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권희진 기자] 왜곡된 경제민주화에 대·중소기업들의 근간이 휘청거리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핵심 과제였던 ‘동반성장’과 ‘경제 살리기’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퇴행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생'보다는 '규제'·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의 성장 저해
대기업 때리기는 국가 경쟁력 위축으로 경제 근간 흔들무조건적인 대기업 때리기일부 대기업의 불공거래와 계열사 일감몰아주기관행 등은 분명 개선돼야 할 사항이지만, 최근 여론의 분위기는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때리기’로 변질돼 경영 위축만 야기하고 있다는 인식이 만만치 않다.경제민주화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 이후 대기업 계열사 수는 대폭 감소했다.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월 중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62개의 소속회사 수가 1774개로 전달보다 17개 줄었다.장기불황의 대비책으로 몸집을 줄인 이유도 있겠지만, 새 정부와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요구에 투자 심리가 꺾긴 것이 아니냐는 게 재계의 평가다.특히 최근 대기업 총수들의 잇따른 구속으로 경영 공백이 속출하면서 기업 경쟁력에도 치명타를 날리고 있는 만큼 정부가 유독 대기업에만 가혹한 규제를 들이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8월 ‘대기업 규제 현황’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은 자산, 종업원 수, 매출액, 점포크기 등을 근거로 34개 법령에서 84개의 규제를 받고 있었다.특히 기업의 오랜 관행인 일감몰아주기를 근절하기 위해 정부가 중소기업(협력체)에 특허기술 등 독자적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의 일감을 개방하는 ‘일감 나누기’에 대해서도 우려가 팽배하다.물론 현대차그룹이 물류와 광고 물량의 절반을 중소기업 등 외부 업체에 개방하겠다고 밝히는 등 다양한 업종의 일감을 계열사 몫에서 배제해나가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는 달갑지 않은 부분도 있다.재계 관계자는 “개정법이 시행되면 경영의 효율성을 따지기보다 기업 이미지 등을 고려해 일단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려 일감 개방에 나서야 할 판”이라며 “자칫 정상적인 거래까지 규제해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대기업을 옥죄는 정부의 규제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측도 반대하고 있다.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4월 논평을 통해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입법 논란과 관련 “중소업계가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는 시장경제를 위축시키거나 대기업의 창조적 경제활동을 막는 장애물을 만들자는 게 아니다”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같은 달 ‘현오석 경제부총리·경제5단체장 간담회’에 참석한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전 회장도 “기업인들이 어려워지는 사업 여건과 대기업에 대한 비우호적인 분위기 탓에 많이 위축돼 있다”고 지적했으며,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도 “중기가 바라는 것은 거래 불공정, 시장 불균형, 제도의 불합리 등 이른바 ‘3불 해소’이지 대기업 때리기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동반위 중기적합 업종 논란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적합업종 제도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일각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이분법적으로 나눠 규제하는 것은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중소기업이 사업을 잘해 기업 규모가 커져 대기업이 되는 순간 사업 확장을 위축해야 하는 현재의 구조가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있다.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역시 피해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해당 대기업이 중기 적합업종으로 선정돼 해당 업종에서 철수하거나 사업 확장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면 결과적으로 수많은 납품 중소기업들은 당장 생계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논란은 또 있다. 앞서 동반위는 제빵업과 외식업을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한 바 있다. 제빵업종의 규제 대상은 프랜차이즈형과 인스토어형(숍인숍) 등이며 프랜차이즈형에 대해서는 △동네빵집 500m 이내(도보 기준) 근접 출점 자제△현 점포수(지난해 말 기준)에서 확장자제 등이 규제 항목이다.그러나 대표적인 제빵전문기업인 SPC처럼 한 가지 사업으로 성장하고 매출의 대부분이 해당 사업에서 나오는 기업에 대해 규제를 가하는 게 과연 동반성장의 취지와 부합하는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로 남았다.업계 관계자는 “동반위 출점제한을 적극 수용하고 실천하겠지만 유통업계 전반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재계 “기업 옥죄는 경제민주화 반대”업계 관계자들은 대기업의 경영을 무조건적으로 옥죄는 경제민주화는 물론,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기업을 끌어내리는 정책은 진정한 동반성장의 해답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감시하고 규제하는 것은 기업 경제는 물론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중소기업이 진정으로 동반성장할 수 있는 정부의 깨어있는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일각에서는 대기업이 한국 경제 성장을 견인한 공도 인정할 가치가 있는 만큼 대기업에만 부와 특혜가 집중된다는 편견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최근 열린 새누리당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의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때리기, 끌어내리기식의 하향평준화 밖에 되지 않는다”며 “경제를 살리려면 역사상 유례없는 과도한 세무조사 강화를 중단하고 기업의 기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한 경제전문가도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와 함께 새 정부의 주요 과제로 지목한 일자리 확보를 위해서도 경제 활성화가 선행돼야 마땅하다”면서 “이를 위해서라도 대내외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대기업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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