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간첩 사건…‘왕재산 5인’ 왕재수 없게 걸렸다?
상태바
수상한 간첩 사건…‘왕재산 5인’ 왕재수 없게 걸렸다?
  • 변주리 기자
  • 승인 2011.08.26 22: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일일보] 대한민국에 수상한(?) 간첩이 떴다. 지난 1993년 북한에 포섭돼 20년 가까이 대한민국 땅에서 간첩활동을 해왔다는 ‘왕재산’ 조직원 5명이다. 검찰이 이들을 구속기소하며 밝힌 혐의는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및 가입, 간첩, 특수잠입과 탈출, 회합, 통신, 편의제공 및 찬양고무죄. 일부 보수언론과 시민단체들은 검찰이 체계적으로 구축된 북한 지하당을 17년 만에 적발했다며 헤이해진 안보의식을 고취시킬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간첩이라고 보기에 너무 어설픈(?) ‘왕재산’의 행적과, 이를 증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증거들로 검찰이 ‘정국돌파용’ 짜맞추기 수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제기되고 있다.

검찰 “왕재산, 대한민국 정부 전복 모의” 체계적 구축된 北 지하당 적발?

시민단체 “과장·왜곡으로 실체 불명확한 MB정권 정국돌파용 공안사건”

지난 25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지난달 4일 압수수색에 착수한 ‘왕재산 사건’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북한 노동당 225국의 지력을 받고 활동해 온 ‘왕재산’ 관계자 5명을 반국가단체 구성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왕재산’ 중 총책을 맡은 김모(48)씨는 1993년 북한으로부터 ‘접견교시’를 받았으며, 인천지역책 임모(46)씨·서울지역책 이모(48)씨·연락책 이모(43)씨·선전책 유모(46)씨 등을 각각 포섭해 지하당 구축 및 간첩활동을 했다.

검찰은 이날 기소한 ‘왕재산 핵심간부’들 이외에 이들의 지시에 따라 활동한 혐의를 받고 있는 지역당원 이모(38), 노모(46)씨, 홍모(45)씨 등 불구속 피의자 및 관련자들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어설픈 간첩활동과 허술한 증거자료

‘왕재산’의 간첩활동과 관련해 검찰은 정치권 동향 등 정세정보와 함께 용산·오산 미군기지 및 주요 군사시설이 포함된 위성사진과 미군 야전교범, 군사훈련용 시뮬레이션 게임 등 군사자료를 수집해 북한에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또한 인천지역을 ‘혁명의 전략적 거점화’로 만들라는 22국의 명령에 따라 인천 남구의 보병사단, 공수특전단, 공병대대 등 군부대에 핵심성원을 배치하거나 경비원을 매수하여 장악하고, 2014년까지 폭파할 음모를 꾸몄다. 하지만 검찰이 지목한 ‘정치권 동향 등 정세정보’ 혐의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부당함을 넘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이들이 수행했다는 정세보고가 고작해야 정당에 적을 둔 서울지역책 이모씨의 정치정세 보고와, 인천지역책 임모씨의 민주노총 내부사정 보고라는 것이다.
‘소위 왕재산 조작사건 대책위’는 25일 규탄 성명을 통해 “검찰이 문제 삼는 바를 종합해 보면 김모씨를 비롯한 관여자들이 대한민국 정부 전복을 모의했다거나, 새로운 정부수립을 목적했다는 등의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난 10년동안 소위 ‘간첩’들이 했다는 간첩행위가 고작 정치정세 보고와 민주노총 내부사정 보고 등에 불과하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검찰이 증거 자료로 제시한 ‘미군 야전교범’은 인터넷에서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야전교범은 군사기밀이지만 미군 야전교범은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면 구할 수 있는 자료라는 게 검찰의 증언(?)이다. ‘왕재산’이 인천지역 군부대를 2014년까지 폭파하려 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구체적인 증거자료나 정황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날 검찰은 ‘무기를 구입하는 등의 폭발을 하려했다는 정황’을 묻는 질문에 “2014년까지 계획일 뿐 무기를 산 흔적이나 지금 준비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대답했다. 특히 인천지역 군부대를 겨우 ‘왕재산’ 조직원 5명이 폭파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검찰은 “옛날 독립투쟁만 하더라도 결의를 하면 폭파가 가능했다”며 20세기에나 가능할 황당한 대답을 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왕재산 대책위’는 “국정원의 인권침해, 강압수사로 물의를 빚은 소위 ‘왕재산 사건’은 레임덕과 정권교체 위기에 놓인 이명박 정권의 정국돌파용 공안사건”이라며 “이번 사건은 애초 ‘일진회’에서 ‘왕재산’으로 조직명이 바뀌는 등 사건의 실체가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온갖 과장과 확대, 왜곡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짜맞추기·부풀리기 수사, 신뢰 못해”

앞서 지난 11일 인권단체연석회의(인권회의)는 공안당국의 인권침해와 강압수사로 “수사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규탄한 바 있다.

국가정보원(약칭 국정원)이 ‘왕재산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국제인권조약과 우리 헌법 및 형법이 금지하는 과잉금지, 유추해석, 피고인의 방어권과 변호인 교통권 등을 무시하고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어 피의자로 지목된 임모씨는 지난 17일 국정원의 이같은 수사관행을 폭로하는 ‘국가정보원은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수사관행을 버려야 한다’는 편지를 공개했다. 임씨는 편지를 통해 국정원 조사과정에서 겪은 강제인치와 욕설, 위협성 발언 등 부당한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폭로하면서 “몇몇 수사관들은 예전의 낡은 관행에 향수를 느끼고 있는 듯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수사를 담당한 국정원측이 잘 알고 있듯이 별것도 없는 사건을 토대로 일파만파 벌리면서 본인을 정치적 목적에 희생물로 쓰는 짜맞추기, 부풀리기 수사는 즉각 멈춰야 한다”고 성토했다. 한편, 민노당은 검찰 수사 중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당직자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과 관련해 25일 “공안당국은 수사과정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색깔공세용으로 이 사건을 악용하였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민노당은 신창현 부대변인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당직자와 공직자들을 무차별 소환하여 우리 당에 대한 여론을 호도하고 색깔공세를 편 당사자들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시대착오적인 공안몰이는 이명박 정권과 공안당국에 대한 민심의 역풍으로 반드시 되돌아갈 것”이라고 논평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