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최소연 기자] 조현오 경찰청장은 지난 21일 경찰의 날을 맞아 “생활 주변의 불안과 위험요인을 미리 살펴 안전과 인권의 수호자로 경찰이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인천 길병원에서 조폭들의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다. 경찰은 마냥 지켜보고만 있다가 제대로 보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수뇌부는 뒤늦게 관할 경찰서장을 직위해제하는 등 부산을 떨고 있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몇몇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재발을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 보는 앞에서 칼부림”
경찰, 허위 축소 보고까지…조현오 경찰청장 “TV보고서 알았다”
난투극 관련자 전원 검거에 지역별 조폭 전담팀 구성 부산떨기
‘제66회 경찰의 날’이었던 지난 21일 금요일 오후 11시 50분경.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에 있는 길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인천 폭력조직 크라운파 조직원 100명과 신간석파 조직원 30명 사이에 충돌이 빚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눈앞에서 한 조직원이 상대 조직원을 흉기로 찌르는 상황에서도 이를 막지 못했다. 인천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충돌은 신간석파에서 크라운파로 소속을 바꾼 조직원이 장례식장 앞에서 신간석파 조직원에게 흉기로 2∼3차례 찔려 중상을 당하면서 시작됐다. 경찰에 따르면 교통사고로 사망한 크라운파 소속 조직원의 부인을 조문하기 위해 장례식장에 모여 있던 크라운파 조직원들은 소속 조직원의 부상 소식에 격앙돼 식장 밖에 집결했다. 이날 조문을 위해 장례식장에 참석했던 신간석파 조직원들도 연락망을 가동해 속속 현장으로 조직원들을 모았으며 양측 간에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이 한동안 이어졌다. 현장에는 기동타격대와 방범순찰대 등 경찰 70여 명이 출동해 양 조직을 분리하고 해산시켜 더 이상의 유혈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지만, 경찰의 허술한 초동 대응은 논란이 되고 있다. 경찰은 양 조직이 충돌하기 이전에 “조폭들이 장례식장에 모여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112신고를 받고 남동경찰서 1개 형사팀을 현장에 보냈다. 현장에 출동한 형사 5명은 문상 온 조직폭력배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점을 제외하고는 특이사항이 없다고 보고 장례식장 앞에서 추가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때 멀리서 한 조직원이 상대파 조직원을 쫓으며 달려오다 형사들 바로 앞에서 흉기로 상대 조직원을 2∼3차례 찔렀다. 현장에서 검거된 신간석파 조직원 김아무개(34)는 칼부림을 자행한 이유에 대해 피해자인 크라운파 조직원 이아무개(34)가 자신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조폭들이 문상을 위해 모인 것만으로 검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약해 형사들이 현장에 남아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며 “그런 와중에 갑자기 한 남성이 상대방을 흉기로 찔렀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막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허위·축소 보고…감찰 착수
경찰청은 월요일인 23일 안영수 인천남동경찰서장을 직위해제하는 한편 같은 서 형사과장과 강력팀장·상황실장·관할 지구대 순찰팀장 등을 중징계하고 현장 출동 경철관 4명도 징계조치했다.
이번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요인 중에 하나는 ‘허위 축소보고’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특히 조현오 경찰청장은 공식 라인을 통해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언론을 통해 현장 상황을 접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현오 청장은 24일 “단순 우발 충동으로 보고를 받았다가 TV보고 칼부림 사실을 알았다”며, “경찰이 적극 대처하지 않고 적당한 수준에서 덮고 감춘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경찰의 신뢰를 올리려면 허위·거짓보고 관행 없애야 한다. 솔직히 인정하고 가야한다”고 지적한 조 청장은 특히 “형사법상 ‘사고’의 틀로 바꿔야 한다”며, “발생해야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수사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경찰청은 인천지방경찰청장과 차장, 경찰청 본청 수사국장과 형사과장 등에 대한 감찰에 들어갔으며, 특히 집단 난투극이 지휘 라인에 보고되는 과정에서 주요 사실이 누락되는 등 허위 또는 축소 보고가 이뤄진 사실을 확인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현장 조치가 미흡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축소·허위보고 등의 책임을 물었다”며, “축소·허위보고한 인천청 지휘부와 경찰청 수사 보고라인에 대해서도 감찰조사를 실시한 뒤 엄중 문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조폭 수사본부’ 가동…2개월간 집중단속
인천지방경찰청은 ‘조직폭력배 수사본부’(본부장 정해룡 인천경찰청 차장)를 구성해 인천 조직폭력배 집단난투극 관련자들을 전원 검거키로 했으며, 연말까지 전국 조직폭력배들에 대한 특별 단속을 벌인다는 방침을 세웠다.
수사본부는 24일 “지난 21일 길병원 장례식장 조직폭력배 난투극에 가담한 A(36)씨 등 23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추가적으로 가담자들의 인적사항을 특정하고 검거에 주력하고 있으며, 수사본부 내 조직폭력배 전담 조사반을 별도 편성해 조사 대상자들을 상대로 조직의 규모와 결성 목적, 행동강령, 자금원 등을 철저히 조사하기로 했다. 경찰은 또한 인천 9개 경찰서에 조폭전담수사팀을 운영, 12월31일까지 조직폭력 특별단속과 일제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조직폭력배의 발호 분위기를 사전에 차단하고 현재 조직폭력배 관리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 위해서다. 이번 단속으로 인천에서 활동하는 조폭 중 불법행위가 중한 조폭은 구속수사를 하는 한편 추가범행도 광범위하게 수사해 조직을 와해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 기간 첩보수집과 단속활동을 벌이며 필요한 경찰병력을 최대한 지원하는 등 가시적인 강력한 활동으로 범행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며, “2개월간 일제점검을 통해 활동성이 강한 조직폭력배는 반드시 관리대상으로 선정하겠으며 지속적인 첩보수집으로 해당 조폭의 활동을 위축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청 단위에서의 조직폭력배 전종수사체제도 강화토록 했다. 경찰은 각 지방청 광역수사대에 조폭 전담수사팀을 구성, 집중단속을 실시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조직폭력배의 불법행위와 관련, 다중 운집 징후 등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고 국민이 불안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경찰권을 강력히 발동하겠다”며, “조직폭력배들에 대한 엄정하고 신속한 수사로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폭력조직 와해를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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