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출산 나선 농협 ‘국내산 알타리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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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출산 나선 농협 ‘국내산 알타리 무’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9.07.24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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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불이’ 외치던 NH농협 중국산 씨앗 판매 파문

제품명에 국내지명 버젓이 달아 놓고 원산지는 ‘중국’
농협 “채종만 해외에서 했을 뿐 ‘어미씨’는 국산품종”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신토불이’를 강조해 온 농협중앙회(회장 최원병)의 종묘판매점에서 십여 년 전부터 수입산 씨앗이 판매돼 온 것으로 밝혀지면서 ‘해외농업의 국내 진출 통로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전국농업협동조합노동조합(이하 농협노조)에 접수된 제보에 의해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농협종묘센터측은 서둘러 각 언론사에 해명자료를 배포하는 등 진화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씨앗 제품명에 실제 원산지가 아닌 국내 특정 지역명을 사용함으로써 소비자들의 혼란을 부추겼다는 질책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지난 7월 20일 무 파종을 위해 경기도 지역의 한 농협종묘센터에서 알타리 무 씨앗을 구입한 A씨는 무심결에 포장재 뒷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앞면에는 분명히 큰 글씨로 ‘안성 알타리 무’라고 적혀 있었는데 뒷면의 제품 상세정보에는 원산지가 ‘중국’으로 기록돼 있었던 것. A씨는 국내 상품만을 판매하는 것으로 철썩 같이 믿어왔던 농협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져 황당할 따름이었다. 이에 A씨는 같은 날 농협노조측에 이 같은 사실을 제보하고 어찌된 영문인지 진위 파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농민 보호한다더니…

농협노조가 농협중앙회 담당부서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제보자의 신고내용은 사실 그대로였다. 중앙회 한 관계자는 노조와의 대화에서 “요즈음 대부분의 종묘업체들은 원종(어떤 품종에 대하여 본래의 성질을 가진 종자)을 해외로 수출한 뒤 씨앗을 채종해 들여오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전량 생산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면 종자를 싼 값에 공급할 수 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농업과 농민의 대표임을 자처해왔던 농협이 생산비 절감 등 이윤추구를 위해 외국에서 씨앗을 수입해오고 있었다는 게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본지 취재결과 92년 설립된 농협종묘센터는 94년께부터 현재까지 국내 원종을 해외로 수출한 뒤 현지에서 씨앗을 채종해 다시 국내로 역수입해오는 방식으로 운영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소비자들이 우리나라 토종 씨앗인 줄로 믿고 구입했던 씨앗 중 상당수가 ‘해외파’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농협측은 씨앗이 채종된 곳은 해외지만 원종은 국내산이기 때문에 씨앗의 진짜 원산지는 한국이며, 제품명에 국내지명을 사용한 것 또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농협중앙회 한 관계자는 “일종의 ‘원정출산’이라고 보면 된다.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씨앗을 얻을 수 있도록 일부 품종의 원종을 해외로 보낸 뒤 현지에서 채종한 것 뿐”이라며 “원산지가 해외로 표기돼 있지만 종묘센터에서 판매되고 있는 모든 씨앗의 원종은 국내산”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종묘센터에서 판매되고 있는 상품 중 정작 우리나라에서 육종부터 채종까지 전과정이 이뤄진 씨앗은 40%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종묘센터 관계자는 “농협노조가 지적한 ‘안성 알타리 무’는 농협에서 자체 육종한 종자이지만 기후∙가격 경쟁력 등의 문제로 불가피하게 해외에서 채종하게 됐다”며 “채종지역을 원산지로 표기하게끔 한 대외무역법 제23조 원산지표기사항에 의해 원산지가 ‘중국’으로 표기됐다. 하지만 엄연한 ‘국산품종’”이라고 설명했다.이 관계자는 이어 “씨앗을 채종할 때는 건조한 기후가 적합한데 이 시기 우리나라는 절기상 장마철에 해당한다. 이는 씨앗품질의 저하로 이어지고 적정 생산량을 확보하기에도 어려워 국내외로 분산 채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하지만 농협노조측은 중앙회와 종묘센터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측의 운영방식에 회의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조측 한 관계자는 “‘그까짓 씨앗 하나 가지고 무슨 호들갑을 떠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를 차분히 되짚어보면 우리 농업의 참담한 현실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며 “보다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농업의 기본이 되는 씨앗을 외국농지에서 채종한 뒤 역수입해 판매한다면 결국 ‘국내 농지 축소→농업기반 붕괴→영세 농민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농협은 군대에 수입쇠고기를 납품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본격적으로 ‘수입 종자 판매상’으로까지 나섰다”며 “더 이상 농협에서 우리 농업과 농민의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국내 생산 40% 그쳐…“가격 경쟁력 때문에”

▲ 3월12일 오전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김태영 농협신용대표이사(왼쪽) 등 임직원들이 ‘꽃이 피는 행복한 대한민국' 이벤트를 진행하며 꽃씨와 채소씨앗을 나눠주고 있다. 기사 특정내용과 관련 없음.
그러나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농협측은 ‘해외 채종방식에 변화는 없다’는 입장이다. 농업인들에게 우수품종을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고 시장 경제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게 그 이유다.

이와 관련 종묘센터 한 관계자는 “국내 종자회사 대부분이 외국계 회사로 넘어간 상태에서 국내산 품종의 개발과 유지는 매우 중요하다”며 “특히 국내 종자시장의 견제를 위해서라도 싼 가격에 국내산 품종을 공급하고 있는 농협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농업과 농민보호에 앞장서야할 농협이 정작 농업의 기본이 되는 씨앗 채종에 해외 인력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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