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러 반도체 수출 통제로 역내 생산 차질 심화될 전망
[매일일보 이재영 기자]러-우크라 전쟁 파장이 번지며 한국 경제의 변수도 커지고 있다. 국제 공급망 불안을 키울 것이란 기존 관측 대로 러시아 역내 현대차 공장이 반도체 수급 부족 탓에 멈췄다. 전략물자에 대한 대러 수출 제한 등 경제제재로 인해 이러한 현상은 갈수록 짙어질 전망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 일환으로 수출 제한 조치가 추진되면서 러시아 역내 공장의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당장 생산법인이 현지에 진출해 있는 현대차에도 문제가 생겼다. 현대차는 반도체 수급 부족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공급망 불안이 가중될 것은 이미 예견됐던 사안이다. 코트라 러시아 모스크바무역관은 최근 미국의 대 러시아 반도체 기술 및 부품 제재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이 지속되고 공급가격이 최대 200%까지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 업종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으며 특히 러시아 역내 현대차를 비롯해 피아트, 크라이슬러, GM, 아우디, 볼보 등 현지 진출 기업의 생산성 저하를 심화시켰다. 러시아 정부는 그동안 반도체 부품난에 직접 반도체 개발을 통한 자급화로 대처하려고 했으나 미국이 러시아에 공급되는 반도체에 해외직접제품규제(FDPR)을 적용하면 자체 개발도 어려워진다.
한국도 대러 경제제재에 동참키로 해 전략물자 수출을 제한하기로 했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도 대러 반도체 수출에 경제제재 영향을 받을 듯 보인다. 그러면 러시아에 진출해 있는 현대차 등 국내 기업 역시 칩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는 현대차의 러시아 현지 공장 가동중단 시일이 더 길어질 수 있는 요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전쟁 격화 가능성을 배경으로 국제 금융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위험자산 선호 약화 현상으로 주가가 하락하고 달러화가 강세를 보여 환율이 급등하는 등 변동성이 치솟는 양상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러시아유라시아팀에 따르면 우크라 사태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단기적 영향은 제한적이나 장기적으로 생산성 하락과 대러 교역·투자 위축, 글로벌 무역 환경 변화에 따른 리스크가 커진다. 미국과 EU의 금융제재(SWIFT 배제)는 단기적으로 루블화 가치하락을 초래해 환차손으로 인한 기업 손실이 생길 전망이다. 기업의 대러 직접투자 부문에서도 환차손 등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가능성이 상존한다. 한국의 대러 직접투자는 자동차(현대), 전자(삼성, LG 등), 식료품(롯데, 오리온, 팔도 등) 산업을 중심으로 제조업이 주도해왔다. 이들은 주로 현지 내수 판매에 주력해온 바, 대러 제재 심화 시 내수 위축, 실물 경제 타격도 예상된다.
한쪽에서는 인도적 차원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러시아 내 이탈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BP, 셸에 이어 애플, 엑손모빌 등이 잇따라 러시아 내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국내 기업들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할 경우 현지 투자금을 회수할 방안이 막막해진다.
한편, 주가 하락과 동시에 동반 침체됐던 가상화폐가 러시아 자산을 동결하지 않겠다는 방침으로 급등했다. 기업 금융조달 시장 내 자본 이탈 현상이 심해진 가운데 가상화폐 시장으로 자본이 급격히 이동하는 등 변동성이 많은 상황도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들의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