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대한민국 대표 부부모험가’ 꿈꾸는 이성종·손지현 부부
[매일일보=송병승기자] 2011년 대한민국의 20~30대는 떠나고 싶다. “혼자 힘으로는 이룰 수 없어서 잊고 지냈던 당신의 꿈을 2500만명의 일촌과 함께 이뤄주겠다”는 취지로 4월부터 ‘드림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싸이월드가 그간 등록된 1만여건의 꿈을 분석한 결과 20~30대가 가장 많이 꼽은 꿈은 여행이었다.
1988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세계 곳곳을 누비는 ‘배낭족’들이 다수 등장하긴 했지만 한 달 이상의 긴 휴가를 내는 것이 불가능하고 일반적으로 정해진(?) 인생스케쥴에서 조금의 벗어남도 용인하지 않는 각박한 한국사회에서 ‘배낭여행’을 간다는 것은 여전히 엄청난 결단과 희생을 요구하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그런 측면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결혼해 20대의 대부분을 여행으로 보냈으며, 앞으로도 전문 여행가로서의 삶을 꿈꾸고 있는 이성종?손지현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면 부러움과 함께 마음 한구석의 불안함을 쉽게 지울 수 없게 만든다.<매일일보>은 ‘대한민국 대표 부부모험가’를 꿈꾸는 이성종, 손지현 부부를 만났다. 이 부부가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하는 부부의 여행과 인생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전거로 호주·아프리카 대륙여행…다음엔 유라시아횡단 준비중
취업 포기했지만 추억·경험 쌓아, 여행 전문가로 평생 살아갈 것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우리는 이상을 택했고 과감히 실천에 옮긴
결과 꿈은 현실이 됐고 우리 부부는 현실에서 꿈을 이루며 살아요”
결혼 후 찾아온 고민…“떠나자!”
우리 부부는 2005년 3월 결혼을 했어요. 스물 셋 어린나이에 하는 결혼이라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순탄한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속도 위반을 한건 아니랍니다. 많은 걱정을 이겨내고 결혼했지만 막상 현실에 닥치니 그리 쉽지는 않더군요. 서로 전혀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만나 하나를 이뤄 간다는 것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시작한 결혼생활에 두려움도 있었죠. 아마도 그때부터 였을 겁니다. 우리 부부가 여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함께 꿈을 키워나가고 있었을때가 말이죠. 여행을 생각한 우리 부부는 우선 가지고 있던 차를 팔았고 아르바이트를 해 여행 자금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자전거 여행을 계획 했지요. 당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유라시아 자전거 횡단을 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자전거와 의류, 배낭 등을 구매하고 나니 수중에는 얼마 되지 않는 금액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유라시아 횡단의 꿈은 접어야 했죠. 여행지를 고민하고 있던 찰나 남편의 지인으로부터 ‘호주 워킹홀리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라간 협정을 맺어 18~30세의 젊은이들에게 여행중인 방문국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워킹 홀리데이’. 지인이 알려준 워킹 홀리데이는 우리 부부의 여행지를 호주로 선택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단번에 호주로 가기로 결정했고, 2007년 6월 첫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습니다.“아니! 호주는 땅이 너무 넓잖아!”
부푼 꿈을 안고 도착한 호주. 하지만 우리에게 다가온 건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장엄한 모습이나, 초원에서 뜀뛰는 캥거루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호주는 매우 넓은 국토로 인해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가 멀어 자전거로 여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길가에 달리는 차들은 어찌나 쌩쌩 달리던지.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호주의 모습에 힘듦은 배가 되었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거라지만 호주 자전거 여행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자전거로 호주를 달리는 길에서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왈라비를 보는 것 뿐이었으니까요.비싼 물가로 인해 호텔 숙박은 꿈도 꾸지 못했고 가지고간 텐트에서 잠을 자는 일이 대부분이었죠. 음식 값은 또 어찌나 비싼지. 대부분의 끼니를 빵과 우유, 간단한 음식으로 때우기 일쑤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부부가 신청했던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인해 여행 중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6개월간 일하며 여행자로는 만져보기 힘든 큰 돈을 벌기도 했지요. 그 돈으로 우리 부부는 그동안 힘들었던 것을 잊은채 여유와 행복을 만끽하기도 했습니다. 힘들었지만 둘이 함께였기에 행복했던 1년여의 호주, 뉴질랜드 자전거여행. 우리는 그 1년의 시간을 끝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현실’과 ‘이상’의 고민…“그래! 아프리카로 가는거야!”
호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에겐 고민거리가 찾아 왔습니다. 그곳에서 번 돈 중 일부가 남아 있었고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었죠.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했던 ‘아프리카’
우리는 남아공을 출발해 나미비아, 잠비아, 우간다, 케냐 등을 거쳐 다시 남아공으로 돌아오는 계획을 가졌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남아공에서 타는 한국행 비행기 값이 가장 저렴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여행자들의 혀를 내두를 정도의 악명 그대로 아프리카는 우리에게도 실망을 안겨주지 않았습니다. 남아공 다음으로 찾아간 나미비아에서 화려한 주행을 꿈꿨지만 김지용군의 자전거가 반파되는 지경에 이르러 여행 초반부터 히치하이킹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고, 보츠나와에 있는 초베 국립공원에서는 야생 코끼리 무리들을 만나 오가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부룬디에서는 ATM기계가 없어 무일푼 거지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고, 모잠비크 국경을 넘는 길에서 우리는 푹푹 빠지는 모래밭에 자전거 페달을 굴리지 못했고 야행성 사자의 밥이 될 뻔한 위험도 넘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만 있었다면 여행을 계속하지 못했을 터. 우리는 잠비아에서 하마와 악어가 나온다는 강가에서 목욕을 하기도 했고, 살라마 말라이카에서는 봉사활동과 마사이마라 투어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답니다. 갑자기 향수병이 찾아 왔지만 한인 교민들을 만나 자연스레 치유되기도 했고, 고산병을 뚫고 김지용군의 꿈이었던 킬리만자로 정상에 발을 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잔지바르라는 아름다운 휴양섬에선 진정한 자유를 느끼기도 했죠. 이런 힘듦과 즐거움이 공존했기에 아프리카에서 우리 세 여행자는 행복한 시간을 품은 채 한국으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우리의 ‘꿈’이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6개월간의 아프리카 여행도 마치고 2009년 9월 한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김지용군은 대학과 일상으로 돌아갔고 우리 부부도 여행기가 알려지면서 방송에도 나오고 호주와 아프리카의 여행기를 출간해 두 권의 책을 내기도 했죠. 한때 고민했던 현실과 꿈 사이의 괴리에서 우리 부부는 꿈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과감히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 결과 꿈은 현실로 다가왔고 우리 부부는 현실에서 꿈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1월에는 동남아 여행을 꿈꾸던 사람들과 함께 동남아 일주를 하고 왔으니까 말이죠. 취업을 포기했지만 추억과 경험을 얻었고 우리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계속해서 도전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여행에 관한 조언을 해주곤 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을 버리지 못해서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우리 부부는 이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곤 합니다. “버릴 수 있는 약간의 용기가 있다면 여행지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이죠. 우리 부부도 오는 7월 ‘유라시아 자전거 횡단’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가 자전거 여행을 처음 꿈꾸었던 것이 유라시아 횡단이기에 더욱 설레기만 합니다. 물론 한 살씩 나이가 늘어 갈수록 현실에 대한 고민이 성큼 앞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우리의 첫 꿈이었기에 아주 즐겁게 다녀올 예정입니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많은 추억들이 남아 있지만 이렇게 짧은 글로 여러분들께 소개를 드리려니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우리 부부가 운영하는 ‘동갑내기 부부의 세계로 가는 자전거 여행() 에 오신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보실 수 있으실 거에요.자 그럼 여러분 “버릴 용기만 있으시다면, 떠나세요!”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