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식이 상팔자’라지만 유자식은 죄(?)… ‘부양의무자제도’ 철폐에서 시작하자
[매일일보]다가올 위기에 대한 경고를 표현할 때 자주 인용되는 관용구로 ‘탄광 속의 카나리아(Canary in a Coal Mine)’라는 말이 있다. 사람보다 메탄 등 독가스에 예민한 카나리아가 죽는 것을 보면서 광부들이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이야기이다.탄광에 카나리아를 데리고 들어가던 시절 일부 탄광주인들이 카나리아 때문에 광부들이 더 불안해한다며 카나리아 반입을 제지했다는 이야기는, 사람이 바로 옆에서 줄줄이 죽어나가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세계 최다 자살국가’이자 ‘세계 최저 출산국가’ 대한민국을 연상시킨다.최근 발표된 OECD 주요국 행복지수를 보면 대한민국은 안전(10점 만점에 9.1)과 교육(7.9), 시민참여(7.5)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한 반면 공동체(1.6), 소득(2.1), 삶의 만족도(4.2), 건강(4.9), 일과 생활의 균형·고용·환경(각각 5.3)에서 불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정확한 처방도 가능한 법. 매일일보는 창간 7주년을 맞아 ‘2013년 한국인’이라는 주제로 세대별 주요 복지이슈를 짚어보고 건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의 장을 펼쳐보았다. [편집자주]
[2013 한국인] 불안의 시대, 희망 만들기(마지막)
보편이냐 선별이냐
지난 정부 시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무상급식 논쟁이나 최근까지 논란이 이어지는 반값등록금 문제와 행복연금(기초노령연금) 등 정치권의 복지정책 결정에 있어 지속적 화두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사이에서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인 방식이냐는 것이다.국가나 지자체 입장에선 세금을 무한정 거두거나 돈을 무한정 찍어낼 수 없기 때문에 ‘선별복지’ 쪽이 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느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각지대’가 인권침해를 넘어 인명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2010년 말 장애인 자녀를 둔 아버지의 자살, 지난해 새해 벽두의 60대 수급자 노부부 동반 자살, 지난해 여름 정부의 부양의무자 일제 조사과정에서의 노인들의 잇따른 자살과 같은 사례는 ‘선별복지’가 갖는 한계와 위험성을 웅변한다.사람 죽이는 부양의무자제도
보편복지와 선별복지의 딜레마가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바로 기초수급자에 대한 부양의무자 제도이다.매일일보가 노인복지 문제를 취재하면서 만난 복지단체 관계자나 복지담당 공무원들 그리고 빈곤층 노인들 중에는 ‘부양의무제’의 불합리성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아예 연락이 끊기거나 자기들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수입을 가진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 보호에서 소외돼 극빈층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현행 기초수급법은 빈곤층과 직계존비속 관계에 있는 사람을 부양의무자로 규정하고 이들의 재산을 포함해 산정한 평균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 이상인 경우 ‘부양능력이 있다’고 판단해 기초생활보호 수급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빈곤층임에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놓이는 사람들이 400만 명으로 인구의 약 7.5%로, 수급 빈곤층 147만명 규모의 두 배를 훨씬 넘는데, 이들 400만명의 사각지대 빈곤층 중 74.2%가 ‘부양의무자 기준 초과’에 의한 자격 제한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선언’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국가에서 최저빈곤층에게 직접 생활비를 지원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지 1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에서는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생계형 자살’이 매년 쏟아져 나오고 있다.이 중에는 소득수준의 급격한 추락에 의한 상대적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도 적지 않겠지만 자신의 재산이나 소득으로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자신의 존재가 다른 가족의 삶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부담이 될 것이라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경우가 더 많다.지난해 대선을 며칠 앞둔 12월 10일, 제64주년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을 맞아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과 인권단체연석회의, 시민단체연석회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요구 공동기자회견이 있었다.이날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대통령이 되려는 유력 후보들은 아무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오늘이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인데 아직도 야만적인 기준을 폐지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염형국 민변 소수자위원장은 “세계인권선언은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으로 우리나라도 자유권 규약, 사회권 규약 등을 맺어 이 선언에 동참하고 있지만 ‘부양의무제’ 때문에 ‘선언’은 현실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김경탁 기자 gimtak@이선율 기자 lsy0117@
세대 간 경쟁
‘정년연장’은 ‘청년일자리’를 빼앗을까
은퇴자협회 설문, 장년 75%·청년 79% “아니다”
청년들 “은퇴해도 생활 가능한 복지 확충 우선”
노령연금, 부모봉양 부담 덜어줬다
2011년 56세 이상 노년 한 달 평균 용돈 11만원
국민연금 등 공적이전소득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
‘세대 간 경쟁’이 아무리 화두가 되었다고 해도 중장년층이 청소년층의 부모이고, 청소년층은 중장년층의 자식이다. 부모의 살림살이가 자식의 살림살이에 영향을 미치고, 자식의 취업이 부모의 노후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최근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한 국민행복연금의 수급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놓고 제도설계가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국민연금 고갈론’과 ‘역차별론’이 제기되면서 다시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반면 대한은퇴자협회의 ‘청·장년 인식 설문조사’에서는 공적연금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세대 구분 없이 압도적 다수가 필요성에 동의한다는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장년:필요한 편 37%+매우 필요 58%=합계 95%, 청년:필요한 편 59%+매우 필요 36%=합계 95%)
청장년 세대가 노년세대를 부양하는 국민연금 구조에 대해선 이보다 부정적 의견(장년 13%, 청년 27%)이 다소 많았지만, 긍정적 답변(장년:적극 동의 28%+동의 58%=합계 86%, 청년:적극 동의 15%+동의 58%=합계 73%)이 압도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