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권희진 기자] 타워팰리스를 중심으로 조성되어있는 강남구 도곡동 부촌의 바로 옆에 위치한 포이동 266번지(주소지상 개포동 1266번지). 무허가주택 96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이곳은 지난 여름 화재로 75가구가 전소된 후 트위터를 중심으로 한 자원봉사단 재건지원을 통해 이 시대 가장 유명한 판자촌이 됐다. 화재로 집이 없어진 후 바로 옆 부촌에서 뿜어내는 에어컨 실외기들의 열기 때문에 더 뜨거운 무더위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6개월. 몇 차례의 재건과 철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덧 살을 에는 추위가 감도는 겨울도 절정을 맞고 있다. 주민들과 자원봉사 단체들은 12월17일 마을회관 앞에서 ‘포이동 재건마을 입주식’이라는 이름으로 마을잔치를 열었지만 구청의 압박과 언제 다시 들이닥칠지 모르는 철거용역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포이동을 짓누르고 있다. <매일일보>이 지난 27일 포이동을 찾았다.
당장 먹을 것 걱정하는 주민들에 수억원 변상금 요구
공대위 “주민들이 현 부지에 살게 된 ‘강제이주 역사’ 인정해야”
강남구 “공대위가 언론 플레이 주도하며 주민들 혼란에 빠트려”
지난 6월21일 화재로 마을 전체가 불에 타 없어진 후 강남구청은 주거복구를 불허하면서 ‘지하방 등 임대주택으로의 이전 방침’을 발표했지만 재건마을 주민들과 빈곤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포이동 266번지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서울시와 강남구청 측을 상대로 강제이주 인정, 토지변상금 철회, 점유권 보장을 요구하며 대치중이다. 임대주택으로의 분산이주 정책이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는 임대주택에 들어가서도 거주를 위해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 실제로 포이동 주민 대부분은 독거노인 혹은 손자를 키우며 살고 있는 노인 들이 많은데 이들은 비용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토지변상금 논란
공대위는 강남구청의 ‘인근 임대아파트로서의 분산 이주’ 제안에 대해 포이동 주민들이 현 부지에 살게 된 강제이주 역사를 인정하고 책임지지 않았다는 점과 함께 ‘불범점유’라는 명목으로 부과된 토지변상금 약 25억원(114명 중 6명 제외한 내용, 2010년까지)을 철회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포이동 판자촌이 형성된 것은 1979년 당시 정부가 넝마주이 부랑인들을 모아 ‘자활근로대’를 결성해 이들을 이곳으로 강제 이주시키면서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출입 통제, 수시 단속 등 정부의 관리를 받던 주민들은 그해 강남구청이 하천부지였던 마을 부지를 도서관부지로 변경하면서 주소지와 주민등록을 잃었고, ‘시유지를 점거한 불법점유자’라는 오명과 함께 토지변상금을 부과받기 시작했다. 2003년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위원회’가 결성되고, 2009년 주민등록이 다시 등재되기는 했지만 ‘토지변상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곳 주민들은 포이동을 떠날 수 없는 실정이다. 강남구청의 방침대로 임대주택을 얻어 이주한들 토지 변상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언제 집을 압류당하고 거리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청 측은 개인재산 압류 및 물품관리법을 근거로 수천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토지 변상금을 요구하고 있지만 주민들 대부분이 신용불량자로 이들 앞으로 적게는 3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 원 정도가 부과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강남구청의 변상금 요구는 돈을 받아내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 같지 않아보인다.
“날마다 벼랑끝”
포이동에 상주하면서 지원활동을 하고 있는 ‘민중주거 생활권 쟁취를 위한 철거민연합’ 박정재 연대사무국장에 따르면 토지변상금은 5년마다 소멸되지만 토지를 점유하고 있는 동안 개인 재산 압류 및 공개매각이 가능해 개인재산 보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포이동 화재 대응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2011년 최저생계비 기준 포이동 주민들은 1인 가구 기준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가구가 전체의 44.8%나 차지했다. 그리고 현재 포이동 주민 중 1가구를 제외한 72가구 약 98%가 체비지(토지) 변상금이 있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체비지 변상금이 일정기간 이상 체납되면 체납자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에 압류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포이동 주민 27.8%가 압류 상태이고 과거 압류되었다가 현재는 해제된 상태가 4.2%, 68.1%는 압류된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는 관할 행정기관에서 압류를 신청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체납자가 압류할만한 재산을 보유하지 못해서라고 보고서는 해석하고 있다. 즉 포이동 주민의 상당수가 자산이 전혀 없다는 것인데 이들은 구청 측의 무리한 토지변상금 요구로 심리적 압박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중에서도 내년 1월29일까지 토지변상금 3억4천만원을 내지 않을 경우 법정 싸움까지 진행될 위기에 처해 있는 조철순 전 포이동 비상대책위원장의 사연은 특히 기가 막히다. 재활용업체를 운영하던 조 전 위원장에게 지난 10월 강남구청이 ‘11월30일까지 퇴거’를 요구했고 조씨는 이를 지키려고 했지만 만기 하루 전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하루 늦게 퇴거했는데, 강남구청 측은 하루가 늦었다는 이유로 3억4천만원을 내라고 압박하고 있다.
“나만 죽기는 억울하다”며, “강남구청에서 어떻게 죽을까 매일 그 생각 뿐”이라고 말하는 조씨는 인터뷰 내내 눈물을 흘리며 “날마다 벼랑 끝에 몰리는 기분이다. 부디 국가가 말로만 서민을 위해 고민하지 말고 서민이 숨 쉴 수 있는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강남구청 “오해” 강남구청이 제시한 협의각서는 “본인은 개포동 1266번지(재건마을) 주민으로서 지난 201.6.12(일) 화재발생과 관련하여 부득이 생활근거지인 현 지역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음을 강남구청에서 이해하여 주시기 바라며, 향후 서울시에서 강남구 개포동 1266번지에 대한 정비계획을 수립, 추진시 적극 협조할 것을 약속하고 이에 각서를 제출합니다”는 내용이다.이에 대해 박정재 국장은 “조건 없는 각서가 아닌 포이동 주민을 농락하는 ‘노예계약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강남구청 측은 “협의각서는 나중에 주민들을 강제로 내쫓겠다는 뜻이 아니라 개발 계획이 확정됐을 때 편의와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주민들의 오해가 깊은 것 같다”고 강변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특히 “우리는 진정성을 가지고 주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서 힘쓰고 있는데 오히려 주거복구공동위가 언론 플레이를 주도하며 주민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며 대책위 관계자들 개개인에 대한 험담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한편 무리한 토지변상금 부과에 대한 질문에 이 관계자는 “동 부지는 서울시 시유지로서 변상금 부과 취소는 어렵다”고 답했다.
얼어붙은 하수도, 얼어붙은 마음
본지 기자가 27일 재건마을을 방문했을 때 주민들은 임시 조립식 건물 안에서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겨우 전기장판 하나에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주민들은 이미 너무나 지친 탓인지 처음엔 인터뷰도 거절하며 다소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마을대표이면서 비대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송희수씨는 “화재 직후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고 말문을 열면서“구청 측에서 언론사 기자들에게 점심값을 주고 포이동 취재를 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는 얘기가 한창 나돌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또 “한창 우리 포이동 마을에 관심을 가졌던 기자가 있었다”며 “얼마쯤 지나 뜸해졌는데 그 이유가 국정원까지 개입 돼 포이동 취재를 하지 말라며 지시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주민 측 인터뷰 내용을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알려줄 것을 재차 강조했다.
이날 재건마을은 추운 날씨 속에 하수도가 꽁꽁 얼어붙은 상황이었다.
상하수도 공사가 중단돼 물 공급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질문에 송씨는 “옛날 방식으로 하수도 연결을 해 사용하고 있다”면서 “구청 편의에 맞는 협의각서에 협조를 절대 해줄 수 없다”며 토지변상금과 점유권 보장 등을 조건없이 인정해줘야 우리도 협조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재건마을에는 빈민연합활동을 하러 온 대학생 50~60명이 궐기 그림그리기 등 다양한 현장 활동을 하고 있었다.
김형근 (서강대)학생은 “현장 활동을 통해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인식을 가지려고 노력한다”면서 “주민들이 주민으로 인정받고 이 나라가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위한 게 아닌 제도에 우선해 주민들이 더 이상 피해를 받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