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가의 존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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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국가의 존재 이유
  • 조민교 기자
  • 승인 2020.09.2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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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조민교 기자] 피살공무원 A씨 사건을 두고 야권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7시간’에 빗대 “대통령의 47시간 행적을 밝히라”는 요구가 나왔다. 세월호 참사는 국정농단 사태와 함께 보수진영의 몰락을 부른 사건이었던 만큼 여권으로서는 야권의 주장을 결코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청와대의 대응이 6년 전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은 분명 안타까운 대목이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이번 사건에서도 짧게는 5시간, 길게는 6시간의 골든타임이 있었다. 청와대와 국방부, 해경 등의 브리핑을 종합하면 A씨는 21일 오후 실종신고가 접수돼 수색작업이 시작됐다. 이런 상황에서 22일 오후 3시반 북측 해역에서 조난자가 발견됐다는 첩보를 우리 군 당국이 포착했고, 1시간 뒤에는 조난자가 실종공무원이라는 판단까지 마쳤다. 그리고 당일 오후 9시반께 북측이 총을 난사해 우리 공무원을 살해하고 불에 태울 때까지 군 당국은 실시간으로 북측 통신을 감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 군은 북측에 실종자 발견 시 송환을 바란다는 메시지도, 우리 측의 구조활동을 알리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후에 두 손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는 비난이 쇄도하자 뒷북해명식으로 '북한이 당초 상당시간 구조활동을 벌이다가 갑자기 상황이 급반전 되는 바람에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오후 6시반께 실종공무원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됐다는 보고를 접수했고, 대통령에게 보고했음에도 북측에 어떤 도움 메시지도 발신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참사가 벌어진 뒤 오후 10시반께 군의 보고를 받고서야 자정 넘어 관계장관들을 청와대로 불러모았다. 이미 대통령이 실종공무원 발견 보고를 받은 상황에서 '북한 만행 첩보의 신빙성이 낮아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해명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신빙성이 낮은 첩보 때문에 자정 넘어 장관들을 불러모았다'는 해명도 역시 상식밖이다. 게다가 이달 들어 남북 정상끼리 친서를 주고받았다니 남북 간 소통창구가 단절된 것도 아니었다.  남북관계와 평화는 중요하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A씨처럼 북한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시신까지 불태워질 수 있고, 그런데도 국가는 보호할 노력조차 하지 않고, 게다가 국가가 변명과 면피에만 힘쓸 것이라고 국민들이 믿게 될 때 과연 그 나라가 온전히 존립할 수 있겠는가. 6년 전이나 지금이나 위기상황에서 재차 드러난 국가의 부재는 그야말로 통탄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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