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다는 건 모두가 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이는 몇이나 될까?” 정치학자 얀-베르너 뮐러가 자신의 저서에 밝힌 글이다. 민주주의, 특히 포퓰리즘에 대해 연구해온 뮐러는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가짜 민주주의'와 '진짜 민주주의'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뮐러는 또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선 '매개 기구', 즉 정당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당은 비슷한 정치적 노선을 지닌 이들이 모여 만든 자발적인 결사체로, 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하고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한다. 그 과정에서 시민을 설득하고 사회적인 토론을 촉진하는 역할 또한 담당한다. 따라서 정당은 민주주의 사회의 담지자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정당이 건강해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 건강한 민주주의의 요소에는 선거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정당은 당장 눈앞의 권력을 획득하는 것에 그치면 안 된다. 정당은 그들 스스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민주적 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래야만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이 가능한, 건강한 공론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정당들은 건강한가? 특히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민주적이고 건강한 공론장인가? 적어도 현재의 민주당은 그렇다고 답하기 힘들다.
주류 의견과 다른 생각을 표출하면 '수박'으로 낙인찍혀 공격받는 것은 이미 일상적인 일이다. 추미애 의원이 국회의장이 되지 않은 것에 분노한 당원들은 원내대표와 국회의장단을 선출할 때조차 권리당원의 투표를 반영하라며 압박하고 있다. 과거 민주당의 귀책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에 당헌당규를 고쳐 후보를 낸 것에 이어, 이번에는 이재명 전 대표의 연임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 당헌당규를 고치고 있다.
지도부 선거에 출마하려는 이들은 하나같이 '지키자 이재명'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의원의 권한을 줄이고 권리당원의 주권을 강화하는 움직임에서도 제대로 된 토론은 없었다. 오히려 그러한 움직임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어 온 사람들은 '반(反)개혁세력'으로 분류되어 당연히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된다.
모든 사안에서 당원들의 뜻을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좋은 민주주의가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는 단순히 주권자의 뜻을 대리(delegate)함으로써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의견을 놓고 토론함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간 대안으로의 합의에 이를 수 있을 때 좋은 민주주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것이 바로 대표(representation)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대표자들은 주권자의 뜻을 대리하기만 할 뿐 대표하는 일에는 소홀하다.
토론이 사라진 민주당. 당원의 요구는 '절대 선'이고 그 '절대 선'을 따르지 않으면 적이 되는 민주당. 그 속에서 나온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의 아버지"라는 강민구 최고위원의 기괴한 발언은 단지 "영남 남인의 예법" 정도가 아니라 서서히 붕괴된 당내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함축하는 발언으로 보여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