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심위 “지도부 외압이나 계파정치 휘둘리지 않고 민심공천 통한 인적쇄신” / 일각 “현역의원 범죄자 취급하듯 하는 물갈이 받아들일 수 없다” 강력반발
[매일일보닷컴] 대통합민주신당이 지난 달 30일 18대 총선 공천의 ‘칼자루’를 쥐게 될 공천심사위원장에 박재승 전 대한변협 회장을 임명함에 따라 물갈이의 폭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위원장은 공심위원 절반 이상을 외부인사로 선임할 권한을 가지며, 설 연휴 이전에 공심위 구성을 완료, 공천 원칙과 기준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당헌상 공심위는 위원장과 당연직인 사무총장 등 10∼20인 이하의 규모로 구성되는데 신당 측은 외부인사 50%를 포함해 15명 선에서 공심위 구성을 마무리 지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위원장은 “지금은 계파를 따질 때가 아니”라면서 향후 공천과정에서 ‘계파’나 ‘지역 안배’를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지도부의 외압이나 계파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민심 공천’을 통한 인적쇄신을 이루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은 지난 달 30일 오전 국회에서 첫 기자간담회를 통해 “계파 지역 현역여부에 가산점을 준다든지 안배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나라를 위하고 민주발전을 위한다면 현역의원도 이번에는 안나간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박 위원장은 구체적인 공천 원칙과 관련해선 “그분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민주주의 철학이 무엇인지 비전 등을 플러스해서 지역이나 국민에 대해 어떤 후보가 기여를 했고 (지역 주민들이)어떤 특정 후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함께 고려하겠다”면서 “그 잣대를 모든 지원자들에게 들이대겠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신당 측의 공천 심사는 ‘특검급’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언뜻 보기에 매서운 칼바람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 이런 까닭에 당내에선 ‘명망있는’ 외부인사의 위원장직 발탁에 내심 큰 기대를 갖고 있는 분위기다.
먼저 손학규 대표는 “공정한 공천을 통해 (우리 당의)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공천심사위의 등을 밀어주는 형국이다.
손 대표는 같은 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독립성은 공심위가 외부나 당의 간섭 없이 운영한다는데 큰 의미가 있으며 공천의 공정성을 보여줘야 한다”며 “우리 당은 공심위의 결정을 철저히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는 또 “이번 공천의 중요성을 감안해 외부인사는 과반수로 구성해 공천의 신뢰성을 높이겠다”며 “(공천심사위원이) 정치적인 안배에 의해 계파나 지분별로 이뤄지는 사례가 많았는데 형식적인 외부인사로 구성되지 않도록 공심위원장이 주도로 구성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신당 쇄신파들도 공천기구의 투명화를 촉구하고 있다. 초선 쇄신파가 주축을 이루는 ‘민생을 제일로 하는 쇄신모임’은 “당내 기득권과 계파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고 능력있는 외부인사로 공심위를 구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또 “공심위에의 전권을 위임해야 한다”면서 “그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만이 국민으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지율 한 자리수’의 위기에서 당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공정하고 잡음 없는 공천을 통한 철저한 인적쇄신 뿐이라는 것. 이들 가운데 일부는 ‘공천 혁명’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경우 곧바로 탈당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혁명, 당 구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신당의 공천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현실정치 경험이 없는 박 위원장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신당은 현재 △친노 배제론 △호남 물갈이론 △정동영계 제3지대 신당창당론 등 난마처럼 얽힌 당내 이해관계로 ‘충돌 속 좌초위기’로 치닫고 있으며, 특히 민주당과 통합이 성사될 경우 공천 문제는 더욱 더 복잡양상을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세부적인 공천기준 마련에 있다. 박재승 위원장은 이와 관련 “국민의 뜻이 무엇인가를 제일 큰 가치로 보겠다”면서 “여론을 감안해서 종합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며 ‘원칙적’ 입장만 내비치고 있다. 부정비리 연루자 등에 대한 공천 배제 여부에 대해서도 “많은 토론을 거칠 것”이라면서 “이 역시 국민여론을 감안하겠다”는 반응이다. 손 대표도 “박재승 공심위원장의 일생이 존엄성과 긍지를 생명으로 살아온 만큼 독자적인 외부인사 선임이 이뤄질 것”이라며 한발 뒤로 물러서는 모양새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선 이미 대선패배 책임자, 비리연루자 등은 공천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며 구체적인 배제 기준을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민생쇄신모임의 경우, 당 지도부를 여전히 신뢰하지 않는 모양새다. 민생쇄신모임 한 관계자는 “당의 주요 당직자들이 총선 공천과 관련하여 합의되지 않은 기준과 방식을 언론에 흘리고 있다”면서 “이미 특정계파의 이해관계와 기득권으로 얽혀 있는 현 지도부가 국민 모두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공천을 이루어 낼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민생쇄신모임은 이에 따라 △뇌물죄와 정치관련법을 위반, 유죄판결을 받는 부패 비리자 △국정실패 책임자에 대한 구체적 범위를 공심위가 결정해야 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은 상태.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의원과 신당 간판으로 출마 의사를 내비친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정대철 고문 등의 공천 문제가 공천 갈등의 ‘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는 신당의 확실한 딜레마로 보여진다. 당 안팎에선 연일 구시대적 정치를 벗어나자며 ‘호남 물갈이론’ ‘공천 쇄신’ 등을 피력하며 당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지만 만약 이들을 배제할 경우 당내 기반이 약한 손학규 대표의 첫 시험대라고 할 수 있는 총선 승리는 사실상 물 건너가는 등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4.9’ 총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김’을 애써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 박재승 위원장도 이를 의식한 듯 “국민의 뜻이 무엇인가를 제일 큰 가치로 보겠다”며 조심스런 반응이다.
손학규 대표가 공심위의 ‘독립성’ 보장을 설파했지만, 당권과 공천권 분리가 확실히 성사될 지도 관건이다. 당헌상 공심위 심사 및 결정 사안은 상임중앙위 의결로 확정하게 돼 있지만, 상임중앙위가 구성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그 권한이 최고위원회의에 위임돼 있는 만큼 ‘지도부의 입김’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공천을 놓고 이처럼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호남권 의원들은 ‘손학규 대표의 호남물갈이론’에 반발, 독자적인 공천기준을 마련해 공심위를 압박할 것으로 보여 신당의 내홍은 더욱 깊어갈 것으로 보인다.
우윤근 의원은 “현역 의원을 범죄자 취급하듯 하는 물갈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고,양형일 의원은 “호남만 물갈이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는 말이 안된다”고 꼬집었다.