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몸이 불편할 뿐 '또라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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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몸이 불편할 뿐 '또라이'가 아니다”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8.12.26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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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8개월차> 7년 싸움으로 ‘법제정’ 절반의 성공… 나머지 절반은?

성희롱∙성차별 줄었지만 시설∙탈시설 장애인 인권침해 수준 ‘심각’
차별 진정 넣었지만 해결은 절반만…“조사관 부족해 어쩔 수 없다”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지난 4월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하 장차법)이 시행된 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가 국가인권위원회에 두 차례에 걸쳐 집단 진정을 넣은 결과 상당수가 시정됐지만 이들에 대한 인권침해는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차법은 앞 못 보고, 안 들리고, 말 못하는 장애인들이 모여 7년간 투쟁을 벌인 결과 얻어낸 값진 결과다. 하지만 아직 법의 실효성은 미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장애’로 인한 차별이나 ‘인권침해’에 대한 진정건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장애인 차별’이 우리사회 곳곳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 지난 9일 오전 9개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장애인복지예산안 삭감반대기자회견 후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와 면담을 요구하다 한 여성 장애인이 국회 경위들의 저지로 인해 바닥에 쓰러져 있다.
장추련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에 접수된 ‘장애’로 인한 차별진정은 2001년 13건, 2002년 20건…2006년 115건, 2007년 246건, 2008년 530건 등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는 2001년 이후 장애로 인한 차별진정 1,117건 중 25.7%에 달하며, 장애인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차별과 인권침해로 인한 고통의 정도가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병력, 성별, 용모 및 신체조건과 많은 논란을 야기했던 장애인 성희롱에 대한 진정이 최근 몇 년 새 줄어들고 있는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물론 장차법 시행 이후 장추련이 두 차례에 걸쳐 ‘집단진정’을 했다는 요인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로 인한 차별진정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앞 못 보는 것도 억울한데 바가지 요금까지

○○ 문화체육센터에서 진행하는 무료 요리공개강좌를 듣고 싶었던 청각장애 2급 Y씨는 수화통역사와 동행해 교육에 참여했다. 이들의 모습을 본 요리강사는 “수화통역이 강의진행에 방해가 되니 안 보이는 곳으로 가달라”고 말했다. 이에 통역사는 자리를 옮겨 수화통역을 이어 갔으나 강사는 재차 장소를 바꿔 달라고 했고, 심지어 “강의를 듣고 난 후에 통역해주면 안 되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농아인협회 정진호 기획부장은 “청각장애인 Y씨는 자신이 원하는 강좌에,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서 수강할 권리가 있다. 요리강사가 임의로 수화통역사의 위치를 지정하는 것은 장애인을 무시하는 차별행위”라며 “또 수화통역이 방해되니 강좌가 종료된 후에 수화통역사가 배운 내용을 전달하라고 하는 것은 장애를 이유로 차별한 것임과 동시에 청각장애인에 대한 학습권 침해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이 사례에 대해 “요리강좌에서 Y씨의 수화통역이 이뤄졌기 때문에 차별행위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장애로 인한 차별은 시각장애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시각장애인들은 버스번호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콜택시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택시 운전사마다 요구하는 택시요금은 천차만별이다. 속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요금미터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 이들 시각장애인들은 운전사가 부르는 대로 금액을 지불해야한다.

이를 위해 전남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인권위에 택시 음성안내장치 도입을 진정해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 개정을 권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제도개선으로 분류될 경우 시간만 오래 소요될 뿐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 힘들다는 게 실제 불편을 겪고 있는 장애인들의 이야기다. 또 이들 장애인들은 장애로 인한 차별은 어떤 장애를 갖고 있든지 모든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정작 진정처리를 담당하고 있는 인권위 차별시정본부 소속 장애차별팀은 인력부족을 이유로 차별진정을 제대로 소화해내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접수된 장애로 인한 차별 진정 530건 가운데 11월말까지 종결된 사건은 287건으로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 인권위 장애차별팀 한 관계자는 “인원은 7명뿐이고 진정건수는 밀려들고 있는 상황이어서 ‘처리기간이 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 같다”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물리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시간․인력 등이 여유롭다면 직접 현장에 찾아가 조사를 하겠지만 여건이 조성돼있지 않아 전화로만 진정처리를 하고 있다”고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시설에서 보낸 20년…구겨진 자존심만 ‘잔뜩’

▲ 지난 3월 19일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성람,석암재단의 비리 척결과 사회복지사업법 전면 개정,사회복지시설 생활인의 인권확보 등을 촉구하고 있다.
장애인들끼리만 모여 생활하게 되는 시설 생활인들의 경우도 시설관리인, 자원봉사자들에게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말을 똑바로 못하니까 자원봉사 온 사람들이 답답해하다가 나중에는 또라이 취급해요.” (석암재단 생활인 홍성호)

“시설에서 20년 넘게 살았어요, 연말, 연초가 되면 손님들이 많이 오는데 우리를 동물원 원숭이 취급을 해요. 과자 같은 것을 던져주고는 갈 때가 되면 꼭 우리를 모아놓고 사진을 찍고…. 봉사하러 온 게 아니라 ‘우리 이런 일 했다’고 선전하려고 오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요. 또 시설 관리자들은 손님들이 사온 과자들을 자기네가 나눠주겠다고 하면서 가져가는데, 그러면 나중에 먹을 것을 주는 방도 있고 안 주는 방도 있어요. 어느 방은 줘봤자 먹고 똥만 싼다고 하면서….” (석암재단 생활인 김동림)

시설보호는 장애, 빈곤 등에 의해 스스로 거주를 해결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시설에 수용해 보호, 치료, 휴식 등을 제공하는 사회복지서비스다. 지난 8월 정부가 발표한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계획에 따르면 장애인 생활시설 288개소에 20,958명, 공동생활가정 및 단기보호시설 427개소에서 3,502명이 생활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 생활시설 1개소당 평균 72명 이상이 생활하고 있어 보편적 거주환경이라고 볼 수 없는 ‘대규모 수용’임을 보여준다.

특히 사회복지생활시설은 장기간의 보호와 휴식기능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수용보호자의 시설화, 비인간적 감금, 낡은 시설 및 운영비용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이와 관련 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 박숙경 상임활동가는 “각 시설별로 약간의 유형차이가 있으나 대부분의 시설에서 불법구금, 폭행, 성폭행, 동의 없는 불임시술 등과 같은 신체자유 침해와 통신, 종교, 사생활, 생존권, 재산권, 노동권, 자기결정권 침해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면서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마을의 주민으로 살기위해서는 프로그램 이용자가 아닌 거주의 주체가 되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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