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러시아 보이콧 아시아권 확대…국내 기업 탈러 압박 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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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러시아 보이콧 아시아권 확대…국내 기업 탈러 압박 증대
  • 이재영 기자
  • 승인 2022.03.1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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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닌텐도・ASUS 등 아시아권 소비재 기업 중심으로 탈러 운동 확산
중국과 인도는 러시아 사업 지속해 대조…사업중단 손실 큰 한국은 고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화상을 통해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화상을 통해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이재영 기자]러시아 보이콧 움직임이 아시아권 소비재 기업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제조업 비중이 높아 탈러 결단이 어려운 한국 기업들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미국・서방-러시아・중국 간의 대립 구도 속에 정부의 친러 정책 기조에 따라 러시아 사업을 지속하는 중국 기업들과 묶여 편가르기 되는 양상이 한국 기업들로선 부담이다.

17일 외신 및 업계 등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 의존도를 낮추기로 하는 등 무역단절 속에 민간 기업들의 탈러 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앞서 셸, BP, 엑손모빌, 애플, GM, 할리데이비슨 등이 잇따라 러시아 사업 철수를 선언한 바 있다. 미국과 서방 기업의 이탈 움직임에 이어 아시아권에서도 상대적으로 사업중단에 따른 손실 부담이 적은 소비재 기업들이 연달아 탈러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일본 담배기업인 JT가 최근 러시아 시장 내 신규 투자와 마케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또 의류기업 유니클로도 러시아 내 50개 점포를 폐쇄했다. 경영진은 사업을 지속할 방침이었으나 소셜 미디어의 보이콧 여론이 높아 영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화장품기업 시세이도 역시 러시아 수출과 광고활동을 중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부총리가 트위터를 통해 게임기업에 대한 사업 중단을 촉구하자 소니그룹과 닌텐도도 대러 출하를 멈췄다. 일본뿐만 아니라 대만의 컴퓨터 제조업체 ASUS도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받아들여 러시아 출하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탈러 운동은 중국과 인도 기업들이 러시아 사업을 지속하면서 대조적인 양상이 부각되고 있다. 중국 국영기업들은 정부와 보조를 맞추며 러시아 에너지 자원개발 투자 프로젝트를 지속 추진 중이다. 인도 역시 에너지 기업 대부분이 국영으로 반러 행동을 자제하고 있다.

전후방 산업 중 전방에 속한 비중이 큰 기업일수록 사업 추진 시 소요되는 투자액수가 큰 만큼 철수 결정도 쉽지 않다. 셸, BP 같은 석유기업들은 프로젝트 중단 손실이 수십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소비재에 가까운 애플, 소니 등은 손실이 덜하고 소비자 접점이 많아 소셜 미디어 반응에 민감한 측면도 있다.

탈러 기업이 많은 일본에서도 석유 관련 프로젝트와 자동차 메이커는 러시아에서 수십년 사업 기반을 다져온 만큼 아직 철수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 미쓰이 물산이나 미쓰비시 상사 등이 여전히 러시아 내 가스 개발사업 등에 참가 중이다.

전방 산업 비중이 큰 한국 기업들도 고민이 큰 상황이다. 전날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한 삼성전자는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이 러시아 사업 철수 여부를 묻는 주주 질문을 받고 “현재 러시아에 대한 제품 공급은 중단한 상태”라며 “러시아 경제제재 상황을 주시 중”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미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는 쪽으로 국제사회 흐름에 동참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도 러시아에 대한 물류가 막히며 현지 완성차 공장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당초 가동 중단 기간이 1주 정도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으나 더 길어지고 있다. 러시아 현지로의 부품 조달이 어려워지고 루블화 가치 급락 등 결제수단도 불안해 사실상 장기간 공장을 꺼둘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한국 기업들이 완전 철수를 보류하고 있지만 러시아가 경제제재에 동참한 한국을 최혜국 대우에서 철회하고 자국산 수출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양국 무역관계는 험악해지고 있다. 에너지・공급망 수급 차질이나 물품 대금 결제 지연 등에 따라 국내 기업의 대러 무역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국내 무역 당국은 러시아가 침공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수출이 완전 막혔고 러시아와의 교역 또한 대금지급이나 물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수출 감소세가 나타나는 것으로 진단했다. 대러 수출은 2월까지 전년 동월 대비 48.8% 늘었으나 3월1일부터 9일까지는 6.6% 감소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접수한 국내 기업의 무역 피해 상황을 보면, 선박제조기업 B사는 결제대금 송금은행이 특별지정 제재대상(SDN)이 되면서 대금 입금지연을 걱정하고 있다. 음료 제조기업 E사는 러시아 수출이 연간 300억~400억원 규모이며, 러시아의 스위프트 퇴출 결정 이후 3월 선적물량을 전체 취소하는 등 대러 수출을 잠정 중단했다. 또 가전기업 F사는 주요 선사의 신규운송 중단, 철도운송 중단, 항공화물 수송중단 등 물류차질이 길어지고 있어 부품수급 애로가 커지면 현지 생산라인 중단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자동차‧조선 업계의 애로가 큰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 전반적으로 글로벌 해운사의 러시아 운항이 중단돼 부품조달이나 완성차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데다 반도체 부족난도 심화됐기 때문이다. 차부품업체들은 러시아로 부품공급이 어려운 상황이며 루블화 가치절하로 환차손이 발생할 것도 걱정하고 있다. 조선업계도 러시아가 발주한 선박에 탑재할 기자재 수급이 막히고 거래대금 송금은행의 SDN 지정으로 수주잔금 리스크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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