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법 감정과 실제 법 적용 괴리 줄어들 듯
[조민근 안심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예나 지금이나 주기별로 한 번씩 ‘국민 법 감정과 괴리가 큰 사법부 판단’으로 사회적 공분을 사는 사례가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상황에 변화를 예고하는 판례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법, 그리고 법’ 첫 칼럼에서는 최근 사건들 가운데 사기죄 분야에서 나온 의미 있는 예를 들어 법조계 내에서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보여주고자 한다.사기죄는 복잡한 사건인 만큼,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의 두 사례를 예로 들어본다. 친구 A와 B가 있다. A는 B에게 “네 땅을 담보로 1억원을 빌려주면 1년 안에 원금과 함께 연 20%의 이자를 상환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채권최고액 1억2천만원의 근저당권설정등기 서류에 B의 서명날인을 받고 이 서류를 이용해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A는 약속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 B에게 돈을 갚지 않았다.C와 D 역시 친구 사이다. C는 D의 토지거래허가를 받아주겠다면서 필요한 서류에 서명해달라고 했다. D는 흔쾌히 서명날인을 했으나 이 서류는 C의 설명과 달리 D의 땅에 타인 명의의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문서였다. C는 이 서류를 이용해 대출을 받고서는 그 대출금을 D에게 내주거나 갚지 않았다.종전 판례에 따르면 위 두 사례의 A와 C는 재산범죄 성립 여부에 큰 차이를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A에게는 사기죄가 인정되지만, C에게는 아무런 재산범죄도 인정되지 않는다. A와 C 모두 피해자를 기망해 착오에 빠뜨린 후 재산상 이익을 취했다는 점에선 같지만, C 사건은 이후 설명할 사기죄 성립 요건 중 하나인 '피해자의 처분행위'가 없었기 때문이다.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이 같은 결과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최근 대법원에서는 대단히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와 시선을 끈다. 대법원이 올해 2월 16일 선고한 2016도13362 판결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피고인 등은 피해자들에게 토지거래허가에 필요한 서류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피해자들로 하여금 근저당권 설정계약서 등에 서명·날인 하게 한 다음, 위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인감증명서를 이용하여 피해자들 소유의 토지에 피고인을 채무자로 하여 채권최고액 10억5천만원의 근저당권을 대부업자 등에게 설정한 후 7억원을 차용(이하 생략)」이 사건은 C의 사례와 유사하다. 피고인(C)이 피해자(D)를 상대로 처분문서의 의미를 속여 서명·날인을 사취한 후 피해자 몰래 재산상 손해를 끼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런 종류의 사건에서 사기죄가 인정되느냐 마느냐는 피해자의 처분행위 유무에 따라 갈리는 경우가 많다.사기죄는 △타인을 기망할 것 △상대방이 기망으로 착오에 빠질 것 △피기망자가 착오에 빠진 상태에서 처분행위를 할 것 △그로 인해 피해자에게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고 기망자는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할 것이라는 요건이 갖추어질 때 성립한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