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국민회 행사 종료 후 집회 참가자들은 촛불 집회를 이어 가기 위해 청계광장에 다시 모였고, 이 과정에서 KBS 취재진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KBS <9시 뉴스>는 '6·29 범국민대회 개최…도로 점거로 시민 불편'이라는 제목의 보도꼭지 말미에 “한편, 이 과정에서 일부 과격한 시위 참가자들이 KBS 김모 여기자를 포함한 취재진에게 폭력을 휘둘러 3명이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어떤 이유로도 불법 폭력시위는 용납될 수 없다며 폭행 용의자를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겠다고 밝혔다”고 덧붙인 해당 뉴스를 접한 사람들로서는 마치 집회 참가자들이 과격한 시위대로 변해 KBS 취재진을 폭행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그런데, 이날 폭행이 일어난 바로 그 장소, 그 시각에 우연히도 <매일일보> 취재진이 있었다. 그리고 <매일일보> 기자들이 목격하고 취재한 현장 사건의 전말은 KBS가 전달한 그것과는 사뭇 다른 진실을 담고 있다.
“정식으로 사과해라” vs “잘못했습니다”
29일 오후 6시 경 범국민대회는 종료됐고 참가자들은 7시부터 진행될 촛불집회를 위해 청계광장에 모여들었다.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과정에서 KBS 취재진이 현장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시민들이 갑자기 KBS 취재진을 둘러싸고 “정식으로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
KBS 촬영기자는 연신 “미안합니다”를 내뱉고 있었지만 좀처럼 집회 참가자들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관심을 보인 시민들이 더 모이기 시작했고 KBS 취재진은 당황한 모습이었다.
흥분한 시민들은 KBS 취재진의 멱살을 잡으려 했고 이 과정에서 놀란 KBS 여기자가 넘어져 5분 가량 실신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사자인 김모 기자는 신원불상의 시위대에 의해 좌축 후두부를 가격당해 쓰러졌다고 주장했다. 병원에서는 뇌진탕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진단결과는 오늘중으로 나올 예정이다) 쓰러져있던 KBS 여기자는 잠시 후 주변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매일일보> 기자가 떠다준 물을 마시고 함께 온 촬영기자들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시비가 벌어진 이유
현장의 흥분이 좀 가라앉은 후 상황을 지켜본 여러 목격자들의 증언을 취합해 상황을 종합한 결과 이날의 시비는 KBS 취재진이 자초(?)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는 측면이 엿보인다.
목격자들에 의하면 이날 KBS 취재진과 실랑이를 벌인 시민들은 현장에 있던 취재진에게 “KBS가 왜곡 보도를 한다”면서 “취재하지말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KBS 취재진은 “취재하지 말라”는 시민들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며 시비에 맞대응했다. KBS 촬영기자(30대 중반 추정)와 오디오기사(20대 추정) 두 사람이 모두 손가락 욕설을 했다고 한다. (KBS 측은 손가락 욕설은 없었다는 입장임)
당시 현장에서 흥분했던 집회 참가자들은 대부분 40~50대 중장년층으로, 이들은 KBS 취재진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KBS 취재진의 행동에 흥분한 상태에서 ‘정식 사과’를 요구하면서 KBS 취재진의 멱살을 잡으려했지만 주변의 말리는 사람들(시위대)에 의해 제지당해 제대로 된 드잡이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 과정에 20대 후반 정도의 나이로 추정되는 오디오기사가 흥분한 사람들에게 끌려갔다가 이를 말리는 사람들에 의해 풀려나는 일이 있었다. 돌아온 오디오기사의 눈 주위에는 마찰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찰과상이 보여 당시의 거친 상황을 짐작케 했다.
반복되는 폭행 사건…맥락을 보면
어떤 이유로든 폭행은 옳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들여다보지 않고 폭행 사실 자체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폭력적이다.
1985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대한 유시민의 유명한 항소이유서에서 “우리 사회가 젊은 대학생들이 동 시대의 다른 젊은이들을 폭행하였다는 불행한 이 사건으로부터 ‘개똥이와 쇠똥이가 말똥이를 감금 폭행하였다. 그래서 처벌을 받았다’는 식의 흔하디흔한 교훈밖에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건 자체보다 더 큰 비극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는 문구가 떠오르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이날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둘러쌓여 있을 때 KBS 촬영기자는 ‘정식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과연 무엇이 죄송했던 것일까? 이날 저녁 KBS의 보도를 접하면서 떠오르는 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