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규모 양적완화로 국산제품 가격 경쟁력 추락
최경환경제팀 대책? “더 꼼꼼히 살펴보겠다”는 것 뿐
[매일일보 박동준 기자] 한국 경제가 ‘신3저’(저성장·저물가·엔저)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1980년대 한국 경제가 저금리, 저달러, 저유가 등 ‘3저’에 힘입어 폭발적인 호황을 누린데 반해 이번 ‘신3저’는 한국 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전세계적으로 디플레이션 공포가 엄습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대대적인 추가 양적완화에 따른 엔화 약세로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마저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근원적인 해결책은 없는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신3저’의 영향으로 한국 경제가 현재 위기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 우리경제는 저성장, 저물가, 엔저의 도전으로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 미국의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 등 세계경제의 불확실성도 심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3·4분기 국내총생산(GDP)에 따르면 지난 3분기 한국 경제는 전분기대비 0.9% 성장하는데 그쳤다. 지난 2분기에는 세월호 여파로 전분기 대비 0.5% 성장하는 등 지난해 4분기 이후 4분기 연속 1% 미만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2분기와 3분기 각각 1.0%와 1.1%의 성장률을 제외하면 2011년 1분기부터 2013년 1분기까지 2년 넘게 1%를 밑도는 0%대 분기성장률을 기록했다.저물가 기조도 점차 굳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중기 물가안정목표 하단인 2.5%는 고사하고 2% 이하의 물가상승률이 지속된지 오래됐다.기획재정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2%를 기록해 4개월 만에 반등했다.다만 2012년 11월 시작된 1%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개월째 이어졌고 올해 들어 지난 10월까지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상승해 1999년(0.7%) 이후 1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기재부는 올해 남은 11월과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현재와 유사한 1%대 초반일 것으로 전망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3%에 이어 2년 연속 1%대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0.8%로 떨어진 적은 있지만 2년 연속 1%대를 기록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저물가에 대해 정부는 국제원자재가격 하락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지만 가계 소비여력 위축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최근 5년간 임금상승률이 경제성장률을 밑돌면서 가계 지갑이 닫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 경제에 대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엔화 약세의 가속화가 국내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 경제의 유동성 공급종료와 맞물린 일본의 추가 양적완화 단행으로 달러·엔 환율은 치솟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원화는 절상되고 있어 원엔 재정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00엔 당 1000원 이하로 하락했다.한·일 양국의 100대 수출품목 중 54개 품목이 중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원·엔 재정환율의 하락은 국내 기업의 가격 경쟁력에 치명타다.현대경제연구원의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원·엔 환율이 100엔당 950원일 경우 한국의 총수출은 4.2% 감소한다고 예상했다. 여기에 100엔당 900원까지 추가 하락하면 수출이 8.8%까지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문제는 내년에 엔화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내년 달러·엔 환율이 달러당 120엔대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속출하고 있다.일례로 JP모건은 지난달 31일 일본의 추가 양적완화가 발표되자 미국과의 금리 격차 확대로 엔저가 심화될 것으로 보고 약 1년 뒤인 내년 3분기의 달러·엔 환율 전망치를 종전 달러당 110엔에서 120엔으로 올렸다.정부는 엔화 약세에 국제 공조를 요청할 예정이지만 이미 지난해 4월 한번 사용한 카드라 큰 효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한국 정부는 오는 15∼16일 호주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통화정책을 펼 때에는 스필오버(월경효과)를 고려하자는 문구가 선언문에 반영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정부는 엔화 약세 관련 당장은 별도의 시장 대책이나 산업 지원 대책을 내놓지는 않을 방침이다.은행간 원·엔 거래 시장이 국내에 없어 직접적인 개입이 어려운 점도 있지만 미국과 일본·유럽 등 선진국들의 통화정책 기조가 엇갈리는 상황이어서 엔화 약세에 대해 강력한 대응책을 펴기보다는 달러화 강세 등 추이를 좀 더 지켜볼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경제장관회의에서 “‘지금 우리 경제는 여전히 위기’라고 말씀하신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의 내용처럼 우리 경제의 구석구석 누수가 생기는 부분이 있는지 꼼꼼히 살피기 위해 종합적인 조기점검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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