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박지성 기자 |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와 자동차 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는 '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한 만큼 향후 반도체·자동차 등 보조금 정책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업계와 자동차 업계는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으로 향후 보조금 정책에 변화가 있을 가능성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의 대표 경제 정책이었던 반도체지원법(칩스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무력화하는 등 미국에 투자한 우리 기업의 보조금을 백지화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미국 내 조 단위 투자를 집행 중인 국내 반도체, 자동차 기업들은 보조금과 세제혜택 축소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짓고 있는 만큼 트럼프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오는 2026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2030년까지 총 45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바이든 정부는 삼성전자에 보조금 총 64억달러를 지급하기로 약속한 상태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인공지능(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데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지난 8월에는 미 상무부와 최대 4억5000만달러의 연방 보조금 지급과 관련한 예비거래각서(PMT)도 체결했다.
다만, 아직 PMT 단계로 보조금 지급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가 반도체 보조금을 축소한다면 국내 기업들은 투자 비용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트럼프는 반도체지원법에 대해 해외기업 보조금 지급 규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며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미국 반도체 패권을 위한 공화당의 대외정책은 동맹국 클러스터 중심이 아닌 자국 중심"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압박과 자국 투자 확대를 위해 반도체법 상 가드레일 조항 및 보조금 수령을 위한 동맹국 투자 요건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어 "특히 한국, 대만, 일본, 유럽 반도체 기업들에 대해서는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가 아닌, 투자를 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정책이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트럼프는 친환경 정책에 반대하는 기조를 내비치면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현대자동차그룹에도 타격이 가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의 IRA를 철폐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미국 상원이 IRA 폐지를 반대하고 있어 완전 폐지까지는 안될 것으로 보이나, 전기차 보조금을 축소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인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를 가동 중이다. 미국에서는 IRA에 따른 세액공제 혜택으로 자국에서 만든 전기차를 구매할 시 대당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받았지만, 앞으로 지급 여부는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높다.
또 트럼프는 화석연료 생산을 늘려 전통 에너지 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전기차 전환 정책도 급제동에 걸렸다. 미국 현지에 전기차를 판매하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는 다양한 차종 개발을 통해 미국 정책 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트럼프는 내연기관차 대비 자동차 부품이 30%가량 적은 전기차 보급으로 인해 미국 내 일자리가 줄고 있어 전기차 전환 정책을 후퇴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국산 수출 전기차의 절반가량이 미국으로 수출되는 만큼 전기차 산업이 타격을 입을 수 있으므로 하이브리드차 등 다양한 차종의 개발과 더불어 미국 정책 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