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최근 원·엔 환율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일본 엔화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엔화 예금 잔액이 올해 들어 1.5배 가까이 늘고 원화를 엔화로 바꾸는 환전 규모도 크게 늘었다.
엔화의 분할 매수를 고려해볼 만한 가격이기는 하지만, 고수익을 기대하고 향후 엔화 가치 회복에 과감하게 베팅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엔·달러 환율이 150엔을 넘고,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860원대로 떨어지는 '역대급 엔저'가 지속되면서 관련 투자도 인기를 끌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 3일 기준 1조1110억엔(약 9조668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잔액(6832억엔)의 1.5배에 가까운 액수로, 올해 들어서만 4278억엔 급증했다.
5대 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 4월 말 5978억엔까지 줄었다가 5월부터 가파르게 늘기 시작해 9월 말에는 1조엔을 돌파했다.
원·엔 재정환율이 지난 6일 100엔당 867.38원을 기록해 종가 기준으로 2008년 1월 15일(865.28원) 이후 최저를 기록하는 등 엔화 가치가 떨어지자, 엔화 예금을 통해 환차익을 기대하는 수요가 몰린 것으로 보인다.
김대수 신한PWM여의도센터 팀장은 "100엔당 900원 초반선이 유지되다가 최근 다시 800원 후반대까지 무너지면서 단기 환차익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고 말했다. 예금 잔액 상당 부분은 기업 예금인데, 수출 기업의 결제 대금 수취와 일본 기업의 자국 송금 수요도 늘었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아울러 코로나19 방역 조치 해제와 엔저 현상이 맞물리면서 여행 수요가 급증, 엔화 환전액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5대 은행의 엔화 매도액은 약 3138억엔(약 2조732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70억엔)의 4배 수준이다. 은행이 고객에게 원화를 받고 엔화를 내준 환전 규모가 지난해보다 4배로 불어났다는 뜻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엔저 현상에 따라 일본 여행객이 증가했기 때문"이라며 "엔화 환전은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투자 전문가들은 최근 엔화가 과도하게 저평가된 상황이어서 매수를 고려해볼 수 있지만, 단기 고수익을 거두기에 적합한 자산은 아닐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자본시장영업부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단기 하단은 840원 수준이며, 내년까지 적정 환율은 890∼930원, 상단은 970원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엔화 반등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나, 장기적으로 일본 경제 펀더멘털이 강하지 않다는 점에서 기대 수익률을 높게 예측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채란 하나은행 여의도골드클럽 PB부장은 "860원대와 850원 아래서 분할 매수하는 것을 권해드리고 있다"고 전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투자상품전략부 이코노미스트는 "엔화는 일본은행의 정책 전환이 뚜렷해지기 전까지는 약세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향후 엔화 강세로의 점진적인 전환이 예상되므로 저점에서 분할 매수 접근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