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 시장 경색에 현금 확보 ‘어려움’…부동산 매각도 쉽지 않아
업계, “돈 나올 곳 없다”…정부에 ‘한시적 규제 완화’ 요청
[매일일보 홍석경 기자·이채원 기자] 자금조달 시장이 경색하면서 보험사와 증권사들이 현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금리와 환율이 모두 가파르게 올라 외화 조달시장에서 마저 자금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분간 금리 인상이 지속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유동성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3일 코스콤과 금융투자 협회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지난달 25일까지 2조원에 가까운 채권을 순매도했다. 반면 지난달 채권 순매수 금액은 916억원가량에 그쳤다. 정부의 채권시장 대책에도 불구하고 시장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보험사들의 채권 매도가 빠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보험료 수입 감소로 자금 확보 필요성이 커졌고, 금리 상승으로 보유하고 있는 채권의 처분·평가에서 손실 역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 관계자는 “돈 나올 곳이 없다”면서 “부동산 매각도 쉽지 않은 데다, 자금 조달 계획이 줄줄이 무산되면서 다들 현금 확보에 나서는 분위기”라고 했다.
보험사의 자금 사정은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최근 흥국생명은 오는 9일로 예정된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은 조기상환을 위한 장치다. 투자자들은 애초부터 조기상환을 감안해 발행조건을 결정하는 게 보통이다. 콜옵션 행사기일이 사실상 만기인 셈이다.
콜옵션 미행사가 ‘채무불이행’은 아니지만 신뢰에 금이 가는 조치다.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원화자금시장이 어려운 가운데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계속되면 환율까지 올라 외화채권 상환 및 발행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증권업계도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증권사들은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단기차입금 한도를 늘리고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내다 팔고 있다. 지난달 28일 IBK투자증권은 전자단기사채·기업어음(CP) 발행 한도를 5000억원 늘렸다. BNK투자증권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한국증권금융의 담보금융지원대출 프로그램의 한도를 기존 900억원에서 800억원 늘려 1700억원으로 확대했다고 알려진다. 일부 증권사는 부동산이나 CP, 상장지수펀드(ETF) 등 보유 자산을 내다 팔고 있다고 전해진다.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 한계가 있다 보니 증권사들은 당국에 한시적인 규제완화를 요청한 상태다. 금융투자협회는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증권사 재무 건전성 지표인 순자본비율(NCR)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해달라고 요청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시장 경색으로 증권사들이 차환 발행을 하지 못하고 물건을 떠안게 되면 NCR에 반영돼 건전성 지표가 나빠진다”고 설명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이날 보험연구원에서 생명보험업계와 만나 금융시장 현황을 점검하고 유동성 규제 완화안을 내놓기도 했다. 금융위는 보험사가 채권시장안정펀드의 자금 납입 요청(캐피털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유동성 평가 기준을 12월 평가 종료 시까지 한시적으로 완화한다.
다만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유동자산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은 이해한다면서도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채권매도 등은 가급적 자제하고 기관투자자로서 적극적으로 시장안정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당부 메시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