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하면서 영어 배울 수 있다더니 결국에는…해외업소 ‘나가요 걸’
관광비자 ・ 밀입국 통해 해외원정…“1만5천불 미리 줄게, 빨리 출국해”
선불금 갚으려다 더 큰 빚져 성매매 발 못 떼…“피해자는 성매매여성”
[매일일보닷컴] 최근 국내 여성 1,500여명을 미국 등지로 밀입국시켜 성매매를 알선, 강요해 온 일당 40여명이 1년여에 걸친 한국・미국・캐나다의 공조수사로 적발됐다. 경찰청 외사국 국제범죄수사대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002년부터 인터넷 사이트에 ‘성매매 없는 미국 술집에서 일하도록 해주겠다’고 허위광고를 낸 뒤 1인당 1만불에서 1만5천불의 비용을 받고 비자위조 등을 통해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으로 밀입국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매일일보>에서는 해외로 원정성매매를 떠나는 여성들이 어떤 경로로 밀입국을 하는지, 또 해외성매매의 실상은 어떤지, 이들이 ‘해외 성매매’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에 대해 심층취재했다.
지난 2004년 3월, 성매매를 금지하는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됐다. 법이 시행된 지 4년이 지난 2008년 3월 현재, 집창촌은 과거에 비해 규모만 줄어들었을 뿐 성매매특별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하다. 게다가 안마, 마사지숍과 같은 변종·신종 성매매업체까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2004년 확실히 많은 수의 여성들이 집창촌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性산업에 발을 담그기 전인 그 때가 아닌 변종 성매매업소였다. 심지어는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일 할 곳이 줄어들자 성매매 여성들이 미국, 일본 등 해외로 성매매를 떠나고 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오곤 했다.경찰청 외사국 국제범죄수사대 한 관계자에 따르면 IMF와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해외원정 성매매를 떠나는 여성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그러나 원정 성매매를 결심한 여성들은 비단 성산업에 종사하던 여성들뿐만이 아니었다. 대학생, 구직에 실패한 사회초년생 등 20대가 주를 이뤘지만 빚이 있는 여성, 주부 등 다양한 연령대의 한국여성들이 미국, 캐나다 등지로 원정 성매매를 떠났다.경찰에 따르면 이들 여성들은 인터넷에서 ‘일하면서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연락을 취했다. 그 다음은 성매매 알선업자들의 몫. 성매매 알선업자들은 “미국에서 2차를 나가지 않는 술집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면서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돈도 벌고, 영어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성들을 현혹, 외국으로 밀입국시켜 성매매를 강요한 것으로 조사됐다.이들은 외국에 있는 브로커가 현지 업소의 의뢰를 받아 국내 모집책에 의뢰하면, 국내 모집책들은 모집한 여성들에게 수수료 명목으로 1인당 1만~1만5천불씩 받는다. 이후 비자 브로커들이 관광으로 위조한 비자를 발급받아 오거나, 비자가 거부되는 여성의 경우 밀입국시킨 것으로 드러났다.경찰은 지난달 28일, 직업안정법 및 성매매특별법 등 위반으로 해외 원정 성매매 브로커 정모(42)씨, 해외 밀입국 조직원 고모(28)씨 등 4명을 구속하고 나모(40), 조모(52)씨 등 3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원정성매매를 떠난 여성의 규모는 검거된 고씨 등의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인적사항과 조사과정 중 피의자 진술을 토대로 지난 3년간 이들 일당을 통해 최소 1,500명에서 최대 10배에 달하는 인원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돈 벌면서 영어 배울 수 있다더니…”
외국행을 결정한 여성들 중 일부는 해외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알고 떠나는 사람도 있었으나 대부분 호프집에서 서빙을 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밀입국을 결정한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드러났다. ‘돈과 영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이 같은 조건은 사회경험이 없는 사회초년생이나 대학생들에게는 더욱 솔깃하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 영어를 배우려고 했던 이들은 집안형편이 넉넉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산업에 종사했거나 빚을 지고 있었던 여성들 역시 형편이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와 관련 한 경찰 관계자는 “광고를 보고 찾아온 여성들의 대부분은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때문에 비자위조, 밀입국비용, 브로커 수수료 등으로 청구하는 1만~1만5천불을 지불할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면서 “그럴 경우 여성들이 일하게 될 해외업소에서는 선불금 명목으로 국내 브로커에서 필요금액을 대신 충당해주고, 여성들은 빚을 안은 채로 밀입국을 하게 된다. 노예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경찰조사결과, 이들 여성들은 빚 때문에 감금생활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여성들은 포주가 방에 CCTV를 설치·감시하고, 외출을 할 때도 업소관계자와 동행해야 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와 관련 성매매피해/생존자 자활지원단체인 ‘다시함께센터’ 조진경 소장은 “한국이든 외국이든 포주들은 빚을 지고 있는 소위 ‘아가씨’들에 대한 감금과 감시가 심하다. 특히나 자신이 빌려준 돈의 몇 갑절에 해당하는 이익을 뽑아내기 위해 혹독하게 성매매를 강요한다”면서 “성매매 여성들은 빚을 갚으려 더 큰 빚을 지고 외국으로 떠난다. 게다가 타국으로 가게 되면 말이 통하지 않아 그 자체가 ‘감금 아닌 감금’이고, 국제적 인신매매”라고 말했다.빚→빚빚→빚빚빚 ‘악순환’
조 소장은 이 같은 실태와 관련, 성매매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나몰라라’하는 안일함과 성매매에 대한 암묵적인 인정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지난 세월동안 국가가 성매매를 부추기고 성을 상품화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 과거 일제시대부터 공창제(관의 허가를 받아 성매매를 하는 것) 등을 이용해 성매매를 국가적으로 인정해왔다. 60년대 미군기지가 들어서기 시작할 즈음에는 공창제를 폐지하고 기지촌을 활성화 시켰다. 80년대 올림픽을 유치하면서는 매춘관광・관광요정을 등 성매매를 부추겨 외화를 벌어들였다”면서 “우리나라 성매매의 역사는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닌 국가적 방침”이었다고 말했다.또 90년대 들어서 청소년들의 원조교제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것 역시 국가적으로 성매매에 관한 역사가 뿌리 깊기 때문이라고 조 소장은 말했다.
성매매 알선, 적발 되도 처벌은 ‘미미’
우리는 단순히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축소된 성매매 시장으로 인해 성매매 여성들이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또 성매매를 법으로 금지해 성폭행 건수가 증가했다며 “성매매는 사회 필요악이다. 성매매를 허용해야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그러나 다시함께센터 조 소장의 의견은 이와 다르다.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해외원정 성매매가 증가했을 수는 있지만 법시행이 해외 성매매 성행의 근본적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폭행문제 역시 성매매가 법적으로 금지되기 전부터 있어왔고, 성매매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법이 아니라 ‘처벌의 강도’에 있다는 게 조 소장의 주장이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4년째지만 여전히 성매매는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다고 했을 때 각종 여성단체들은 ‘국경을 넘어 원정성매매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며 그에 대한 방안 마련을 국회에 건의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성매매방지법이 있음에도 성매매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법만 존재할을 뿐, 문제해결 의지와 그에 따른 처벌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성매매 방지법 만들었더니 국경까지 넘어가서 몸을 파네. 성매매여성들은 보호할 필요가 없어’라고 여론을 몰아 성매매특별법을 무력화, 폐기시키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지난 2004년 1월부터 2006년 8월까지 여성가족부는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에 위치하고 있는 A지역의 성매매알선이 가능한 유흥주점, 단란주점, 안마시술소, 노래방 등 91개 업소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성매매알선, 풍기문란 등의 위반으로 적발된 업소들이 받은 처분은 과태료 1백여만원과 영업정지처분 1~2개월 정도였다.몇백만원의 벌금과 영업정지처분은 불법영업을 며칠만 하면 벌금 이상의 이익을 낼 수 있다. 때문에 포주는 계속해서 불법 성매매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조 소장이 강도 높은 처벌을 요구하는 것 또한 이러한 이유에서다. 조 소장은 “성매매는 SEX를 사고파는 게 아니라 남성은 권력을 사고, 여성은 수치와 모욕을 파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남성은 성매매 여성에 대해 ‘돈 주고 샀으니까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건 SEX가 아니다. 성매매가 근절되기 위해선 남성들의 사고가 먼저 깨어져야 한다”고 전했다.한국외국어대학교 이호중 법과대학 교수 역시 저서 <성매매-새로운 법적대책의 모색>에서 “성매매는 남성과여성의 불평등한 권력적 관계를 이용해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인격침해 행위”라며 “성매매 여성은 가부정적 권력에 의해 억압받는 피해자”라고 표현했다.설마 몸 파는 게 좋아서 할까
그렇다면 이들 성매매 여성들은 인권을 착취당하면서도 왜 성매매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바로 ‘성매매여성’이라는 주홍글씨, 낙인 때문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해도,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될 때도 ‘혹시나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성매매 여성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이유 역시 ‘익명성’이 주는 편안함에서다. 또 백인남성들은 한국남성들과 달리 매너가 좋을 것 같다는 환상도 여성들을 해외로 떠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다시함께센터 조진경 소장은 “‘성매매에 발을 들여놓은 네 탓이지 네가 왜 피해자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분명히 과거부터 성매매를 장려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소녀들에게는 주위에는 타락으로 빠질 수 있는 ‘惡’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는 분명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성매매는 분명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기자가 몇 달 전 만난 한 여성단체 활동가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몸을 파는 것이 좋아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은 없다. ‘나하고 다른 세상이야기’라는 편견을 갖지 말고 이 여성들이 이 상황에 닥치게 된 까닭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