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양적 확대 예산 집행 아닌 전문성 등 내실 갖춰야
매일일보 = 최한결 기자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지고 있는 한국이 최근에도 급증하는 자살률을 감안하면 정부 대처가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8일 통계청 '한국의 안전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2년도 집계된 국내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당 25.2명으로 조사됐다. 이는 OECD 평균인 10.7명의 두 배 이상이다. OECD 회원국 중 20명을 넘은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자살률이 두 번째로 높은 리투아니아와 비교해 5.6명이나 많다.
더 큰 문제는 청소년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24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22년 10대의 자해·자살 시도 건수는 5879건으로 전체 연령대 중 16%에 달했다. 이는 건수가 가장 많았던 20대 1만487건(28.5%)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OECD 가입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썼지만 그동안 국가 차원의 대책은 사실상 전무했던 상황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3년 12월 정신건강정책 비전선포대회에서 "우리나라는 높은 경제 수준에 비해 자살률이 1위고 행복지수는 꼴찌고 삶의 만족도는 대단히 낮다"고 지적했다. 이후 지난 6월에서야 자살률 감소를 위해 대통령직속기구인 '정신건강 정책혁신위'를 설립했다.
이에 따라 지난 12일부터 자살률 50% 감축을 목표로 공공기관·초중고교·사회복지시설·병원급 의료 등에서 '자살 예방 인식 개선 교육' 또는 자살 위험 요인·자살 경고 신호 등을 공유하는 '생명 지킴이 교육'이 실시됐다. 단 관련 교육은 집합교육 및 시청각, 인터넷으로 이뤄진다.
이번에 실시하는 자살예방교육 예산이 전체 자살예방 예산 중 6.1%인 31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OECD 자살률 1위 국가 오명을 벗기 위해 ‘10년 내 자살율 50% 감축’ ‘내년 7월 국가·공공기관·학교 등 1600만명 자살예방교육 의무화’ 등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자살 예방 교육 의무화도 실제 자살 예방 효과가 있을 지는 미지수다. 최근 자살 연령이 낮아지면서 전문적인 자살 예방 교육의 중요성이 더 커졌지만, 비대면교육 형식을 채택한 정부는 이를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교육부 통계를 보면 지난 2022년 기준 자살한 초·중·고생은 193명으로 2018년(144명)보다 34% 증가했다. 특히 초등학생은 266.7%(3명→11명) 급증했다.
김도우 경남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청소년 자살률이 최근 급증세인데 예방책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형식적"이라며 "보통 학교에 상담교사들이 배치돼 있는데 이들은 학교폭력과 진로에 특화돼 있지 정신건강과는 무관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수준에서 실효성 있는 자살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자살 위험자들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특화시스템을 지자체별로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외와 비교해서도 국내 자살 예방예산은 적은 수준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1월 발표한 올해 예산안 심의결과에 따르면 정부의 자살예방 관련 사업으로 확정된 예산은 총 603억원가량이다.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이 2021년 일본의 자살예방 관련 예산으로 추산한 8300억원의 7.3% 수준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 분야 전문가는 "교육부 및 복지부, 고용부 등 범정부 차원에서 예산을 대폭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살예방교육 및 홍보 활성화 예산이 올해 31억원으로 책정됐다고는 하지만 지난 2021년 대비 절반가량 감소한 것"이라며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조성 예산은 지난해 488억원에서 올해 508억원으로 늘었지만, 자살 예방 교육이 의무화된 것을 고려하면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은 오는 2027년까지 총 100만명에 심리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내년도 관련 예산으로 3000억원을 투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실제 사업비로 해당 금액이 투입될지는 미지수다.
이건수 백석대학교 경찰학부 교수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전문적인 자살예방센터들이 부족하다"면서 "무분별하게 예산을 투입할 것이 아니라 치료상담·예산 투입·전문가 투입 등 촘촘하고 전문성을 갖춰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해용 라이프호프 사무총장은 "최근 유가족이 자살할 확률이 일반인들보다 20배는 높게 나타나고 있다"면서 "유가족 자살 방지 지원체계를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최근 자살 방지 관련 예산을 늘릴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인건비에 치중하고 사업비 관련 지원 체계는 부족한 실정"면서 "사업비 지원들이 원활히 이뤄지면 민간 협력 사업들의 강화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