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한민국을 덮친 ‘전세 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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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대한민국을 덮친 ‘전세 포비아’
  • 이상민 기자
  • 승인 2023.01.1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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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건설사회부장
이상민 건설사회부장
[매일일보 이상민 기자] 지금 대한민국의 제일 큰 화두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전세 문제일 것이다. 전세 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세입자들은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 하다. ‘빌라왕’의 사기행각에 전세보증금을 고스란히 떼일 처지에 놓은 피해 세입자들은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우고 있다. 7년 직장생활을 하며 어렵사리 모은 돈에다 대출까지 받아 마련한 전세보증금을 떼일 판이니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피해자를 입지 않은 세입자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정말 괜찮은 건지…’ 좌불안석이다. 특히 직장과 학업 등의 문제로 이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불안하기만 하다. 부동산을 통해 이사하여야 할 지역의 집 몇 군데를 보았지만 선뜻 계약을 못하고 있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인중개사까지 끼어서 전세 사기를 조직적으로 벌였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공인중개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게 됐다고 하소연한다. 작정하고 속이는데 속아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특히 집주인은 정말 믿을 만한지, 빚은 없는지, 계약을 하고 나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건 아닌지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의심이 한두가지가 아니라 도저히 계약을 할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 집에서 전세 사는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을 매일 보증금 떼일까 걱정하면서 산다면 얼마나 지옥 같겠어요.” 그렇다고 집주인은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청할 수 있을까? 사정은 그렇지 않다. 집값은 떨어지고 혹시 세입자가 나간다고 하면 어쩌나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최근 이루어진 전세 계약의 대부분이 이전 계약보다 가격을 내려서 체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세입자가 전세금을 내려달라고 할까 봐 걱정이 많다. 돈이란 게 다 사용처가 있고 은행 이자가 낮은데 전세보증금을 가만히 은행에 넣어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한다. 적게는 몇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의 돈을 융통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판이라는 것이다. 강남도 예외가 아니다. 전세가 비싼 만큼 같은 비율로 깎아줘도 집주인이 돌려줘야 할 전세 반환금의 액수는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비싼 은행 이자와 전세 사기에 대한 공포가 맞물리면서 우리나라의 전세는 빠르게 월세로 전환되고 있다. 금리만 낮아지면 주택 임대시장이 안정될 것이라고 자신이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 정도면 온 나라가 ‘전세 포비아(PHOBIA)’를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야말로 전세시장 전체가 흔들리는 형국이다. 가난하던 개발 시절 일자리를 찾아 도회지로 나온 사람들이 남의 집 한켠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전세라는 주택 임대방식이 자리 잡았다. 이제는 제도를 제대로 정비하고 임차인도 임대인도 안심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할 때가 되었다. 아니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전세 발(發) 불신이 국가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부처를 떠나 범정부 차원에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그것도 빨리.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미국을 넘어 지구촌 경제를 송두리째 흔들었던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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