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대증원 유예 불가능' 입장 고수… 선심성 정책 남발
의료계, 추석 연휴 기간 의료공백 대책 '全無'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정부와 의료계가 의대증원 문제에 대한 협상 가능성 여지를 밝혔지만, 정작 양측의 고집으로 의정갈등은 지속할 전망이다.
18일 정부 및 의료계에 따르면,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에 대한 정치권의 지지는 강력하나, 정부와 의료계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추석 당일 C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비틀스의 명곡 '컴 투게더‘를 소개하면서 정부와 정치권, 의료계의 화합을 강조했다. 연휴 기간 빚어진 응급실 공백에 대해선 "지금 이런 상황 앞에서는 정치적 유불리를 누구든 따질 문제는 아니다"라며 협의체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반면 정부는 이미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돼 입시에 혼란을 줄 수 있어 의대증원을 유예할 수 없단 입장이다. 종로학원이 조사한 비수도권 의대 26곳의 2025학년도 수시모집 지역인재 전형 접수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해보다 1만1054명 더 많은 총 1만9423명이 원서를 내면서 전체 경쟁률은 12.5대 1을 기록했다. 교육의 질이 하락할 것이란 우려와는 별개로, 의대 진학 수요는 크게 증가한 만큼 정부의 주장이 당위성을 얻을 전망이다.
의료계는 의대증원 백지화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협상은 절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한의사협회,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 등 8개 의사단체는 한동훈 대표의 “지금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해야 할 때”라는 발언에 대해 동의한단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추석을 앞두고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응급실, 이어서 닥쳐올 중환자실 위기를 비롯해 각 진료과 문제 등 우리가 의료현장에서 매일 겪고 있는 의료시스템의 붕괴는 실로 심각하다”며 정부에게 책임을 돌렸다.
정작 이들 단체는 추석 연휴가 다 지나가도록 어떤 방식으로 환자를 돌볼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정부의 태도 변화와 무관하게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단 한명의 환자도 잃고 싶지 않은 절실한 마음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여태껏 그래왔듯이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의 의료공백은 개인병원의 운영 여부가 아닌, 전공의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응급실 부족에서 빚어진 문제다. 경기도 한 공립의료원 의료인은 “의료계 중진들이 전공의들을 향해 연휴 동안만이라도 복귀를 독려하는 목소리를 내거나, 개원의들이 직접 응급실로 출근하는 등 노력이 있어야 했다”며 “의료공백이 정부의 잘못으로 빚어진 것이라 쳐도, 환자를 돌볼 의사가 현장에 없는 것은 의료계 책임”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의료계가 강대강으로 맞서면서, 연휴 기간 애꿎은 국민들만 피해를 본 실정이다. 추석 전 우려했던 ‘응급실 뺑뺑이’ 사례가 잇따랐지만, 양측은 서로에게 잘못을 넘기며 책임을 회피하는 실정이다.
정부가 의료인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추석 전후로 쏟아낸 대책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추석 연휴 전후 한시적으로 진찰료, 조제료 등 건강보험 수가를 대폭 인상하기로 했다. 특히 중증 응급환자를 책임지는 권역응급의료센터 진찰료를 평소의 3.5배 수준으로 인상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구급대원은 “정부는 의사에게 돈을 많이 주면 응급실 뺑뺑이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나 보다”라며 “억만금을 준다해도 현장에 없는 의사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보건복지부는 추석연휴 첫날(16일) 병원 및 의료인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사유를 안내했다. 환자·보호자의 폭행, 협박 또는 장비 손상 등으로 응급의료종사자가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방해하면 응급실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내린 조치다.
서울 S대병원 의료인은 “의료계가 관련 문제에 대응 마련을 요구했을 땐 제대로된 해결책도 주지 않았다. 원래 당연히 있어야 할 제도를 이제 와서 선심 쓰듯 베푸는 것이 정부의 문제”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