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로 한나라당 떠난 지 꼬박 한 달째…세 확산 본격화할까?
폭풍 전야처럼 조용했던 지난 한 달…메시지 ‘있었나 없었나’ 정치권 촉각
이르면 봄, 늦어도 여름 전에는 가시적인 성과 만드는 게 ‘열쇠’
외견상 손학규(60)의 봄은 너무 짧았다. 불과 며칠 뿐이었다. 지난 달 19일 “새 정치질서를 창조하겠다”며 탈당을 선언했을 때만해도 ‘손학규 대세론’은 꿈틀거릴 조짐을 보였다. 여권의 ‘유일한’ 후보로 거론되며 한나라당을 뛰어넘는 이른바 ‘손학규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관측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착각’에 가까웠다. 손학규를 향한 기대와 주문은 수개월째 꿈쩍 않는 ‘이ㆍ박 양강’ 구도 속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형국이었다. 대세가 뒤바뀌는, 정계개편의 흐름이 바뀌는 기류는 발견할 수 없었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탈당 직후, 며칠 간 새로운 정치세력의 창출과 정치지형의 변화를 위한 결단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많은 말을 했고 많은 일을 했다. 새로운 ‘선진평화세력’의 단결을 촉구했다.
그래서 탈당에 대해 “역사적 결단”이라고 환영했던 범여권을 중심으로 “초심을 잃지 말라”는 주문이 나오기 시작했고, 시베리아에 홀로 서있을 것만 같았던 손학규는 천군만마를 얻은 ‘붕뜬’ 기분 속에서 대통령 집권 이후 청사진들을 눈 앞에 펼쳤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유권자의 마음에 손학규 전 지사는 굳이 노무현 대통령의 비유를 빌리자면 ‘보따리 장수’였을 뿐, 손 전 지사의 성토는 마음에 닿지 않았다.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손 전 지사의 탈당은 ‘잘못된 것’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탈당설이 흘러나올 때마다 “나는 한나라당의 수문장”이라며 이를 일축했던 것과 달리, 탈당 이후 “한나라당은 군정과 개발 독재 잔당들의 정당”이라고 입장을 180도 선회한 것에 대해 많은 유권자들이 ‘그러면 그렇지’하는 식의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이를 반영하듯,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한지 열흘이 지나면서 탈당 직후 상승했던 지지율은 주춤해졌고 지금까지 상승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일 CBS와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손 전 지사는 7.6%의 지지율로 탈당 전과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9.4%의 지지율을 나타내며 10% 진입에 가능성을 보였던 탈당 직후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인 결과다. ‘손학규다움’이 사라지고, 한나라당을 탈당한, 범여권 후보군에 올라있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만이 남았다. 냉정하게 보면 ‘주도세력’에서 ‘대안세력’으로, ‘제1후보군’에서 ‘제3후보군’으로 회귀하고 있는 과정이다.탈당 이후 한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개혁적인 ‘손학규’의 탈당은 더 개혁적인 ‘홍준표’를 불러들였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뒤늦게 당내 대선후보 경쟁에 뛰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손학규 전 지사를 누를 한나라당의 새로운 개혁 카드로 부상했다. 개혁성으로 따지자면 더 파격적이다. 원희룡 고진화 등 다른 개혁성 대선주자들을 물리칠 정도다.더 파격적인 홍준표가 등장했다
그가 내세운 필승전략을 보면 개혁파 손학규의 ‘입’에서조차 들어볼 수 없었던 단어들이다. 부패와 냉전 수구 이미지를 개선해야 하고, 대미 자주노선을 강화해야 하며, 서민 중심의 분배 문제에 주목해야한다는 발언들은 홍준표의 인기를 반등시켰다.한나라당으로서도 손해볼 장사는 아니다. 손 전 지사의 탈당으로 당내 ‘개혁’ 이미지가 한발 후퇴하고 ‘보수’ 성향이 짙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안았던 당으로서는 향후 당내 경선국면에서 홍준표 카드는 정말 괜찮은 흥행몰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벌써 당일각에서는 홍준표가 손학규의 대안이 돼버렸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홍준표 의원은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선후보 경선 출마 여부와 관련, “오늘의 주제가 아니”라며 피해갔지만 대선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출마를 하게 될 경우, 한나라당과 한국 보수세력에 대한 견제가 그의 ‘색깔’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도개혁’과도 가깝다는 분석인데, 여기에 손학규의 고민이 있다.그래서 두 후보 중 누가 더 개혁적이냐고 따지면 현재 상황으로서는 홍준표 쪽이 더 강렬하다. 한 사람은 장점이었던 ‘추진력’을 뒤로 하고 바깥으로 나와 ‘자유인’이 된 반면, 한 사람은 새로운 추진력으로 당을 이끌고 나갈 분위기다. 언론은 최근 손학규보다 홍준표에 주목하고 있다. 안 그래도 개혁성을 띄어야 할 한나라당으로서는 홍준표가 보수로 회귀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든든한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있어 고마운 존재다.손학규 지지세력, 다 어디로 갔나?
탈당 초반 범여권 전체가 술렁였던 것과 달리, 그는 기대에 부응할 만큼 빠른 속도로 진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 범여권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들과 접촉했을 뿐, 예전처럼 ‘주인공’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김지하 시인, 박형규 목사 등 문화ㆍ종교계 인사들과 만났지만 지지자들을 끌어들이는 분위기, 다시말해 ‘반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치적 재도약을 위한 대책 마련에 손학규 캠프가 부심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정치권 일각에서는 손 전 지사가 이대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런 관측도 제기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손 전 지사의 최근 행보가 지난해 범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였다가 올해 초 정계를 느닷없이 은퇴한 고건 전 총리와 닮은 꼴이라는 분석 때문이다.고건 전 총리가 정치권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세가 없었다’는 것 때문인데 손 전 지사의 지금 처지가 그렇다. 고 전 총리의 경우 범여권의 집중적인 러브콜을 받았는데 실속이 없었던 것처럼, 손 전 지사도 러브콜을 받았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한나라당을 탈당했지만 당장 손 캠프에 합류하겠다는 사람은 전무하다. 이런 까닭에 손학규 전 지사의 ‘조용한 한달’을 두고 “대권행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손학규의 장점을 돋보이게 하고, 결점을 보완해야 할 주체들이 없는 상황, 바꿔 말해 손학규의 꿈을 실현할 그 어떤 동력조차 없는 상황에서 손학규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범여권에서는 손학규 전 지사가 뭘 하려는지, 어떤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것인지, 대통령이 된 이후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안지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손학규 “대통령이 안돼도…”
최근 손 전 지사는 30~40대 직장인들과의 간담회에서 “대통령이 안돼도 (새로운 정치의) 터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정치권 일각에선 여러 가지 정황상 그가 대통령의 꿈을 이미 접은 것이 아니냐는 다소 신빙성 없는 의혹까지 제기한다.물론 손학규 전 지사가 대통령의 꿈을 포기했다고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다. 손 전 지사가 지난 한 달간 대선후보로서 활동을 소홀히한 데는 ‘이유가 있다’는 반박 때문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손 전 지사의 조용하고 소극적인 행보는 탈당의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했던 것”이라며 “탈당의 변으로 내세웠던 새로운 정치질서의 모습이 곧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실제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손 전 지사는 지난 한 달간 휴일도 없이 밤 늦도록 각계 인사들을 만나면서 ‘중도세력’ 통합에 참여할 세력을 모으는 데 주력했고, 최근엔 범여권 의원들과도 물밑 접촉을 계속해왔다. 물론 손학규 캠프측에서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에 그냥 ‘설’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 따르면 손 캠프측에선 4.25 재보선이 끝난 뒤인 이달 말 또는 내달 초 전문가를 중심으로 가칭 ‘선진평화포럼’을 출범시킨 뒤 6월 중순께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가 합류하는 ‘선진평화연대’를 띄울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럴 경우 수도권 지역의 범여권 인사 10여 명 정도가 합류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4.19 혁명 47주년’을 맞은 지난 19일 국립 4.19 민주 묘지를 참배한 자리에서 ‘탈당후 한달을 맞은 심정과 향후 행보’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탈당후 지방을 돌면서 전국의 민심도 듣고 또 내가 해나가고자 하는 정치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그것을 국민들께 말씀드리고 있다”며 “선진 평화의 길, 세력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그동안 조용했던 한 달은 ‘손학규다움’을 되찾는 과정, 즉 다시 날을 세우고 있다는 얘기다. 여의도 정치권은 폭풍 전야처럼 조용했던 손학규의 지난 한 달 속에서 그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했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결론은 손학규 깃발을 꼽은 신당을 창당할 것이냐 말 것이냐로 압축된다. 범여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은 이명박 박근혜로 압축되는 빅2의 질주가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늦어도 여름 전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만드는 게 ‘열쇠’라는 답을 내놓고 있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