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제약사 영업사원들이 잇달아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사기가 ‘뚝’ 떨어졌고, 여기에 공정위등이 리베이트에 대해 광폭 수사를 벌이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최근에는 또, 공정위가 서울 소재 4대 종합병원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그 이유인 즉, 이들 병원이 자신들의 신축건물을 짓는데 있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약사들에게 기부금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제약사와 병원간 고질적인 유착관계가 다시금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면서 업계에서는 ‘또다시 후폭풍이 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업계 일각에서는 다소 생뚱맞은 얘기가 나돌고 있다. 지난해 10월경 한 유명제약사 영업사원의 투신자살이 이번 일과 연관이 있다는 것. 이에 <매일일보>이 그 내막을 파헤쳐봤다.
지난 17일 공정위, 4대 병원의 제약사 기부금 강요 행위에 대한 과징금 부과 적발된 4대 병원 중 한 곳, 태평양제약에 기부금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횡포’
태평양제약, 해당 병원 담당 영업사원인 A씨에게 모든 책임 지우고 ‘권고사직’ 부당 인사조치에 반발한 A씨,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인 ‘자살’ 선택
지난 17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4대 대형종합병원이 우월한 지위를 남용하여 건물신축, 부지매입 등의 명목으로 제약회사에 기부금 제공을 강요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5억5천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학교법인 가톨릭학원(가톨릭중앙의료원), 연세대(연세의료원), 서울대병원, 대우학원(아주대의료원)등이 2005년 3월부터 2008년5월까지의 기간 중 자신의 거래상 지위를 이용하여 건물건립, 부지매입 등의 명목으로 거래관계에 있는 제약회사로부터 약 241억원의 기부금을 수령했다. 이에 공정위는 가톨릭학원과 연세대에 대해 각각 3억, 2억5천만의 과징금을 부과했으며, 서울대병원과 대우학원은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제약업계에서는 ‘또다시 후폭풍을 일지 않을까’며 전전긍긍해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리베이트건으로 공정위등으로부터 대대적인 수사를 받았고, 여기에 유명제약사 영업사원들의 자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곤욕을 치룬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번 일이 업계 전반으로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태평양제약 영업사원 자살사건 회자되는 이유 왜?
그런데 여기서 업계 일각에서는 다소 생뚱맞게도 지난해 말 한 유명제약사 영업사원의 자살 사건이 다시 회자되고 있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이다.
지난해 10월, 태평양제약 영업사원인 A모(35)씨는 자신의 아파트 15층에서 투신자살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A씨의 자살원인을 두고서 ‘옥신각신’ 말들이 많았다. 실적에 대한 부담을 이기지 못한 우발적 자살이라는 얘기에서부터 회사의 지나친 실적강요가 자살로 내몬 원인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당시 알려진 바에 따르면 A씨의 아내인 B모(35)씨는 남편 A씨가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통보받고 괴로워했다고 밝혔다.이에 대해 회사측은 “권고사직은 없었으며, 실적 강요를 한 적도 전혀 없다”고 일축하며 “하지만 A씨가 모범사원이었기 때문에 유족 측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위로금을 현재 협의 중”이라고 해명했다.하지만 당시 업계에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살일 경우에는 위로금 협의 대상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 태평양제약은 유가족과 위로금을 협상 중이라고 밝혔기 때문.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태평양제약이 위로금을 협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곧 A씨의 자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후 A씨의 자살 사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세인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책임전가 시킨 태평양제약
그런데, 반년이 지난 지금 공정위의 이번 ‘4대 병원, 제약사 기부금 강요 적발’을 계기로 다시금 A씨의 자살사건이 업계에 회자되고 있다. <매일일보>은 H사, B사 고위관계자와 몇몇 영업사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일과 A씨의 자살사건이 무슨 연결고리가 있는지 알아봤다.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이번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병원 중 한 곳이 A씨의 담당 병원 중 하나였는데, 이 병원이 신축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제약사들에게 기부금을 요구했고, 이중 태평양제약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해당 병원으로부터 기부금 요구를 받은 태평양제약은 ‘과도한 요구’라고 판단, 기부금을 내지 않았다. 이후 이 병원은 기부금을 낸 제약사들과 의약품등에 대한 납품계약을 체결했고, 반대로 기부금을 내지 않았던 태평양제약은 계약 체결을 하지 못했다.
이에 태평양제약은 이 병원을 담당하고 있었던 영업사원 A씨에게 책임을 전가시켰다는 것이다. 회사는 A씨가 영업활동을 잘못해서 이 병원과 납품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것이라며 오직 A씨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겼고, 결국 담당 영업사원인 A씨를 권고사직하는 선에서 계약을 따내지 못한 사태를 마무리지으려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A씨는 부당한 인사조치에 반발했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태평양제약, “말할 수 없다”
이에 대해 태평양제약 홍보실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인터뷰에서 “A씨가 그 병원 담당 영업사원인 것은 맞지만, 우리 회사가 그 병원으로부터 기부금 요구를 받았고, 또 내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A씨의 자살당시 유가족들이 작성한 경찰조서(노원경찰서)에서는 ‘권고사직’이란 말이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회사의 해명에 유가족들 또한 수긍했고, 지금은 원만히 해결된 상태”고 말했다. 하지만 <매일일보>이 만난 업계관계자는 “예전에 얼핏 이와 비슷한 얘기를 회사 영업사원들로부터 전해 듣기는 했지만, 그 당시에는 한귀로 흘려들었는데, 이번 병원의 기부금 강요 행위가 적발됨에 따라 당시 영업사원들의 말한 내용이 어느 정도 사실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비단 태평양제약뿐만 아니라 모든 제약사들이 병원과의 관계가 갑과 을의 관계이기 때문에, 을인 제약사들은 ‘울며겨자먹기’로 병원의 무리한 요구에 응할 수 밖에 없다”며 “이같은 근본적인 병폐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태평양제약 영업사원 자살같은 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이번 일로 인해 ‘공정위등 수사당국이 전국 대형병원과 제약사간 유착관계에 대해 전방위 수사를 확대하지 않을까’ 극도의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