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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본인의 인지여부와 상관없이 생각보다 많이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 중 가장 익숙한 것이 바로 피해의식 (victim mentality)이다. 피해의식은 사전적으로는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 재산, 명예 따위에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감정이나 견해를 의미한다. 피해의식은 실제 그러한 피해의 발생 여부와는 상관없이 느끼게 되므로 감정적 오해와 갈등, 스트레스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특히 피해의식은 개인적으로 과거의 경험에 따른 트라우마(trauma)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과거 피해를 본 경험이 지속적으로 정신적인 충격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유사한 환경이나 상황, 조건이 갖춰진다는 생각이 들면, 자신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속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에 따른 집착과 정신적 여유부족으로 인한 현실감 상실, 그리고 상황 통제권에 대한 갈망에 따른 조급함, 압박감, 등도 원인이 된다고 한다.
물론 학술적으로야 이외에도 피해의식이 작용하는 복잡한 기제(機制)가 존재하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열등감이나 낮은 자존감이 피해의식을 확산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 소수자, 빈민계층 등 사회적 약자들일수록 피해의식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피해의식은 정신적 편향성을 지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특정 관점을 고수하기 때문에 명확하게 옳고 그림을 판단하기 힘들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정신적 편향성은 모든 일들에 대해 편협한 확증적 사고를 불러온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절대 인정하지 않으며, 모든 사고는 비논리적이며 본인의 감과 느낌에 의존하게 된다. 또한 판단의 근거 역시 자신의 생각에 일치하는 것만 편집적으로 수렴하기 때문에 비합리적 판단과 행동을 지속하게 되며, 당연히 결과 역시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만성적인 분노와 정신적 피로감을 유발한다.
그래서 피해의식에 휩싸인 사람은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흥분상태가 지속되며, 주변에 부정적인 감정을 지속적으로 발산하게 된다. 또 원하는 결과를 확보하는 과정을 힘의 논리로 간주하고, 어떠한 이유에서건 이겨야만 된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본인의 피해의식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거짓말도 하며, 공격적 행동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피해의식이 심한 사람은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며, 심지어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런데 피해의식은 꼭 인간 개개인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집단이나 조직에도 피해의식이 존재한다. 물론 그 시발점은 집단, 조직 내 개인의 피해의식 발산에 따라 다른 구성들이 피해의식에 전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성원들이 동일 혹은 유사한 생각과 판단기준을 공유하면서 확산, 강화된다. 피해의식이 전염되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적 피해의식은 민간기업, 공공기관, 특정지역뿐만 아니라 심지어 국가 전체로까지 확산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우리 민족이 상대적으로 피해의식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끊임없이 외부 강대국으로 부터 침략을 받았고, 내부적으로는 양반지배계층의 착취에 시달려 왔다. 또한 일제 강점기, 군부독재 등을 거치며 특정한 피해의식이 각인되어 왔다는 것이다. 결국 요약하자면 외부적으로는 강대국에 대한 거부감, 내부적으로는 부와 권력 을 가진 지배층에 대한 잠재된 피해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사회는 영원한 갈등의 고리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결론이 도출된다. 누군가는 항상 피해의식을 갖게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피해의식에 대한 정의와 증상들을 살펴보니, 어찌 보면 그럴듯한 분석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다. 최근의 우리의 국제관계, 사회 내부의 갈등요소들을 면면히 들여다보면,과거와는 달리 극단적인 대립각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오로지 자신의 입장에만 중심을 두고 획일적인 판단에 따라 상대방을 비난하는 행동들, 이러한 갈등 첨예화의 측면에는 혹시 집단적, 조직적인 피해의식이 잠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적폐, 토착왜구, 친미사대주의자, 반통일수구세력이니 하는 듣기 거북한 단어들이 뭔가 피해의식을 통한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특히 집단적 피해의식에 발현에 따른 갈등과 편 가르기를 통해 이익을 보려는 자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절충안을 마련하는 건전한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피해의식에서 탈출하는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