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첨단 반도체 규제 대응 차원 광물자원 수출 제한
韓 수출액 감소 기조 지속…공급망‧판로 다양화 필요
매일일보 = 신승엽 기자 | 국내 경제계가 대외 여건 악화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중국의 수출 통제까지 발생하며, 반도체 생태계도 위협에 노출됐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까지 발생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까지 흔들리는 중이다. 중국은 희토류와 게르마늄 등 반도체 주요 원자재를 판매하고, 미국의 대형업체는 국내에 수주를 맡긴다. 국내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의 분쟁에 저울질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3일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갈륨과 게르마늄은 첨단 기술 및 방위 산업 등에 활용되는 광물이다. 앞으로 갈륨과 게르마늄은 중국 상무부의 허가 없이 수출할 수 없다. 국가 안보‧이익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입장이다.
중국 정부는 특정 국가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국을 향한 조치라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과의 무역 분쟁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광물자원 수출 통제를 선택했다는 평가다. 미국의 수출 제한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재 공급을 제한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중국의 이러한 선택은 미국의 반도체 규제에서 비롯됐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첨단반도체와 반도체 생산 장비 등에 대한 포괄적인 대중국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후속조치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은 원자재를 이용해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재 공급을 제한하는 카드를 꺼내들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중국에서의 첨단 반도체 수입도 줄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상반기에 전년 동기(2796억개)보다 18.5% 줄어든 2277억개의 집적회로(IC)를 수입했다. 중국의 상반기 반도체 수입 금액은 총 1626억달러(약 207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22.4% 급감했다.
이번 대책은 글로벌 공급망에 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통상 희토류를 비롯한 중국의 광물은 채굴 단계에서 환경 오염 우려가 크다. 서방 국가에서는 환경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중국의 생산품을 구매한 바 있다. 해당 품목들에 대해서는 중국의 입지가 클 수밖에 없다. 실제 중국의 갈륨과 게르마늄은 지난 2021년 기준 글로벌 시장에서 각각 95%, 67%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희토류의 경우 중국의 비중이 감소하는 추세다. 미국과 호주 등은 희토류 생산량을 자체적으로 늘려 중국 의존도를 낮췄다. 지난 2021년 기준 중국의 희토류 점유율은 60%로, 2017년(79%)보다 19%포인트 하락했다. 다만 실제 산업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희토류 가공 제품은 중국의 의존도가 80%에 육박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강경한 스탠스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셰펑 주미중국대사는 지난 19일(현지시간) 중국은 미국과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그는 미국이 투자 규제 등 중국의 기술 발전을 견제하는 새로운 조치를 도입하면 확실히 대응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 반도체 산업에도 악재로 작용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7월 1∼20일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은 312억3300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2% 급감했다. 이중 중국에 대한 수출은 21.2% 줄었고, 반도체 수출은 35.4% 감소했다. 중국은 중국은 시스템반도체(32.5%), 메모리반도체(43.6%), 장비(54.6%), 소재(44.7%)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다. 반도체‧광물 수출 제한에 국내 기업들도 긴장하는 모양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영실적도 하락세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2009년 1분기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지만, D램 가격 반등이라는 호재를 맞이할 전망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3~4nm 위탁생산(파운드리) 수율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하반기 실적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 유럽연합(EU)도 중국의 광물 수출 제한에 대응하고 있다. 최근 EU는 그리스 알루미늄 생산업체 미틸리네오스에 갈륨 생산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요청했다. 수출 제한 품목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네덜란드 등도 수출 제재에 참여한 만큼 중국의 보복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은 항상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두 국가의 분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안정화를 기대할 수 없었다”면서 “반도체뿐 아니라 모든 산업군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대외 악재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향후 두 국가 관계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급망 및 판로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