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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송병형 기자]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합니다. 음악방송 출연자들의 외모 획일성은 심각합니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아이돌 그룹으로, 음악적 다양성뿐만 아니라 출연자들의 외모 또한 다양하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의 외모는 마른 몸매, 하얀 피부, 비슷한 헤어스타일, 몸매가 드러나는 복장과 비슷한 메이크업을 하고 있습니다. 외모의 획일성은 모두 같이 나타납니다.”지난 13일 방송국과 프로그램 제작사에 배포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에 담긴 내용의 일부다. 정확히는 안내서 부록의 일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배포했을 것 같은 이 안내서는 실은 여성가족부가 뿌렸다. 요새 이것 때문에 또 다시 여성가족부의 존재 이유를 묻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아이돌 그룹 외모에 대한 지침이나 배포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냐는 것이다.이 안내서의 외모 지침은 방송통신심의위의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중 30조 3항에 근거하고 있다. ‘방송은 객관적인 근거 없이 특정 성(性)의 외모, 성격, 역할 등을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으로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장해선 안 된다’는 양성평등 조항이다.이 규정 하나를 근거로 여성가족부는 방송 프로그램을 어떻게 제작해야 미디어 시장을 발전시킬 수 있는지 원칙을 제시했다. 제시된 원칙은 이렇다. “제작자는 외모 지상주의의 추구가 천편일률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는 점을 인식하고, 외모 지상주의 가치를 지양하는 노력을 시장성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계기로 삼아 결과적으로 다양한 콘텐츠와 미디어 시장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합니다.”여성가족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프로그램 제작 단계별 체크리스트까지 제시했다. 안내서에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섭외하는 단계부터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편집하는 단계까지 외모와 관련해 반영해야할 지침들이 꼼꼼히도 나열돼 있다. 이 정도면 여성가족부가 아니라 방송국이나 제작사 전문 부처쯤이지 않나 싶다. 물론 그런 부처가 있다고 하더라도 감히 연예인의 외모를 통제하는 지침을 내릴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던 군부독재 시절도 아니니 말이다.여성가족부는 아이돌 그룹 외모마저 통제하느냐는 비판 보도에 이런 해명을 내놨다. “프로그램을 기획·제안·편성하는 과정에서 고려할 사항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방송사, 제작진들이 방송현장에서 자율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 규제나 통제라는 일부의 비판은 사실과 다릅니다.”그런데 실제 안내서 전문을 살펴보니 해명과는 결이 다른 엄포성 경고가 곳곳에 나온다. 가장 눈에 띄는 안내문의 시작과 끝 부분은 이렇다. “본 안내서는 방송을 기획·제작·편성하는 모든 과정에서 방송사, 제작진, 출연자들이 꼭 한번 점검해 보고 준수해야 할 핵심사항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방송사, 제작진, 출연자들이 점검해 보고 준수해야 할 핵심사항’이라고 안내문의 시작과 끝에 반복해서 강조돼 있다.특히 논란이 되는 부록 시작 부분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미디어 산업과 제작 환경의 특성으로 인해 여기서 제시되는 모든 항목을 준수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한국 사회의 과도한 외모 지상주의를 초래한 방송의 책임이 엄중하다는 점을 인지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줄 것을 권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