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준(土美) 도시로 재생연구소 소장] 최근 주거의 고급스러움을 브랜드화하는 것이 인기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졌던 아파트에서부터 1960년대 택지개발과 공동주택의 성능과 입지 등을 시도한 주거의 역사에서 초고층, 주상복합, 고급화의 변화를 지나 이제는 서비스의 질과 브랜드의 가치를 추구하는 아파트의 진보에 주목한다.
2008년 서울 반포의 ‘래미안 퍼스티지’의 분양가가 3.3㎡당 3126만원이었는데 당시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한 평에 3000만원이 넘는다고?’, ‘누가 그런 아파트를 사? 가격이 너무 높아’ 등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그랬던 반포의 ‘래미안 퍼스티지’는 지금 3.3㎡당 1억원이 넘는 아파트가 됐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가격만으로 럭셔리 아파트의 가치를 형성하는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대건설의 ‘디에이치’, 대림산업의 ‘아크로’, 대우건설 ‘써밋’, 롯데건설의 ‘르엘’, 한화건설 ‘포레나’, 호반건설 ‘호반써밋’, 두산건설의 ‘더 제니스’ 등 건설사들은 기존 브랜드에 또 다른 이름을 만들어서 본격적인 프리미엄 홍보 경쟁에 들어갔다. 기존의 건설사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현재의 아파트명에 현재 새로 만든 브랜드명을 붙여달라’, ‘옆동네지만 동일한 블록으로 보이게 해달라’ 등 아파트 이름에 대한 예민한 소리를 모으기도 한다.
아파트 이름이 아파트의 품격과 가격을 결정한다는 웃픈 에피소드가 생긴 것이다. 하이엔드(high-end), 자부심, 높이, 깊이, 자연, 고품격, 완벽, 상위1%, 차별, 품격, 격, 단 하나 등 이같은 화려한 수식어들이 하이엔드 아파트에 따라붙는다. 호텔같은 시설과 컨시어지 서비스, 도심속 리조트 같은 차별화·서비스, A급 자재 이상, 수준높은 시공 등은 조합원들의 높은 분담금과 분양가에 의해 더욱 더 빛이 난다.
이제 아파트는 엄격히 가격 라인이 몇몇 등급으로 나뉘어 소득, 소비수준을 아파트에 의해 기준하는 세상이 될 법하다. 일반 아파트와 약간 차별화된 아파트, 럭셔리 아파트, 하이엔드 아파트….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오래된 지역에서는 누구든 화려한 반전을 꿈꾼다. 건물을 짓기도 전에 선정이 돼야 하는 건설사의 속내는 조바심이 난다. 어찌됐던 물건 값이 미리 측정돼야 하는 선분양 시장에서는 상품의 이미지가 중요하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재건축 예정인 노후된 아파트조차도 미래의 럭셔리할 예정이라는 이미지를 등에 업고 미리 높은 가격점을 제시한다. 반포주공아파트, 잠실주공5단지, 압구정 현대와 한양 아파트 등이 그러한 예이다.
‘명품 아파트의 조건'이란 이렇게 워터프론트와 비싼 시세, 화려한 커뮤니티와 조경뿐일까. 35평형 아파트가 3.3㎡ 당 4000만원대를 돌파할 때 필자가 느꼈던 기분은 이제 아파트 가격과 상품성에 세상의 좋은 것은 다 담을 수 있는 세상이 왔구나하는 것이다. 고급스러움과 최고를 다 모아놓은 주거단지가 곳곳에 생겨나니 상대적으로 갖추지 못한 단지에서는 볼멘 소리가 나오겠구나 하는 것이다. 재건축을 앞둔 조합원들은 본인들의 지역에 다른 아파트의 장점들을 취하고 싶을 것이고, 고급·차별화 이미지 전략으로 건설사 선정을 노렸던 건설사들의 끊임없는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좋은 것들은 분명 많지만 그것들이 흔해지고 많아지면 그만큼 희소성의 가치도 없어진다. 다이아몬드가 비싼 이유는 세상에 흔하지 않아서이고, 물이 흔한 이유는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어서이다.
우리가 집에서 얻는 힐링, 에너지, 포근함…. 이런 것들의 가치가 자꾸만 외장이나 외국이름으로 치장돼 가는 것이, 아파트 가격만큼이나 편하지만은 않은 세상이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