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회장 이어 금융위원장도 임기 남기고 자진 퇴장
인수위도 금융기관장 인선 속도...물갈이 가능성 높아져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KDB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이 임기를 남겨두고 자리에서 물러난데 이어 고승범 금융위원장도 잇달아 사의를 표명하며 금융기관장들의 줄퇴진이 현실화 되는 분위기다.
일반적으로 새 정부가 출범하면 기존 정권서 임명한 금융당국 및 정책금융의 수장들이 자리에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후임 인선 막바지 단계에 돌입한 상황인 가운데 무엇보다 금융정책의 전반을 주관하는 금융위 수장이 교체되는 만큼 금융정책 변화는 물론 연쇄적인 사퇴 흐름도 점쳐진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최근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8월 취임한 고 위원장은 임기를 1년 채 마치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나게 됐다. 금융위원장의 임기는 3년으로 고 위원장의 임기는 2년이 넘게 남은 상태였다.
신임 금융위원장에 오르내리는 하마평을 보면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으며,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나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해 정치계에선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등이 나오고 있다.
고 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하기 전부터 이미 금융권의 수장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지난 4월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임기를 1년 4개월가량 남긴 시점에서 사표를 제출한 것이 신호탄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전 이사장은 지난 2017년 6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문재인 정부 초 기재부 제2차관을 지낸 관료 출신이다. 지난 2020년 총선에서 경기 이천에 출마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낙선 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취임, 정치권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엔 이동걸 산업은행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예견된 수순이었다.
이동걸 회장 임기는 내년 9월로 다른 국책은행 기관장보다 많이 남아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대선 이후 줄곧 차기 정권 교체 1순위로 꼽혀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부산 이전 공약에 대해 반대입장을 드러내면서 차기 정부와 갈등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 회장이 정치권에서 친문 인사로 분류된 것도 갈등의 배경이 됐다.
이 회장은 지난 2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와 정책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 직무를 수행하고, 정부와 함께 평가받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사임 의사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특별히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정부의 임기를 맞출 필요가 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통령직인수위가 현재 임기 만료를 앞둔 공공기관장의 인선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문재인 정부 출신 공공기관장의 추가 이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국책은행 중에서는 얼마 전 수장 교체가 마무리된 한국은행을 제외한 한국수출입은행과 IBK기업은행 기관장 행보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은 올해 10월 임기가 끝난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차관을 역임하는 등 차기 정권과의 마찰요인이 크게 없는 데다 남은 임기가 짧아 임기를 무난히 마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올해 12월까지 임기인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경우 문재인 정권 첫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았던 경력이 변수다. 하지만 과거 MB 시절부터 관료 생활을 해온데다 정치색이 덜 하다는 점에서 임기를 완수할 거란 관측도 있다. 특히 취임 후 내부 반발을 수습하고 혁신금융 확대와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코로나19 위기극복 총력지원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추진력도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대희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의 경우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 수석과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한 데 이어 제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 캠프 경제정책 자문단으로 참여해 대표적 친문 인사로 꼽힌다. 다만 지난 2018년 취임, 올해 6월까지 임기다. 남은 임기가 새 정부 출범 후 한 달 정도에 불과해 중도 사퇴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한 한국예탁결제원 이명호 사장의 경우 7개월가량 임기를 남겨두고 있어 변수가 많다. 특히 노조에서 현 정부 관련 낙하산 인사 우려가 제기됐던 신임 간사 선임 작업도 중단, 이 사장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었다.
이 외에도 SGI서울보증보험과 한국자산관리공사, 기술보증기금, 주택금융공사, 서민금융진흥원 등 정치색이 상대적으로 옅거나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관료 출신 기관장들도 긴장을 놓을 순 없다. 새 정부 의지에 따라 충분히 교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