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부동자금 800조원...“‘머니 무브’ 없을 것”
[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한국은행이 사상 최초로 기준금리를 1%대로 끌어내리면서 자금이 기업 금고나 가계 장롱 속에만 머무르는 ‘돈맥경화’ 현상이 해소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16일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현재 단기 부동자금은 800조726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만기를 1년 이내로 가져가는 단기 금융상품에 돈이 몰린다는 것은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문제는 돈이 기업 금고나 가계의 장롱 속에 머문다면 아무리 금리를 내려도 실물경제를 살리는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실제로 2012년 7월부터 금리가 꾸준히 낮아졌는데도 ‘돈맥경화’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는 모습이다.올해 1월 통화승수는 18.5로, 지난 199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통화승수는 중앙은행에서 본원통화를 1원 공급했을 때 시중 통화량이 몇 원이 되는지를 나타낸 지표다. 통화승수가 하락했다는 것은 한은이 돈을 풀어도 시중에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다는 의미다.통화승수는 지난 2008년 27배에 달한 적도 있었지만 2010년 이후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지난해 8월 18.9배로 떨어졌던 이 지표는 8월과 10월 기준금리 인하 이후 11월 19.5배까지 회복됐다가 두 달 만에 다시 바닥을 쳤다. 금리 인하가 ‘반짝 효과’에 그친 것이다.저금리 기조에도 돈이 실물경제로 흐르지 않은 탓에 투자·소비는 개선되지 않았고 경제성장률, 주가, 부동산가격 등 각종 경제지표는 ‘게걸음’을 거듭했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3.4%로 전망했다가 예상보다 회복세가 더디다며 하향 조정을 예고한 상태다. 노무라증권 등 일부 해외 경제전망 기관들은 올해 한국 경제가 2.5%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실물경제뿐 아니라 주식, 부동산 등 자산시장도 저금리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최근 일본에서는 닛케이지수가 2000년 4월 이후 15년 만에 1만9000선을 넘기고, 지난해 중국 증시의 상하이종합지수는 3년8개월 만에 3000선을 돌파했다. 그러나 한국의 코스피는 4년째 2000선을 중심으로 한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2012년 마지막 거래일 1997.05였던 코스피는 2013년 같은 날엔 2011,34, 지난해에는 1915.59였다. 지난 13일 지수는 1985.79로 장을 마쳤다.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과 금리 인하로 최근 활기가 돌고 있기는 하지만 부동산시장도 몇 년간 침체기를 겪었다.KB국민은행이 산출하는 서울의 주택매매가격지수(2013년 3월 100기준)는 2011년 말 103.58, 2012년 말 100.60, 2013년 말 99.33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지난달 말 지수는 100.33까지 반등했다.금리·통화정책의 효과가 작동하지 않는 '유동성 함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사상 최초의 연 1%대 기준금리가 돈을 돌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도 분분한 상태다.특히, 풀린 돈이 경기 회복에 필요한 실물경제로 가지 않고 부동산시장에 몰리거나 단기성 자금으로 부동화하는 게 문제가 된다는 지적이 많다.전문가들은 최근 부동산시장이 들썩이고 있지만 풀린 돈이 쏠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이번 금리 인하로 뚜렷한 ‘머니 무브’가 나타나기는 어렵다”며 “지금과 같은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뚜렷이 부상하는 산업이 없다면 단기 부동자금은 많아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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