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힐‘변화조짐’– 미국은 북한 선택 구도 원해
지난 6월 17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면담 이후 남북관계는 급속도의 진전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에서 진행중인 남북 장관급 회담 역시 아직까지는 큰 이견차를 보이지 않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핵심은 무엇보다 북한 핵 문제 처리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되새겨 본다면 북핵 해법 역시 지금까지의 경직 상태에서 해빙기로 돌아서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런 전망이 대두된다.북한 핵 문제는 쟁점의 중심 축이 북한과 미국으로 설정되어 있는 만큼 남북사이의 관계진전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 6얼 한미 정상회담이 북한으로 하여금 선택권을 준 것이라 한다면 정동영-김정일 면담은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의 제안을 수용하기를 강요하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미국은 북한의 입장변화에 대해 “이미 지금까지 나왔던 것 이외의 진전은 없다”는 입장으로 평가절하했으나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대북 메시지 설명 이후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감지디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김정일 면담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미 행정부의 공식입장이라 할 수 있는 라이스 국무장관과 부시 대통령의 입장변화로 이어질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참여정부 대미요구 성과 내나? 美 대북 쌀 5만톤 지원 결정
힐 차관보 “김정일 만나고 싶다. 북핵 해결 미국은 실행 준비 됐다”
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관여하고 있는 관계자는 지난 주부터 급속도로 활기를 찾고 있는 대미 연략채널의 활동을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부의 고위 관계자, 반기문 외교장관, 이태식 외교차관 등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미국에게 북한에 대한 자극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은 우리 정부가 향후 대미, 대북 관계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다는 근거를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전하고 있다.실제로 참여정부의 대미 요청이 있게 된 결정적 배경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김정일 면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고위 관리들이 북한에 대한 경직된 사고를 바꾸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정부의 태도는 미국에 대한 적극적 요청임과 동시에 미국의 ‘북한 색안경’을 벗기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돼야 한다는 것이다.구체적으로는 지난 20일 폴라 도브리안스키 미 국무차관의 발언을 꼽을 수 있다. 도브리안스키 차관은 네오콘의 싱크탱그인 허드슨연구소에서 주최한 ‘미국의 사명:민주주의와 인권증진전략’이라는 세미나에서 북한에 대해 ‘악의 축’ 발언을 제 확인했기 때문이다.당시 세미나에서는 △민주주의 발전을 공고히 하기위해 지원할 나라 △안정된 민주주의로부터 후퇴하는 나라 △폭정의 전초기지 국가 등이 언급됐으며, 북한을 비롯해 미안마, 짐바블웨이, 쿠바 등이 거론됐다.미국의 이러한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참여정부는 북핵 관련 대미 협상라인의 중심인물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정동영 장관과 김정일 위원장의 면담 결과에 대해 “미국에게 대부분 설명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 대상은 힐 차관보인 것으로 확인됐다.힐 차관보가 미국 행정부에 어떠한 입장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으나 주한미대사관 인터넷 커뮤니티 ‘cafe USA’에 올린 글에서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게 되길 희망한다”는 글로 간접 확인되고 있다. 정부의 고위 관료 역시 이에 대해 “아직 미국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나오지 않고 있으나 최소한 힐 대사가 우리의 입장을 왜곡 없이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크리스토퍼 힐 대사는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을 희망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나는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남과 북, 그리고 미국에게 있어서 큰 이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믿는다. 미국은 이를 실행에 옮길 준비가 되어 있고, 북한도 그러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회담의 날짜에 –내가 바라기로는 7월 중에- 동의할 수만 있다면, 미국측은 모든 훌륭한 협상들이 그러하듯이 동등한 입장에서 상호존중의 자세를 가지고 협상에 임함으로 합의를 도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즉각적인 미국의 대북 정책 선회가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미 국무부는 북한에 대한 쌀 5만톤 지원을 결정했다. 이 역시 미국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포인트가 되고 있다.애덤 어렐리 국무부 부대변인은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결정을 발표하면서 “이번 대북 식량지원은 북핵 문제와는 연계돼 있지 않은 인도주의적 결정에 따른 것이다. 북한 주민의 어려움을 덜엊기위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미 정부주변에서도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전망이 계속되고 있다.
라이스 “북핵 문제는 부시와 나의 입장이 제일 중요”
美 북한의 선택 구도 원해, 선택 강요받은 상황이 머뭇거리는 원인
아직까지 미국 국무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라이스 국무장관 역시 문제가 된 폴라 도브리안스키 차관의 발언에 대해 “국무부의 공식입장이 아니고 북한을 사고하는 여러 의견 중 하나”라며 다소 유연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 라이스 장관은 벨기에 브뤠셀에서 반기문 외교장관과 만나 “북한에 대한 자극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에도 “(한국의 입장을)충분히 유념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반기문 장관과 만난 라이스 장관은 미국의 대북 입장에 대해 “북핵 문제에 관한 부시 대통령과 나의 입장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미국의 선택이 점차 신중해 지고 있음을 암시했다.그러나 정부, 정치권의 대미 전문가들을 통해 조사한 결과 미국은 북핵문제를 풀기위한 선택은 ‘미국이 아닌 북한의 몫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취재됐다. 이는 지난 1994년 1차 핵 위기와 2002년 2차 핵 위기로 한반도 핵 위협이 증가된 것 역시 미국의 강경책이라기 보다 북한의 ‘국제적 고립’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파악되고 있다. 물론 미국의 전략이 북한을 고립하고 북한으로 하여금 ‘선택을 하게 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이는 핵 문제 해결이 북미간의 대립이라는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핵 위협을 타개하기 위한 선택을 하게 된다면 이는 북한의 입장을 수용하는 측면이 강한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미국의 입장을 수용하는 상황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카드라고 인식하고 있다.미국이 남북 관계가 급진전되고 있음에도 공식입장을 유보하고 있는 것은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이 북한으로 하여금 선택을 하도록 하는 구도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7일 정동영-김정일 면담으로 인해 또 다시 ‘선택의 공’이 미국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북한은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발언이나 유엔에 있는 북한대표부 고위 관계자가 미국에 대해 ‘폭정’이라는 말을 한달동안 사용하지 않는다면 6자회담에 나설 수 있다는 발언 등은 미국으로 하여금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결국 라이스 장과이 언급한 ‘부시와 나(라이스)의 선택’이 어떠한 결정으로 나올 것인지는 2005년 하반기 한반도 핵 문제의 중대 분수령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미묘한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이수남 기자<폴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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