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점 업주 대부분 환각성분 포함 사실 몰라 구매하기 쉬워
청소년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 높아…중독될 경우 기억상실도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환각성분이 들어있는 ‘본드’를 구입하는 게 어려워지자 본드를 대신해 바니시(니스)를 구입해 흡입하고 있는 비행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바니시 역시 본드와 같은 환각물질이 포함돼있어 이를 흡입할 경우 정신이 몽롱해지고 사리분별이 어려워지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정작 이를 판매하고 있는 문구점 업주들은 바니시가 본드와 같은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연 바니시 등이 청소년들에게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에 법률로 청소년들의 구입을 제한하고 있는 것일까.
“중학교 2학년 남학생 입니다. 오늘 친구들이랑 친구 집에 갔는데 애들이 다 니스를 마시는 거예요. 저보고도 한번 해보라고 했는데 처음이라 겁이 나서 거절했어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친구들이랑 좀 다퉈서, 저도 다음엔 해보려고요. 그런데 니스를 어떻게 마시는 건지를 몰라요. 무시받기 싫어서 그러는데 니스 흡입 방법 좀 알려주세요.”
‘친구들에게 무시받지 않으려고’ 니스를 마시려고 하는 한 남중생이 모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린 글이다. 특히 글쓴이는 환각물질을 흡입한 경험이 없으면서도 친구들에게 약해(?)보이지 않기 위해 흡입을 계획하고 있고, 친구들 앞에서 이를 경험했을 때 처음인 것이 들통 나지 않기 위해 흡입방법을 물어보고 있어 다소 충격적이다.이는 과거에 청소년들 사이에서 담배가 유행하게 된 때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담배를 피우는 학생은 힘이 있고 소위 ‘잘 나가는 아이’로 구분되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무시당하던 세태와 닮아 있는 것.
이 학생의 글에 환각물질 경험자, 비경험자 등 많은 수의 네티즌들이 댓글을 달았다.
“전에 1년간 본드를 마셨던 사람입니다. 몇 번 하다가 안하게 되면 다행이지만 중독되면 진짜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고생합니다. 저는 한 때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했었습니다. 경험자로 충고하자면 친구들이 부추겨도 절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마치 뇌와 살이 녹아드는 것과 같은 고통을 받게 될 테니까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인 현재까지 본드, 니스 등을 마시고 있습니다. 정작 제가 본드에 중독돼 있지만 이건 정말 사람이 할 행동이 아닙니다. 가끔 친구들도 헷갈리기도 하고, 진짜 사람 XX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본드’ ‘니스’입니다. 제발 본드하지 마세요. 부탁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 같은데…’
이처럼 대다수의 유경험자들은 환각물질의 흡입을 극구 반대하고 있는 모양새다. 중독될 경우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 각종 범죄로 이어지는 등 부정적인 면면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지난 21일 전남 순천에서는 니스를 마신 18살 이모군 등 남중고생 4명이 환각상태에서 또래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순천경찰서에 따르면 이들 청소년들은 지난 3일 밤 11시께 순천시 한 공터에서 귀가하던 여중생 A(16)양을 2차례에 걸쳐 집단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경찰조사결과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알게 된 이들 청소년들은 공업용 니스를 마시고 환각상태에서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번 범행에 가담한 학생들은 모두 자퇴를 하거나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더 많은 청소년인 것으로 드러났다.“내 자식이 처벌받더라도…”
최근 전남 광주에서는 학부모들이 자신의 자녀가 바니시(니스)를 마셨다며 자녀들에게 환각성분이 들어있는 바니시를 판매한 문구점 주인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다. 물론 이들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녀 역시 처벌되는 것을 알면서도 경찰에 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학부모 A씨는 지난 15일 오전 9시30분께 북구 모 중학교 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A씨의 딸(15)이 친구 2명과 바니시를 흡입한 채 환각에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학부모 B씨는 지난 13일 오후 7시께 북구 모 아파트 계단에서 딸(14)이 바니시를 흡입해 몽롱한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찾아낸 뒤 판매 문구점 업주를 고발했다.이에 경찰은 청소년들에게 바니시를 판매한 문구점 업주 김모(40∙여)씨와 또 다른 김모(50∙여)씨를 청소년보호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바니시를 흡입한 A씨의 딸 등 4명의 청소년을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경찰조사에서 김씨 등 문구점 업주들은 “바니시를 공예용 학용품으로 알고 있어 판매한 것이지 환각성분이 포함돼 있는 줄은 몰랐다”며 선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김씨 등이 판매한 바니시 병에 ‘청소년 판매제한 품목’이라는 스티커가 부착돼 있는 점을 감안, 처벌을 결정했다.본드∙니스, 청소년판매금지 품목 맞아?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르면 판매자들은 미성년자에게 환각성분이 함유돼있는 물질을 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처럼 청소년들에게 본드?바니시 등을 판매하고 있는 대다수의 문구점 업주들은 본드만을 청소년 유해물질로 알고 있을 뿐, 바니시의 위험성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반면 청소년들은 비행청소년이 아니더라도 바니시에도 본드와 같은 환각성분이 함유돼 있다는 것을 친구의 경험, 인터넷 등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환각물질 판매에 대한 정부의 관리, 단속은 허술한 실정이다. 기자가 중학생 사촌동생에게 5군데의 문구점에서 니스나 본드 등을 구입해올 것을 주문한 결과, 모든 문구점에서 환각성분을 포함하고 있는 니스 등을 구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