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사상의 은사’ 리영희 교수가 영면의 길을 떠났다. 8일 오전 리영희 교수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리영희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주최의 영결식이 열렸다. 유족들과 장례위원,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인사,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영결식은 황인성 시민주권 공동대표의 사회로 개식선언과 약력 보고, 조사, 추도사, 유가족 인사,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영결식장 앞 쪽에 앉은 유족들은 영결식 내내 침통한 모습이었고, 리 교수의 부인 윤영자씨는 고인을 기리는 추모사가 나오는 동안 연신 눈물을 훔쳤다. 장례위원장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조사에서 "고인은 한 치의 타협 없이 올곧은 선비와 지식인의 길을 고집했다"며 "험난한 시대였지만 당신이 외치는 진실로 민주화를 이루고 민간통일운동의 공간을 쟁취할 수 있었다"고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조선일보 해직기자 출신 신홍범 두레출판사 대표는 후배 언론인을 대표한 조사에서 "고인은 진실과 이성이란 두 말을 유산으로 남겨주셨다"며 "이성을 잃고 무책임한 보도를 일삼는 오늘의 언론을 보면서 이 말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도 조사를 발표했다.집행위원장인 고광헌 한겨레 대표는 "언론인이자 사상가로 고인이 남긴 모든 유산들과 언론이 물려 받아야할 모든 것을 받들어 승화시킬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리 교수의 장남 건일씨는 유가족을 대표해 "아버지는 한평생 치열하게 살아오셨다"며 "편안히 쉬어야할 여생도 병과 싸워야 했다. 이제는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으로 가셔야 한다"고 울먹였다.
유족들과 장례위원들, 시민 등은 영결식을 마치며 준비된 국화꽃을 고인의 영정 앞에 바쳤다.고인의 관 위에 국화가 쌓이고 시신이 운구 될 무렵, 한 시민의 제의로 영결식장에는 ‘임을 위한 행직곡이’ 제창되었다.
운구차는 고인이 근무하던 한겨레신문사를 들러 오전 10시 수원 연화장에 도착한다. 리 교수는 오후 4시께 장지인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영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