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V로 차세대 경쟁력 준비… 시스템 반도체 꾸준한 성장 만들어
IBM, 퀄컴 등 파운드리 물량 수주…AP, 이미지센서 점유율 확대
[매일일보 이상래 기자] 올해 반도체 시장은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미·중 무역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유례 없는 악재가 터졌다. 불확실성이 치솟으면서 경제 심리는 위축됐다. 글로벌 경기가 침체되니 반도체 시장도 자연스레 어려워졌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1위 삼성전자도 이러한 시련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철저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지배한다. 수요가 급격히 줄어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니 영업이익률이 떨어졌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를 이끄는 김기남 DS(디바이스 솔루션)부문장은 이러한 위기를 잘 넘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D램, 낸드플래시 모든 부문에서 글로벌 1위 수성에 성공했다. 코로나19 방역 리스크도 잘 관리해 사고도 없었다.
올해 반도체 시장은 변화가 적지 않았다. 미국 상무부의 화웨이 반도체 공급 차단과 더불어 엔비디아의 ARM 인수,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부문 인수 등 초대형 빅딜도 성사됐다. 여기에 SK하이닉스의 DDR5 출시, 마이크론의 176단 반도체 공개 등의 소식이 들리면서 삼성전자의 초격차 기술적 우위가 더 이상 어려운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진짜 실력’을 판단하기에 이르다는 게 중론이다. 실질적인 메모리 반도체 경쟁은 양산 체제 시작부터 보는 게 일반적이다. 고객사에 판매할 제품의 성능, 수율, 가격 경쟁력을 종합해 얼마나 많은 점유율을 가져오느냐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경쟁사들의 제품 선(先)공개에 과도한 의미 부여는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 삼성전자 행보는 ‘정중동’에 가깝다. 안정감에 방점을 찍어 재도약을 위한 ‘숨고르기’에 나선 모양새다. 현 시점보다는 차세대 경쟁력에 집중하고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EUV(극자외선) 기술 적용 확대가 대표적 예다. EUV는 세밀한 회로 구현을 통해 인공지능(AI)·5세대(5G) 이동통신·자율주행 사업 등에 필요한 최첨단 고성능·저전력·초소형 반도체 제작에 필수적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업계 최초로 EUV 공정을 D램 양산에 적용했다. EUV 공정을 적용한 3세대 10나노급(1z) 16Gb LPDDR5을 출하한 것도 업계 최초다. EUV 기술 숙련도를 확대해 반도체 성능, 수율 향상, 제품 개발 속도 단축에 나선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움직여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종합 반도체 1위 기업 도약을 위한 한 걸음 나아갔다는 평가다. 파운드리 사업에서 삼성전자는 다양한 고객사로부터 새로운 물량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IBM 차세대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퀄컴 보급형 칩 등을 수주한 것으로 추정한다. 블룸버그는 익명의 삼성전자 관계자를 인용해 “파운드리 고객사를 30% 늘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글로벌 1위 파운드리 TSMC와의 기술 격차는 거의 미미하다고 본다. 삼성전자의 EUV 기술 숙련도가 이미 TMSC를 따라잡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점유율은 여전히 차이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지난 3분기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TSMC 53.9%, 삼성전자 17.4%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파운드리 수요 물량이 늘어나면서 삼성전자의 추가적인 물량 수주가 예상돼 이러한 격차는 좁혀질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이미지센서 사업도 성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비보'에 5나노미터 공정 기반의 AP '엑시노스 1080'과 5000만 화소의 이미지센서(CIS) '아이소셀 GN1'을 공급했다. 특히 화웨이가 주춤하면서 비보의 성장이 점쳐지면서 삼성전자의 AP 점유율도 확대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이미지센서 분야의 성장도 괄목할 만하다. 올해 2분기 글로벌 이미지센서 점유율을 보면 삼성전자가 21.7%로 급성장한 반면 1위 소니는 42.5%로 크게 감소했다. 두 기업간의 격차는 20%포인트 정도로 1년 만에 절반 가까이 줄었다. 특히 스마트폰 이미지센서 시장에서는 삼성전자(32%)와 소니(44%)의 격차는 12%에 그친다.
업계 관계자는 “김기남 부회장의 리더십 아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글로벌 리더십은 유지하면서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은 확대했다”며 “어려움 속에 삼성전자의 종합 반도체 1위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