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ㆍ살해, 강도 활개…“밤길 택시가 무서워요”
범죄 위해 ‘도급 택시’ 기승…관계자 “도급택시 활개 사실” 범죄 증가 우려
경찰 “심야 귀가시 가족이나 친구에게 소재지 아려라. 차안에서 졸지 말 것”
[매일일보닷컴] 야근이 많아 밤늦게 택시를 이용해 귀가하는 경우가 잦은 직장인 박모(25ㆍ여)씨는 요즘 밤길이 무섭다. 그래서 택시를 타는 내내 부모님과 통화한다.
지난 달 18일 서울 홍대 부근에서 실종된 20대 여성 회사원 2명이 택시기사로 가장한 3인조 강도에게 납치ㆍ살해된 사실을 접한 이후부터다. 직장인 이모(26ㆍ여)씨도 회식이 많아 밤늦게 귀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씨 역시 택시를 타자마자 집에 전화를 걸어 택시 번호부터 불러준다. 그리고 계속 통화를 한다. 이씨의 부모님은 최근 들어 집 근처 골목길까지 마중을 나온다고 한다. 이씨는 “최근 살해된 직장 여성이 ‘나’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심야에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여성을 상대로 한 성폭행 및 강도ㆍ살인 등 ‘심야의 여성 습격사건’이 언론을 통해 심심찮게 알려지면서 여성들 사이에 이른바 ‘택시 공포증’이 확산되고 있다.심야에 여성이 승객으로 탑승했을 경우, 택시기사가 느닷없이 강도 및 살인마 등 ‘괴한’으로 돌변, 서슴없이 범죄를 저지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피해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 8월31일 홍익대 앞에서 여성 회사원 2명을 납치해 금품을 빼앗고 살해한 혐의로 박모(35)씨 등 일당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범인은 8월 18일 오전 2시께 임모(25ㆍ여)씨 등 회사원 2명을 서울 홍익대 근처에서 빌린 불법 지입택시에 태워 납치해 금품을 빼앗고 목을 졸라 살해한 뒤 한강에 버리는 등 20일까지 여성 3명으로부터 100여만 원을 갈취한 뒤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이들이 범행에 사용한 택시는 범행을 위해 빌린 이른바 불법 ‘도급택시’. 택시회사가 도급회사에 택시를 대여하고 이들은 다시 도급기사들에게 택시를 빌려준다. 운전면허 자격증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택시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몇 년 동안 택시 경기가 나빠 이런 도급택시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도급택시를 단속하고 있지만 인력이 턱없이 적은 데다 관련 법률이 미비해 단속 규정도 갖춰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택시운전자격시험을 실시할 때 합격한 사람에 한해 범죄경력을 조회하고 있지만 이미 자격증이 있는 사람은 범죄를 저지른 후 다시 택시운전을 해도 사실상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고 전했다.상황이 이렇자 서울시는 ‘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여성들의 귀가를 돕는 여성전용 콜택시(여성이 운전자)를 오는 9월부터 운용하기로 한 상태. 그러나 이 같은 제도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현재 3개의 콜센터를 구축 중이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확보한 130명의 여성 운전기사로는 택시를 이용한 납치 및 강도ㆍ살해 등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범죄를 근절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택시업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최근 직장여성의 수가 늘어나면서 하룻밤 서울시내에서만 귀가하는 여성들의 수는 셀 수가 없을 정도”라며 “그런데 130대의 여성 운전 차량으로 직장 여성을 보호한다는 것은 언 발에 오줌누기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지난 1월부터 도입된 ‘그린택시’ 역시 여성 승객을 보호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이 제도는 차량마다 고유번호를 붙여 탑승자가 핸드폰으로 가족 등에게 이 번호를 보내면 차량정보가 전송된다. 현재 서울시내 모든 법인택시가 등록돼 있고 개인택시는 15% 정도가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용실적은 하루 평균 60여건으로 매우 저조하다. 홍대 사건의 범행차량에도 물론 그린택시 스티커가 붙어 있었지만 탑승자들은 알지 못했다. 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심야 귀가 시에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자신의 소재지를 꼭 알려야 하며, 특히 차 안에서 졸거나 곯아떨어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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