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아라 기자]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쌍용차-에디슨모터스 등 야심차게 시작한 국가 기간산업 대형 인수·합병(M&A)이 줄줄이 제동이 걸리면서, 한국 주요산업 재편이 방향을 잃고 있다. 조선·항공·자동차 등 기간산업이 국가대항전 형태로 가는 만큼 경쟁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이 지난 14일 최종 무산됐다. 기업결합 심사를 미루며 시간을 끌던 유럽연합(EU)이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의 독과점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을 결국 반대하고, 현대중공업그룹이 인수를 포기하겠다고 공식 발표하면서다.
자연스레 ‘K-매머드 조선사’의 글로벌 시장 제패 꿈도 3년 만에 물거품이 됐다. 기존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빅3’ 체제에서 ‘빅2’ 체제로의 개편을 통해 과당경쟁을 해소해 한국 조선업 경쟁력을 한 차원 더 끌어올리겠다는 국가 차원의 구상은 물론, 현대중공업의 중장기 사업계획은 물론 대우조선해양의 재무구조 개선 작업 모두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당초 일사천리로 처리될 것 같았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 걸음도 계속 꼬이고 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당초 지난해 연말까지 끝낸다는 계획이었지만, 각국 경쟁 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아직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특정 노선 독과점에 따른 경쟁 제한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공정위만 해도 인수·합병 조건으로 공항 슬롯(비행기 이착륙 횟수) 반납과 운수권 재배분을 내걸었다. 게다가 EU는 최근 LNG 운반선 시장 독과점을 이유로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에 제동을 걸었으며, 앞서 외국 항공사 합병도 반대했다. 이에 따라 해외 공항 보유 슬롯(이착륙 시간대)을 줄이라고 요구하거나 기업결합 승인을 거부할 수도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운수권을 재조정하게 되면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을 통해 진행하려던 메가캐리어 전략에도 차질이 생기고, 국내 항공산업 발전에 역행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쌍용차와 에디슨모터스 역시 ‘경영권 개입 논란’ 등으로 난항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10일 인수·합병 본계약을 체결했지만, 자금조달 문제 등 최종 인수까지 넘어야할 난관은 여전히 많다.
전문가들은 미·중 갈등 격화와 자국 우선주의 확산으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제는 기업 간 인수·합병에 국제 정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책임론도 대두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경쟁당국에서 승인 쪽으로 분위기를 끌어가지 않으면 앞으로도 글로벌 M&A가 차질을 빚게 될 것이고 결국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