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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드라마 ‘더 글로리’가 인기를 얻으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일부 교사들의 폭력에 대한 폭로까지 이어지면서 학교를 둘러싼 폭력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학교폭력에 시달리다가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자퇴서를 제출한 주인공이 담임 선생님에게 막말과 함께 무차별 폭행에 가까운 체벌을 받는 장면이 교사의 폭력을 고발하는 ‘도화선’이 된 듯하다.
학교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다음 세대를 교육하고 길러내는 거의 우리 사회의 유일한 공간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신성해야 할 교육의 장이 섬뜩한 핏빛 폭력이 난무하는 음습한 공간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학생들 간의 폭력은 물론 선생님의 학생에 대한 폭력 또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어떤 말로 미화를 해도 그저 폭력은 폭력일 뿐이다.
배움의 기쁨과 동기들 간의 사랑으로 훈훈해야 할 공간이 폭력과 린치로 얼룩진 옛 사법기관의 음침한 지하 취조실처럼 변해버릴 때까지 교육당국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피해를 당한 학생이 학업성취도가 높기도 쉽지 않다. 폭력이 두려워 학교에 가고 싶을 리 만무하고 더군다나 수업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떨면서 하루빨리 학교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할 것이다. 더군다나 시험을 잘 보기라도 하는 날에는 괴롭힘의 또 다른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해 학생은 피해 학생을 괴롭히고 놀리는 재미로 즐거울지 모르겠지만 피해 학생은 두려움과 수치심에 떨며 괴롭게 학교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폭력이 두려워 학교에는 물론 부모님에게도 말 못한 채 오롯이 홀로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지옥 같았을지 쉽게 상상이 된다.
그리고 학교폭력의 피해 학생은 오랜 시간 그 후유증에 시달린다. 성인이 되어서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어릴 적 경험이나 기억이 그 사람에게는 평생의 상처로 남게 되는 것이다. 학교폭력을 경험하기 전과 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가해 학생들은 가해 학생대로 남들을 괴롭히는 재미에 어느새 폭력에 둔감해지다가 결국에는 중독되는 경향까지 보인다.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 삶을 지탱하거나 영위하는 수단으로 폭력을 일삼을 확률이 높아 잠재적인 사회 악인 셈이다.
피해 학생은 폭력을 피해 전학을 가거나 자퇴를 하거나 더러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학교폭력은 단란했던 가정도 파괴한다. 해마다 학교폭력으로 자식을 잃은 가정들의 절규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피해 부모님들은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가슴에 안은 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학교폭력이 그 어떤 범죄보다 죄질이 나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학생의 삶뿐만 아니라 한 가정의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가가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고 한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학교폭력, 이참에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