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된 사건사고, 사람도 자연도 못 믿는다…후쿠시마급 사고시 국가 경제 막대한 피해
[매일일보]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사상 최초의 핵폭탄 ‘리틀보이’가 투하되고 68년이 흘렀다.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로 평가되며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시작된 지도 어느덧 2년 5개월이 지났다.세계 유일의 피폭국인 동시에 세계 최악의 지진다발국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3위의 ‘원자력 대국’임을 자랑해온 일본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방사능 공포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외면’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후쿠시마 사고 초기, 일본 정부는 방사능 유출 위험을 부인했으며, 보유한 조치 시스템을 제때 가동하지 않았고 정보를 은폐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불필요한 피폭을 받았으며 환경 피해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에서 “히로시마 원자폭탄 168개가 폭발한 것과 비슷한 양이 공기중에 확산됐다”고 발표한 세슘의 반감기는 30년, 땅에 내려앉은 플루토늄의 반감기는 2만4000년이어서 앞으로 전 인류가 함께 끌어안아야 할 독으로 평가된다.일본 정부는 문제가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에야 “후쿠시마 사고 전 방사능방재 대책의 가장 큰 허점은 실제로 대형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세워졌다는 데 있었다”고 시인했다.하지만 일본의 최인접국이자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 당시 당사국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피폭 피해자가 생긴 대한민국의 원자력 안전 관리 시스템도 일본에 비해 더 나쁘면 나빴지 나을 것은 전혀 없다는 사실이 원전비리 파문을 통해 계속 확인되고 있다.정치권이나 외교당국에서는 ‘북핵’이 한반도 핵위기의 핵심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적이고 당면한 핵위기는 원자력발전소의 부실관리에서 나타난 위기라는 말이다.10년간 173번의 사고…20%는 실수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총 173차례 원전 사고 및 고장이 발생했는데 이 중 20%(34건)는 사람의 실수였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일어난 사고 및 고장 횟수만 작년 2월 고리 1호기 고장 정지사고 은폐 사건을 포함해 총 29번이다.원전 사고를 둘러싼 은폐 및 뇌물수수에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품질 보증서가 위조된 부품 1만396개가 원전에 공급된 것으로 드러났고, 그 밖에도 소방대원의 마약 투약 사건, 시험성적서 위조, 부품비리 사태 등의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이런 종류의 사고들을 보면 한국에서 대규모 원전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적다고 단정짓기 어렵다. 특히 사고 대부분이 관계자들의 방만함으로 인한 것이어서 언젠가 대형사고 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지진, 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
자연재해로 인한 사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안위가 올해 2월 11일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우리나라 원전 4곳의 반경 50km 이내에서 총 75차례 지진이 발생했다.2011년 네덜란드 과학저널 『자연의 위험 (Natural Hazards)』에 실린 보고서인 ‘쓰나미 위험이 있는 민간 원자력 발전(Civil Nuclear Power at Risk of Tsunamis)’에 의하면 후쿠시마 외 세계적으로 원전 22곳이 쓰나 미에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특히 아시아의 동쪽과 동남쪽에 위치한 발전소가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현재 중국에 신설되는 원전이 가장 위험한 위치에 놓여 있으며 일본, 그리고 한국의 고리와 월성 두 곳이 뒤를 잇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원전이 있는 지역 뿐 아니라 인접국가도 방사능 유출로 피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고리원전 반경 30km 343만명 거주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보면 대규모 원전사고는 통상적으로 최소 반경 30km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리 원전을 기준으로 부산의 해운대, 광안리 지역을 포함해 343만명이 이 영향권 내에 있다.‘탈핵’이 근본이지만 당장 조치라도…
방사능 오염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겹겹의 안전장치가 고안되어 왔지만 이러한 보호 장치들은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증명되었다.그린피스는 지난해 『후쿠시마의 교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 대참사가 원전 산업계에 휘둘린 규제의 제도적 실 패와 현실적인 안전 기준과 방재 계획을 세우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인재’(人災)임을 강조했다.잇따라 출판 된 한국판 보고서에서는 한국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적용될 대응 체계와 방재 계획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한국은 원자력발전소 반경 30km내 인구가 무려 405만 명에 달하지만 대피 구역이나 방호품 준비상태는 전혀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했다 .그린피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와 원자력 산업계는 그 저 원전 확산 정책에 치우쳐 원전 개발과 수출에만 투자하기 바빴고, 그렇게 1년이 지났다.그동안 원전 스캔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전원 고장 및 은폐, 뇌물수수, 불량부품, 문서위조, 심지어 마약사건까지 원전 안전의 총체적 부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국민들은 경악했고 조금씩 정부기관, 원전 산업계, 학계, 언론 등에 포진된 ‘원전 마피아’의 실태를 눈치채기 시작했지만 후쿠시 마급의 원전 사고 발생 시 정부가 어떤 대응책을 마련해 놓았는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실질적 보완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부족하다.“사고는 순식간, 피해는 대를 이어 지속”
그린피스는 이번 보고서 발간에 대해 “지난 2년간 후쿠시마에서 벌어진 실상과 그 교훈을 되짚어보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이를 거울삼아 현재 우리나라의 방재 계획과 대응책을 알아보고, 후쿠시마 이후 무엇이 개선되었는지, 우리 실정에 맞는 현 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은 무엇인지 논의 해보자는 것이다.그린피스는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나지만, 그 피해는 대를 이어 지속된다. 장기간 동안 전세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원전사업은 그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궁극적인 방재대책”이라며, “그러나 원전을 폐기하고 핵폐기물이 모두 안전하게 처분될 때까지 엄격한 안전규제와 실효성있는 방재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그린피스는 현재 한국의 방사능방제대책의 문제점과 관련해 가장 시급한 것으로 ‘우선적 조치구역’을 최소 30km로 설정하고, 모니터링구역을 대폭 확대할 것을 꼽았으며, 새로운 구역 기준에 맞춰 주민 대피 계획과 방호방재물품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정리=김경탁 기자 gimtak@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