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왕따’ 자처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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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보수 ‘왕따’ 자처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9.08.21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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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저쪽 ‘줄서기’ 나섰다가 양쪽에서 ‘팽’

국보법 존폐 놓고 이중 발언 눈총…진보-보수 ‘미운털’ 콕 박혀
상황에 따라 탄력적인 ‘소신’(?)…열흘 만에 입장 급선회, 속내는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취임 한 달째를 맞은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사퇴압박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현 위원장은 인권위원장 내정 초기부터 지금까지 ‘인권 비전문가’라는 이유로 진보단체의 끊임없는 사퇴요구에 시달려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현 정부의 보직인사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보수진영 단체들마저 현 위원장의 사퇴 촉구운동에 가세하는 등 인권위를 둘러싼 시민단체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인권위 내부에서도 “신임 위원장이 취임한 지 한 달 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하게 된 것 같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가 오랜만에 한 마음 한 뜻(?)을 품은 데는 최근 현 위원장이 국가보안법 존폐를 두고 잇따라 ‘말 바꾸기’를 한 것에서 기인한다. 이 같은 상황은 최근 현 위원장이 한 인권단체의 요청으로 ‘자격검증 공개질의서’에 대한 답변서를 작성, 발송했던 것이 지난 4일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연출되게 됐다.

손바닥 뒤집듯 ‘이랬다 저랬다’

▲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당시 현 위원장은 인권단체에 보낸 답변서에서 “인권위가 2004년 국보법 폐지를 권고했듯이 앞으로도 국보법 폐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을 이유로 국보법 존속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보수단체들에게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뉴라이트전국연합, 국민행동본부 등 보수진영 단체들은 지난 7일 일제히 성명서를 내고 현병철 신임 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재향군인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이는 북한 노동당 간부가 한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 현병철 위원장의 망언”이라며 “국가보안법은 글자 그대로 대한민국의 체제를 수호하고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한 법이다. 현 위원장은 국보법 관련 발언을 즉시 철회하고 사퇴하라”고 주장했다.뉴라이트전국연합도 현 위원장에게 질타를 가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은 우리의 체제와 번영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사회 각계 원로들과 시민사회 단체들을 규합하여 ‘국가인권위원장 사퇴 촉구 범시민사회단체 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임을 미리 밝혀둔다”고 경고했다. 국민행동본부 역시 “적당한 시간 내 해명이 나오지 않을 경우 우리 애국시민들은 현병철 사퇴 운동에 돌입하게 될 것”이라고 압박을 가했다. 
보수단체들의 이 같은 목소리가 두려웠던 것일까. 현 위원장은 보수단체들의 성명서가 발표된 지 사흘만인 지난 10일, 한 보수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선 안 된다는 것이 내 소신”이라고 밝히며 국보법 존치 관련 발언을 번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가보안법 폐지의사를 피력한지 열흘 만에 완전 상반된 의견을 내보인 것이다.

▲ 7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사무소 앞에서 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주최로 현병철 차기 인권위원장 내정 철회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와 관련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은 지난 1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빌딩 7층 인권상담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반인권적 발언을 쏟아내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은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인권단체연석회의 명숙 활동가는 “국보법은 UN인권위에서도 두 번에 걸쳐 폐지권고한 반인권적 법안이며, 인권위도 2004년부터 국보법 폐지를 주장해왔다”며 “그런데 국제인권기준을 국내에 실현하는 데 기여해야할 인권위 수장이 반인권적 행위를 자행하겠다고 하니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는가. 현 위원장은 이에 대한 사과와 함께 위원장직에서 물러나야한다”고 주장했다.같은 단체 배여진 활동가는 “이번에 현 위원장이 보여준 말 바꾸기 행태는 그가 앞으로 여론의 동향에 따라 얼마나 소신 없이 좌지우지될 것인지 보여준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결국 현 위원장은 국보법 존속을 주장하는 측과 폐지를 주장하는 측 모두에게서 비난을 받게 되는 난감한 상태에 봉착하게 됐다.

▲ 서울시 재향군인회 회원 100여명은 지난 12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 규탄대회 및 기자회견을 가졌다.
현 위원장의 ‘말 바꾸기’ 논란의 불씨를 지핀 모 언론사 인터뷰에 동석했었다는 인권위원회 홍보협력팀 한 관계자는 “인터뷰 이후 추가적인 전화인터뷰가 있었지만, 적어도 현장에서는 현 위원장이 보도에 나온 발언은 하지 않았다”며 “당시 기자가 현 위원장에게 ‘국보법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어떤가’라고 질문했고 위원장은 ‘위원회의 의견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정도로 답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해명했다. 해당 언론사의 보도가 와전됐다는 게 위원회측의 변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병철 위원장이 첫 공식인터뷰를 보수언론과 한 점, 열흘 만에 입장을 급선회한 점 등을 두고 은연중에 ‘우회전’의 심중을 내비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취임 전부터 진보단체의 공격을 받아오던 터에 보수단체까지 나서 사퇴를 촉구하자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보수진영 쪽으로 소위 ‘줄을 섰다’는 것.

오락가락 행보 종착지는?

그러나 당분간 진보단체는 물론 보수단체들의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요구도 지속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와 관련 뉴라이트전국연합 한 관계자는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현 위원장 사퇴촉구 대책위가 꾸려지는 것이 당분간 보류되게 됐다”면서도 “하지만 사퇴운동이 중단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 위원장이 국보법 존치가 자신의 소신이라고 밝힌 만큼 앞으로의 행동에 더욱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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