공판장 건설 등 유통사업에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식으로 매년 투자금을 확대해 총 6조원을 지원할 방침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일단 계획대로라면, 오는 2015년까지 대형할인점은 50개, 대형슈퍼마켓은 500개까지 늘어나게 된다.특히 신규 출점은 대부분 도심지역에 집중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또 대형할인점쪽은 현재 운영되고 있는 양재동 하나로 클럽과 같은 형태로 확장시켜 나갈 예정.
할인점 50개, 슈퍼마켓 500개...부지는 어디에?
그러나 농협의 계획안에 대해 유통업계에서는 부정적 시각 또한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도심지역으로의 신규출점을 위한 부지 확보가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다.홍보실 관계자 역시 "할인점 50개, 대형슈퍼마켓 500개를 목표로 잡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계획하고 있는 수치"라며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계획이 변경되고, 조정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여지를 남겼다.
중소상인 "유통사업 확대, 농협과 거래 끊겠다"
그런가하면 부지 확보 이외에도 농협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또 있다. 대기업들의 할인점 시장을 둘러싼 과열경쟁으로 인해 중소, 재래상인들의 비난여론이 극대화되고 있기 때문. 지난 23일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전국시장상인연합회 등 40여개 단체가 참여한 '대형유통점, SSM확산저지 비상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출범했다.이 자리에서 대책위 김경배 회장은 "최근 유통업체들이 출점 전략에 차질을 빚자 규모를 줄여 SSM(슈퍼슈퍼마켓)진출을 계획하고 있어 중소유통화의 황폐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대형유통업체들의 무차별적인 출점 전략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비대위는 "공격적인 유통사업 확대 전략을 밝힌 농협에 대해서는 농협 농축산물 거래 중지 운동을 벌이는 등 강력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경고했다. 송행전 전국시장상인연합회 회장은 "전국 1700개 재래시장이 농축산물 공동구매를 통해 농협을 거치지 않고 산지와 직거래 하겠다"고까지 밝혔다. 김경배 회장은 "생산자단체인 농협이 국가 예산까지 농협유통에 투여해 중소 상인을 죽이는데 앞장서는 게 말이 되느냐"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에 대해 농협 홍보실 측에서는 "어느 사업에나 작용, 반작용이 있게 마련"이라며 "반대하는 사람까지 끌고 갈 수는 없다. 농협이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조합원의 '이익'이다. 반대 여론도 귀담아 들여야 하겠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증권가, '농협, 할인점 시장 진입 쉽지 않을 것'
한편 농협의 유통부문 투자 확대 계획에 대해 증권가에서는 기대 반 우려 반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단 농협의 유통사업 확장이 업계에 긴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의견과 함께 약 10년에 걸친 장기 계획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파급 효과는 적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 CJ투자증권은 "기존 신세계, 롯데쇼핑 등 대형 유통업체들 주가에는 경쟁 심화 리스크 부각으로 단기적으로는 부정적 요인이 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미 국내 할인점 시장은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의 3강 구도로 고착화되고 있다. 더욱이 이미 상위3사가 할인점 신규출점을 위한 부지를 각각 30개씩 확보해 놓고 있어 농협의 할인점 시장 진입이 그렇게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다"고 분석했다. 이어 "농협의 유통부문 투자계획이 2015년까지 고려한 장기적인 투자전략임을 감안할 경우 2~3년 내로 선도 유통업체의 할인점 사업부문에서 농협과의 경쟁에 의한 펀드멘털 훼손은 거의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풀이했다. 대신 CJ투자증권은 농협의 기존 유통업체과의 전략적 제휴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즉 이는 농협이 유통사업 확장에 직접적인 출점 전략 외에도 지분 인수를 비롯해 기존 업체와의 제휴를 통한 사업확장 의지도 있다는 의미라는 것. CJ투자증권은 만약 농협이 기존 유통업체를 인수하거나 제휴할 경우, 투자대상으로 GS리테일을 꼽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