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편
“메이저 브랜드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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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편
“메이저 브랜드 두렵지 않다”
  • 김경식 기자
  • 승인 2006.02.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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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눈부신 성장과 당당한 세계경쟁력 분석

[매일일보=김경식 기자]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글로벌CEO로 주목을 받고 있다. 1998년 12월 현대차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2005년까지 약 6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정 회장의 탁월한 경영실적이 이를 잘 말해준다.

외한위기 직후 적자 상태였던 현대차를 맡은 지 1년 만에 4천억원대 흑자를 기록한 것을 비롯, 해마다 자신의 경영 신기록을 갱신하면 성공을 거듭해 왔다. 특히 곳곳에서 ‘죽겠다’는 소리가 나오던 2003~2004년 불황기에도 ‘나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놀라운 경영성과를 거뒀다.

<누구도 예상 못한 놀라운 성공 이끌어내 주목>

현대차가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된 지는 올해로 6년째, 현대차는 2004년 총 167만 7천818대를 판매해 27조 4천725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을 거뒀다.

당기순이익은 2005년 기준 1조 7천846억원으로 4년 연속 1조원을 넘어서 2조 원대를 달성했다. 이로써 현대차는 2001년부터 매출액 20조 원을 넘어섰고 순익 1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기아차도 눈부신 성장세다. 기아차는 올 3월 경기도 평택항에서 수출 5백만 대 달성 기념식을 가졌다.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이후 5년 만에 무려 3백만 대를 수출했다.

<매일일보>은 ‘정몽구의 도전(출판 고즈윈 / 김상홍, 이상민 지음)’을 바탕으로 세계 자동차업계 ‘빅5’에 도전장을 내민 정 회장의 리더십 신화를 재조명했다.

무엇이 이런 성과를 가능하게 했는가? 이런 비약적인 실적의 중심에는 정몽구가 있었다. 그의 경영능력에 의심을 품는 사람도 있었고, 2000년 홀로서기에 나섰을 때는 현대차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 것인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정몽구는 이런 의심과 우려를 종식시키며 당당히 세계시장에서 그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2005년 1월 <비즈니스&#50973;크>는 그를 자동차부문 최고 CEO로 선정했고, 선정 사유에서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 아래 현대차는 세계경쟁업체들을 제치고 업계 수위로 도약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그만의 특별한 경영비밀 최초 집중 공개

취임 이래 정 회장은 강력한 품질향상 전략으로 품질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미국 J.D.파워이 신차 평가 결과는 현대차의 품질향상 정도를 증명해 준다.

최근 5개년 간 미국 전체 자동차회사가 결함을 평균 23% 줄인 데 비해 현대차는 무려 50%이상 감소시켰다. 품질 향상은 판매증대로 이어졌다. 현대차는 지난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41만 8천 대를 판매해 점유율 2.5%의 벽을 넘어섰으며 놀라운 성장세를 잇고 있다.

해외 생산거점의 성공적 운영도 이루어지고 있다. 2002년 처음 진출해 2003년 판매순위 13위를 기록했던 중국에서느 2004년에 판매순위를 5위로 끌어올렸다. 인도공장 역시 전년 대비 판매량 433%증가라는 신장세를 기록햇다. 현대차는 미국 앨라배마공장, 슬로바키아공장, 중국공장 등 해외 거점에 자동차 생산기지를 착착 완공시키고 있다.

“직원들 사이에 ‘정몽구 회장은 품질본부장’이라는 우스겠소리가 있다.”고 할 정도로 ‘품질제일주의’는 정몽구의 첫 번째 경영원칙이다.

“품질에서 만큼은 목표가 끝이 없다.” “싸구려 차는 만들지 않겠으니, 제값 받고 팔아 달라.”는 자신의 말대로 그에게 있어 품질은 양보할 수 없는 절대가치이다. 그가 이끈 수많은 변화와 실천은 ‘품질 향상’이라는 절대목표를 향해 있다.

정 회장의 지시에 따라 양재동 현대·기아차 사옥 1층은 3개의 품질 관련 공간(품질상황실, 품질회의실, 품질확보실)이 차지하고 있다. 그는 품질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품질 패스제’를 도입했다. 부품업체들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자동차부풉산업재단’을 설립하였고, 협력업체들이 품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5-스타제”를 실행한다.

양산 단계이전에 미리 차량을 제작해 보는 것은 물론, 실제 라인 생산작업까지 해보면서 생산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점들을 미리 파악하고 개선하는 파일럿센터는 그가 창안한 현대차만의 독특한 품질관리 시스템이 가동되는 곳이다.

이러한 노력은 2004년 4월 미국J.D. 파워의 초기 품질지수조사에서 메이커별로는 도요타에 이어 혼다와 함께 2위, 브랜드별로는 9위의 도요타를 제치고 7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자체 기술로 만든 쎄타엔진은 미쓰비시와 다임러크라이슬러에서 도입을 결정했으며, 현대차는 기술이전비용까지 챙기고 있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쎄타엔진 검토 후 본사에 보내는 보고서에 “벤츠가 설계해도 이보다 잘할 수는 없겠다.”라고 썼다. 또 도요타는 현대차에 각사의 핵심공장을 공개해 서로 벤치마킹하자는 제안을 해오기도 했다.

현장경영 중시

정 회장은 현장을 중시한다. 현장에서 보고 배우고, 현장에서 느끼고, 현장에서 해결한 뒤 확인까지 한다는 ‘3현(現)주의’는 그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1998년 외환위기를 불러온 부실기업 기아를 그처럼 빠르게 정상화시킨 것은 그의 현장경영을 통한 강력한 품질 드라이브 때문이었다고 모두들 입을 모은다. 그의 3현 주의는 현대·기아차 중역들의 행동지침으로 확대되어 현장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바로 그 현장에서 해법을 제시하는 풍토가 정착되어 가고 있다.

현대차가 중국 진출을 본격화한 2000년은 이미 세계 메이저 업체들이 중국에 자리를 잡고 있던 상황. 현대차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늦어도 2002년 안에 중국 현지공장서 만든 차를 내놓아야 했다. 2002년 5월 베ㅐ이징기차와 합작법인 설립계양을 마친 정몽구는 특유의 뚝심으로 용단을 내린다.

중국 정부의 승인이 남아 있었지만, 공장 설립 준비 작업에 들어 간 것이다. 결국 현대차는 9월 본격적인 공장 짓기를 시작해 작업 3개월만인 12월 첫 쏘나타를 생산해낸다. 정몽구의 뚝심과 과감한 결단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현대차는 첫‘메이드 인 차이나’1호차를 생산한 지 2년만인 2004년 말 세계자동차 격전지 중국에서 중국 내 완성차 업계 중 생산과 판매부문에서 4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정 회장은 그만의 대표적인 경영기법인 품질경영, 현장경영, 뚝심경영을 앞세워 지옥의 카레이스보다도 더 치열하다는 자동차 산업에서 세계 톱5로의 진입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처음 그가 현대차를 맡았을 때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눈부신 성과다.

그의 이러한 성과는 일찍이 어느 기업이나 어느 경영인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어느 경영서적에서도 다루지 않은 그만의 경영기법과 실천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오늘날의 많은 기업과 경영자들에게 생생한 교훈을 전해줄 것이다.


인간적인 매력과 숨겨진 카리스마

1982년 정몽구는 AS 기능직 사원 가운데 결혼식을 올리고도 신혼여행을 못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이들을 모두 신혼여행 보내줄 것을 결심한다. 덕분에 500여 명의 기능직 사원들이 그의 강력한 의지로 성사 되었으며, 현장사원들의 사기가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2004년 현대차 울산공장을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그는 헤드 테이블에 협력업체 사장들의 자리를 마련해 예우하였으며, “현대차 품질이 좋아진 것은 다들 여기 계신 사장님들 노력 때문”이라며 거듭 감사를 표시했다.

그는 해외에 진출할 때도 늘 협력업체도 함께 현지에 진출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완성차업계와 부품업계는 상생의 관계여야 하며 수레의 양 바퀴와 같아야 함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다.

현대차의 핵심연구개발 공간인 남양 연구소 파워트레인동의 바닥은 온통 붉은색으로 덮여 있다.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을 연구하는 연구원들이 스스로 회사의 주연배우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영화제에서 주연배우들이 레드 카펫을 밟고 등장하듯이 연구원들도 레드 카펫을 밟고 다닐 수 있도록 하자는 정 회장의 아이디어와 지시로 설치된 것이다.

정 회장은 세금 많이 내는 기업이 애국자라며 세금 줄일 생각을 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몇 년 전 한 CFO는 절세 방안을 그에게 보고했다가 혼쭐난 적이 있었으며, 그 소식이 알려진 이후 각사 재정팀에서는 세금은 원칙대로 내야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일찍이 서울정비소 소장으로 근무할 때부터 기름 때 묻은 장갑을 벗고 사업소 매점에서 현장 직원들과 함께 소주를 마시던 그는 직원들과의 스킨십이 남다르다.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서로 몸으로 부딪혀야 한다며 직원들과 의 등산을 강조하는 그는, 좋은 음식과 공연을 접하면 그것을 직원들에게도 맛보이고 보여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섬세함도 지니고 있다.

정 회장은 비행기에서 빈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지원에게 “왜 지정 좌석에 앉지 않느냐”고 혼을 내고, 골프를 칠 때 결코 컨시드를 받지 않는 원칙주의자이기도 하다.

부러운 대상이 된 현대차 의미와 교훈

정 회장과 현대차그룹의 성취는 한 개인과 기업의 성공을 뛰어넘는 중대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세계가 부러워할 한국의 성취이며, 나아가 한국인의 성취와 동일 시 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숱한 자동차업체가 명멸했다. 자동차산업은 부가가치가 높고 고용효과나 다른 산업 부문과 연관효과가 큰 까닭에 2차 대전 이전부터 여러 나라에서 이에 도전했으며, 국가마다 군소업체들이 난립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제대로 된 차를 만들어 내수를 충족하고 해외에 내다 파는 나라는 6개국, 10여개 브랜드 뿐 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1960년대 명멸한 군소업체들을 비롯, 대우차 ·삼성차·쌍용차·기아차(현대차 인수 전)의 운명이 그 치열함을 웅변한다. 그런 경쟁 속에서 부도, 파산, 습수·합병 등이 이어지며 강자들만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GM, 르노, 폴크스바겐, 도요타 등은 모두 2차대전 때 연합국(미국·프랑스)과 동맹국(독일·이탈리아·일본)이었던 나라들이다. 이들이 거듭 자동차 시장에서 할 거하고 있다. 바로 이 ‘생존자의 반열’에 우리의 현대차가 들어있다. 이제는 생존 단계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자기 브랜드로 메이저 브랜드들과 겨루고 있다.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정몽구와 현대차는 2010년까지 세계‘빅5’로 정착한다는 목표를 걸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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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인도에서의 질주>

세상의 이목이 현대창의 미국공장이 어디로 낙점될지에 쏠려 있던 2000년 말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의 지시로 또 다른 프로젝트를 긴밀히 진행하고 있었다. 바로 유럽공장 설립을 위한 기초조사였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럽시장 역시 현지공장 설립의 필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었다. 유럽이 EU라는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되면서 수출만으로 시장을 뚫기에는 관세장벽 등 여러 제약이 많았다.

역시 유럽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적진 깊숙이 뛰어드는 길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 정몽구의 생각. 관세부담이 없는 EU권내에 현지공장을 설립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물론 이미 현대 차는 터키에 공장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생산규모가 6만 대. 유럽시장 물량을 대기엔 생산량이 모자랐다. 2000년 9월 터키공장에서 정몽구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곳을 거점으로 유럽시장 전체를 다 커버하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겠어요? 판매량을 지켜보면서 유럽에 새 공장을 검토하겠습니다.”

사실 현대차가 유럽공장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1년 전인 1999년 9월 이계안 당시 사장(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대우 차의 폴란드 FSO 공장을 인수할 의향이 있다.”고 발표했을 때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무렵 대우 차 폴란드공장 인수도 고려했다.

물론 터키공장을 증설하는 방안도 따져봤다. 하지만 그보다 새로 EU에 편입될 동유럽 쪽에 공장을 짓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인건비가 싸고 입지여건이 좋으며, 2000년 당시에는 EU 울타리에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EU 가입의 가능성이 높았고, 주요시장인 서유럽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장점이 있었다. 반면 터키는 당시만 해도 기존 서유럽국가와 종교적인 거리감이 있었고, EU가 요구하는 개혁속도에서 뒤져 EU 가입이 불투명하던 상황. 결론은 동유럽 쪽이었다. 푸조, 시트로엥, 혼다 등 세계 유수의 자동차업체들도 동유럽으로 걸음을 옮겨가고 있었다.

세계시장을 향한 또 하나의 포석

2002년 초 현지조사가 시작됐고 미국공장 입지 선정이 마무리된 4월 이후 정몽구는 본격적으로 동유럽공장 챙기기에 나섰다. 2003년 초 동유럽공장 설립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인 ‘E프로젝트팀’이 구성됐다.

태스크포스팀은 터키에 공장이 있는 현대 차보다는 기아 차의 공장을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을 냈다. 유럽시장에 맞는 실용적인 소형차에 기아차가 강점이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2004년 EU 가입이 확정된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을 유력 후보로 올려놓은 뒤 정몽구 회장은 앨라배마공장 설립 때 좋은 유치조건을 이끌어낸 김동진 현대차 사장(현 현대차 부회장)과 김용환 기아차 해외영업본부장을 10월 유럽 현지에 보내 각국의 입지조건 실사를 주문했다.

당초 슬로바키아는 방문대상 지역에서 빠져 있었으나 슬로바키아의 경제부총리인 파볼 루스코가 이 소식을 듣고 김 사장의 유럽행 이틀 전에 한국을 찾아와 슬로바키아의 입지조건을 설명하고 방문을 간곡히 요청, 실사대상 국가에 포함됐다. 결과적으로 슬로바키아 정부의 열성적인 노력과 지원의사가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앨라배마공장 설립 때처럼 정몽구는 11월 최종 후보지로 두 곳, 폴란드와 슬로바키아를 선정해 양쪽과 동시에 협상을 벌이는 양다리 작전을 구사했다. 물론 두 곳의 경쟁을 부추겨 최적의 조건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2004년 3월 2일 기아 차는 슬로바키아의 질리나를 최종입지로 선정한다고 발표했고 3월 18일 기공식을 열었다.

이로써 정 회장 취임 이후 불과 3년 만에 2002년 중국 베이징, 2003년 미국 앨라배마, 2004년 슬로바키아 질리나 등 3년 연속 대규모 해외공장 투자계획을 마무리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과 유럽, 가장 유망한 시장인 중국시장 공략 기지 설립을 끝낸 것이다.

슬로바키아공장은 정몽구의 외아들인 정의선 사장이 부지 선정부터 공장 설립까지 깊숙이 개입해 경영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함으로써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는 점도 정몽구에게는 고무적인 일이었다. 실제 정 사장은 2004년 중반 토지매입 문제로 공사 진척이 더뎌지자 직접 슬로바키아로 날아가 현지 정부 고위관료들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수완을 보였다.

인도 공장, 모범적 성공사례

미국, 유럽, 중국 외에 정몽구의 관심이 큰 곳은 인도다. 인도공장은 1997년 말 완공됐다. 인도시장에서 현대 차는 동급 판매순위 1위를 보이는 상트로(국내명 아토스)를 중심으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정몽구는 인도 공장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다. 현대차가 인도에 제2공장을 짓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인도의잠재성뿐 아니라 정몽구 현대 차 그룹 회장의 인도 공장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한 몫 했다는 분석이다.

정몽구는 인도 공장의 성공사례를 다른 공장들도 벤치마킹하라고 여러 차례 지시했으며 다른 그룹 총수들에게도 인도 공장의 성공을 자랑하곤 했다.

정몽구는 지난 2003년 초 인도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내 관리직들을 인도로 보내 성공사례를 배우도록 특별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서울 본사 및 울산공장의 관리직 천여 명이 3박 4일 일정으로 인도 공장을 견학했다. 정몽구는 또 미국 앨라배마 공장을 추진하고 있던 기획 및 생산기술 관련 멤버들도 인도 공장의 성공요인을 면밀히 분석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정몽구는 또한 차세대 여론주도 층인 대학생들의 글로벌화를 지원하기 위해 현대차가 지난해 도입한 ‘Be Global Friend'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대학생 40여 명을 최근 인도 공장에 보내 견학시키기도 했다.
정몽구가 인도 공장에 이처럼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은 철저한 현지화와 노사관계안정을 통한 높은 생산성 때문이다.

현대 차 관계자는 “작업자들의 근로의식이 매우 높아 일단 라인에 들어서면 생산에 몰두한 다.”고 말했다.
2005년 2월16일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 첸나이 소재 인도공장(HMI)을 방문한 정몽구는 인도를 인도 현지와 중남미시장 공략을 위한 기지로 육성하겠다며 인도에 제2공장을 만들어 생산규모를 크게 늘릴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브릭스의 핵심 국가인 인도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연간15만 대 규모의 신 공장 건설을 추진하겠다며 오는 2007년까지 인도 공장에 40만 대 생산체제를 갖춰 인도 내수 판매 증대와 글로벌 수출전략 거점으로 적극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현대 차는 2008년까지 국내 생산규모 300만 대에 해외 생산규모200만 대를 합쳐 500만 대 체제를 갖춤으로써 글로벌 톱5의 자동차 강자를 목표로 잡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현대 차의 글로벌 톱5는 시간문제다.
-출처 / ‘정몽구의 도전’-출판사 ‘고즈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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