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1년 전 레고랜드 사태 때 고금리로 풀린 예·적금의 만기가 도래하면서 은행들이 재예치를 위해 잇달아 수신금리를 높이고 있다. 문제는 수신경쟁이 심화되면 조달비용 상승으로 대출금리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가계대출 상승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영끌족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투자한 사람)들의 금리 부담도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9~11월 증가한 금융사들의 정기예금은 116조원을 상회한다. 당시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경색되면서 은행들은 고금리 수신경쟁에 나선 바 있다. 이 때 모인 예적금의 만기가 도래하면서 은행들은 다시 재예치를 위한 수신금리 인상 움직임을 보이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4%를 웃도는 정기예금과 7~8%대 정기적금이 나오고 있다.
이날 은행연합회에 공시된 상품을 보면 전북은행, SC제일은행, DGB대구은행, Sh수협은행, BNK부산은행, 케이뱅크 등에서 만기 12개월 기준 우대금리 포함 최고 4.15~4.00% 수준의 정기예금을 판매 중이다.
주목할 부분은 금융사의 수신금리 상승은 조달비용을 키운다는 점이다. 시차를 두고 향후 대출금리에도 당연히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대출금리는 은행이 자금을 조달한 비용에 수익률을 붙인 가산금리를 더해 책정한다. 은행 마진이 동일한 경우 조달비용 부분에서 기준이 되는 금융채 금리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상승하면 대출금리가 오르게 된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11월까지 5%를 넘어선 바 있다.
이 같은 영향으로 이후 대출금리도 오르고 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어지고, 금리도 오르면서 영끌족의 금리 부담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 가계대출잔액은 지난달 1075조원 규모에 달한다. 전월 대비 6조9000억원 늘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5개월 연속 증가세로 8월 증가폭은 지난 2021년 7월(9조7000억원) 이후 25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5대 은행으로 좁혀봐도 지난 14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81조6216억원으로 지난달 말(680조8120억원)보다 8096억원 증가했다. 대출 종류별로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이 기간 6176억원 늘어났다.
금리도 뛰고 있다.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 금리 상단은 7%를 넘겼다. 향후 대출금리 인상에 따라 이자상환 부담이 큰 폭으로 늘어날 수 있다.
18일 기준 주담대 변동금리는 4.17~7.04%, 고정금리(5년 후 변동금리 전환)는 3.90~6.38%였다. 지난주 주담대 변동금리에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0.03%포인트 떨어졌지만, 소폭이라 하락 영향이 미미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기존 주담대 차주의 금리를 의미하는 '잔액 기준' 금리는 7월 기준 4.21%로 2년 2개월 연속 오름세(2021년 5월 2.64% 이후 계속 상승)를 보였다. 올해 초부터 상승 속도는 떨어지긴 했지만 아직 하락 전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잔액 기준 금리는 변동과 고정으로 나뉘는데, 둘 다 오름세가 여전하다. 변동금리는 지난 7월 기준 4.69%를 기록했다. 전달보다 0.01%포인트 떨어지긴 했지만, 한은이 지난 2013년부터 이 금리를 측정해 발표한 이후로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고정금리 역시 마찬가지다. 7월 기준 3.5%였다. 2015년 3월 3.62%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기존 대출자들의 주담대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면서 "그러나 4월 이후 코픽스와 금융채 금리가 상승 전환한 영향을 받아 대출금리가 오르면서 이 예상이 빗나갔다"고 했다.
신규 주담대 차주들의 금리 역시 재반등하는 모습이다. '신규취급액 기준' 금리는 7월 기준 4.28%로 3개월 전(5월 4.21% → 6월 4.26%)부터 다시 오르고 있다. 구체적으로 변동형(5월 4.39%→ 6월 4.41% → 7월 4.45%)과 고정형(5월 4.16% → 6월 4.20% → 7월 4.22%)으로 나눠봐도 똑같은 흐름을 보였다.
금융권은 향후 금리 상승 기조를 예측하고 있다. 윤석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글로벌 금리는 미국 고용 둔화 조짐에 하락하다가 견조한 경제지표와 유가 상승 영향에 의해 반등했다"며 "국내 금리도 소비자물가 재상승과 대외금리 상승세를 반영해 올랐는데, 앞으로 유가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 방향에 따라 변동성이 재차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