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경로 이탈 시인..."금통위원 다수 금리 인상 열어둬"
영끌족엔 경고 메시지 "1%대 금리 더는 기대하지 말아야"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침체 조짐이다.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한국은행이 긴축과 경기부양 사이에서 고심이 깊이지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9일 "지난 8월 예측한 물가상승률 하락 경로보다는 속도가 늦어지지 않겠냐는 게 금융통화위원들의 중론"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사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단하기 어렵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은은 지난 8월 올해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로 각각 3.5%와 2.4%를 제시한 바 있다.
이 총재는 이와 관련 "내년 12월이 됐을 때 (물가가) 우리 목표 수준인 2%대에 가 있을 거냐(고 물으면),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씀드린 적이 없고 이번에도 그렇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12월 말 물가상승률 2%는 불확실성이 크다"면서도 "그 수준으로 수렴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속도가 지난 8월 예측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이날 회의에서 금융통화위원들이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지만, 향후 3개월 기준금리에 대해서는 이견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그는 "저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졌고 목표 수렴 시기가 늦춰질 가능성이 커져서 지난 8월 회의 때보다 긴축강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의견을 나타낸) 5명 중 1명은 가계부채가 더 악화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 "나머지 1명은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이 워낙 커서 향후 3개월을 봤을 때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낮출 수도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억제 정책과 관련, "미시적인 조정을 해보고 정 안 되면 금리를 통한 거시적인 조정도 생각해보겠지만 그런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결국 부동산 가격의 문제"라며 "통화정책이 부동산 가격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통화정책으로 부동산 가격을 오르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에 대해 "시장 충격 없이 구조조정 중"이라며 "(지난해와 비교해) 질서 있는 조정 국면으로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과 금리 인하를 기대한 '빚투'에는 거듭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이 총재는 "자기 돈이 아니라 레버리지(차입)로 하는 분들이 많은데, 금리가 다시 1%대로 예전처럼 떨어져서 이게 비용 부담이 적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점은 경고해 드린다"고 말했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 영향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단하기 어렵다"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중동 방문 결과 등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기준금리도 이 사태에 따른 국제 유가 변동성 등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제가 미국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끝나가지 않느냐고 하는 것은 이번에 안 올릴 것이라는 게 아니다"라면서 "지난해 가속해서 올리던 상황에서 지금은 올려도 한 번 정도 올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는 면에서 안정되는 국면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에 대해 "금리차 (축소) 자체는 정책 목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 총재는 "금리가 금방 예전처럼 다시 1%대로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며 빚을 내 집을 사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더라도, 자기 돈으로 투자하는 게 아니고 레버리지해서(돈을 빌려서) 하는 분들이 많은데 금융 부담이 금방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경고하겠다"며 "한은이 통화정책을 느슨하게 해서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데 (금통위원들이)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